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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Apr 08. 2024

사색을 잃어버린 자

나만의 철학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은 2월 24일. 6주가 넘는 시간이 흐르도록 하나도 써놓지 못했다.


뭐 고작해야 작은 재능에 크게 빛나지 못할 글들을 써내리고 있던 것을 알았지만 이 또한 재밌고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써놓던 것이 크다.


이 모든 것은 사색이 가능한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빡빡하게 살아가는 놈인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여유에 물들어 있었나 보다. 오히려 미리 여유롭게 살던 애들이 더욱 자신의 현실에 힘차게 부딪히는 듯이 보인다.


최근에 사색을 하는 일이 줄었다. 줄었다-보다는 못하게 됐다가 맞는 것 같다.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즐기거나 일상에서 스쳐가는 여유로운 시간에 갖던 사색은 이제 없다.


눈을 감으면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거나 해야 하는 일이 수만 가지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이지 잡념 따위가 들어올 틈이 없다. 여유로운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여야 할 뿐이다.


최근엔 목표 중 하나였던 웹소설 쓰기를 매거진으로 만들어 1주마다 진행상황을 적고 있던 것을 멈추었다. 고작해야 1주에 하나 쓰는 것인데 뭐가 힘들었겠냐만은 그 글을 쓰기 위한 행동을 해내지 못했다.


나의 목표를,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투자보다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기에 차마 그쪽으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현실은 무겁다. 아니, 원래부터 지고 있던 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가 맞는 것 같다. 그동안 알음알음하면서도 모른 체 지나온 시간들이 나에게 쥐어준 숙제와 같다.


나는 광명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결국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빛은 고작해야 반딧불이 정도의 불씨임에도 그 빛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쉬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뒤쳐질 뿐이었다.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라 한다면 나는 절대로 똑같이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나아가라 한다 해도 마찬가지. 매 순간 해왔던 선택에 오답은 없었다. 하지만 정답도 없었다.


왜 우리는 고작해야 정답, 오답으로만 분류되던 삶에 갇혀있다가 순식간에 결코 해답을 알아낼 수 없는 선택만 남아있는 곳에 떨어져야 하는가.


그런 상황이 싫어서 무작정 정답을 내어주는 곳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곳은 그저 오답으로 보일 뿐이다. 정작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보물상자일지 괴물이 나올 기믹일지 모르면서도.


나는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번에 찾는 것은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런 거창한 말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그저 초라한 목표 하나. 그게 내 사색의 전부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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