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객관이 존재하는가?
글을 쓸 때 나는 '자신의 세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던 노력하던 모든 행위에서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한다. 여기서 이 세상은 주관이다.
보통 객관은 어떤 의미인가. 나도 즐겨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라는 말을 쓰기는 한다만 이는 통용화 되어 있는 얘기들을 끄집어낼 때 쓰는 서두일 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으로는'이라는 말을 마치 정해진 사실처럼 쓰지 않았다. 항상 그 얘기를 한 뒤에는 나의 주관의 얘기를 덧붙여서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중요하고 스스로를 챙겨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결정에 있어서는 이타적일 필요가 있으며 타인을 위한 존중과 배려, 희생이 필수불가결이라고 말한다. 그럼 뭐 타인을 챙길 수 있으면서도 이기적일 수 있음은 마치 창조가 가능한 존재가 아닌가.
나는 이룰 수 없는 존재를 꿈꾸는 객관성 보다 주관의 확고함을 높이 산다. 머리로 이해를 하고 행동에서 배려가 묻어 나오되 모든 행위에 올바름을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주관이어야 한다.
조금 극단적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만약 부모님의 간이 안 좋아서 이식을 할 필요가 있다-하면 다들 일반적으로는 자식의 간이 이식에 적합하다면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이 받아온 것에 대한 효도며 부모님에게 자식의 도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는? 간 이식은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나왔던 장면이 여럿 있다. 간 이식을 해준다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주관이다. 타인의 행동과 얘기들만으로 당연시 여겨야 할 것이 아니다. 자신이 두렵고 해낼 자신이 없다면은 안 할 수 도 있는 것이지 그에 대해서 타인이 책임감을 부여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스스로 생각하는 바에서 따르는 것.
나는 스스로가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솔직히 우습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에게 내가 좀 냉철하게 주제를 관철하는 것을 이성적이라고 하지 객관적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 내가 말하는 것이 마치 세상의 정의인 것처럼 말하기보다는 ‘내 입장에서는(생각에는)’ 이렇게 할 것 같다-라는 말로 조언하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법적인 상황이나 도리에 대해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이는 객관성보다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가져야 할 법(규율)에 대한 이해와 준수, 도덕성 와 윤리에 관해서 크게 작용하는 것이지 객관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심지어 이 두 가지가 같아도 조금의 시간차이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 생각이며 행동이고 결정에 책임인데 ‘이 순간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에 대해 공감하며 위로하고 해결방안 제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하면 할수록 ‘혹시나 내 선택으로’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좀 더 정확히는 그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부과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보통은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나?’가 아니라 ‘그 상황이라면 1번의 선택지와 2번의 선택지 정도가 있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덧붙여서 ‘나라면 이렇게 할 거 같긴 한데 내가 아는 너라면 이게 나을 것 같다’ 정도를 붙여서 상황에 대한 여럿 생각을 짚고 나의 주관성은 어떻다는 것을 얘기하지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며 자신의 모든 행동이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결국 이를 생각하는 것도 주관을 가진 여럿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 한 최선의 배려가 누구에겐 부족해 보이고 누구에겐 과해보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객관성은 공동체 구성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중간점정도를 맞추어 이게 보통이라고 느낄 정도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정도다. 물론, 고민의 당사자가 늘여놓는 불평에 대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이에 대한 불평을 고쳐야 할 생각을 짚어주는 것 정도는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결국 그 또한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습을 깊숙이 숨기고 살아오며 배운 각종 윤리와 도덕에 따른 스스로의 주관성을 넣어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비약적일 수 있다. 허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객관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관의 부정에 대한 비판이다.
나 또한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시각과 사고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점을 찾는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냉철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비치고 싶어서 그랬다.
어쩔 때는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서 논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답답함도 많이 느꼈다. 수많은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객관적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비추기 위해서 만을 생각했던 스스로에 지치고 환멸감이 들면서 타인기피가 일어났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든 것을 떠안고 갈 필요가 없다. 나는 나만의 감정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