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훈 Feb 09. 2024

가성비는 효율에 대한 타협점일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효율과 가성비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효율적인 일처리가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고 가성비를 챙길 수 있는 소비와 습관이 곧 효율과 직행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기준은 누가 세우나?


모두에게 효율과 가성비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만원 하는 밥 한 끼가 가성비일 수 있지만 그게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 사람은 각자 놓인 환경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스스로가 세운 기준은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스스로 세운만큼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만약 그 기준이 돈에 대한 것이라면 쓰던 받던 그와 관련된 모든 순간에서 기준은 달라진다.


나 또한 그러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모든 순간에서 나만의 척도를 일일이 세워놓기보다는 매 순간마다 유동적으로 생각하고 세우는 것이 진짜 효율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얼핏 들으면 줏대 없이 생각이 바뀌는 무모한 생각일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 5만 원은 적을 수 있으나 아는 어른이 주시는 용돈 5만 원은 한없이 커 보이는 것과 똑같지 않을까.


우선 맨 처음 달라진 효율에 대한 생각은 시간이다. 나는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그 일을 해내는 시간만큼만 하는 것이 정말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시간들에서 잘 끌어내어해야 할 일을 처리해 내는 것이 가성비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까 말한 것과 다르게 상황 따라 변하는 생각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웬만하면 이 기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그게 흔들렸다. 과연 짧은 시간 동안 확 집중하고 마는 것이 진짜 효율인가? 어떻게든 긴 시간 동안 집중을 이끌어내고 그 시간들을 올바르게 소모하여 정말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효율 아닌가?


30분을 집중해서 쓴 글이 있을 것이고 집중이 안되더라도 3시간을 고민해서 적은 글이 있을 것이다. 그 두 가지를 비교하면 과연 둘 중 무엇이 더 좋은 결과물인가? 그럼 여기서 문제가 있다. 둘 중 가성비가 높은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결정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결과물이다. 시간으로 보면 6배의 차이가 있지만 결과물이 6배 더 좋지 못하면 가성비는 30분 쓴 글이 높은 것이 아니냐-할 수 있지만 내 마음에선 틀렸다. 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결과물에서 어떻게든 더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낸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가성비다.


이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자. 점수가 0점에서 100점이 있는 시험이 있다. 나는 3일을 공부하면 70점을 맞고 아슬하게 통과를 할 수 있다. 하지만 7일을 하면 90점을 맞고 안전하게 통과가 가능하다. 예전에는 전자를 택했다. 그냥 통과하면 됐지-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도 그냥 통과만 하면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점수의 차이가 아니다. 더 준비함으로써 나오는 안전함에 대한 스스로의 안정감과 그 여유로운 커트라인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결코 결과물에서 배제할 수 없는 감정들임을 깨달았다. 3일 하고 될까 말까를 고민하며 불안에 떠는 시간을 겪는 것 보다야 착실한 준비로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발표를 기다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됐다.


물건에 있어서도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예전에 산 물건이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끝까지 버리지 않고 쓰는 수준이었다. 한창 스마트폰이 보급될 때에도 노래를 들을 때는 아직 작동이 되는 mp3를 쓰곤 했다. 굳이 굳이 핸드폰에 노래를 다운로드하고 넣고 싶지 않았다. 이미 듣고 싶은 노래가 다 들어있는 잘 돌아가는 물건이 있었으니.


이젠 좀 다른 시각으로 접목한다. 결국 기계와 물건은 소모품이다. 내가 재작년에 산 후드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옷이란 것이 입고 빨수록 기존과 달라지기 마련이고 유행도 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조금 싼 것을 사고 1년여를 입다가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을 반복했다. 한 3만 원짜리를 1년에 한 번 꼴로 산 것이다.


지금은 20만 원짜리를 사서 3년을 입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기왕 사는 거 좋은 것을 사자-하는 마인드로 시작했던 새로운 효율이었지만 시작하고 나니 가격의 차이에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했다. 고작 후드티가 다 똑같이 뭐 이리 비싼가-하는 생각으로 샀던 것은 입기도 전에 오는 포장과 만져지는 옷의 질감, 입었을 때 느껴지는 감촉, 세탁을 하고 나서도 유지되는 그 폼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싸게 사서 1년여를 채우면 더 못 입겠단 생각이 들던 옷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입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이제 이게 나에게 효율이 됐다. 금액은 6배가 넘게 비싸졌는데 기간이 3 배면 더 손해 아니냐-할 수 있다. 하지만 1년이란 기간 동안 조금 불편해도 쓰는 것과 3년이란 시간 동안 편안히 쓰는 것은 차이가 심했다. 공짜로 3g를 사용하다가 돈을 주고 4g, lte를 쓰는 기분이다. 무조건 후자가 효율적이다. 왜? 빠르니까. 편하니까.


효율의 기준은 가성비보다는 나에게 가져오는 편안함과 안정성이 되었다. 과거의 나는 이런 글을 쓸 때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다다닥 써 내려갈 수 있는 1시간 안에 채워내는 분량의 글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몇 날 며칠을 들고 있더라도 내가 만족할 만큼의 글을 적어내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주제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쓰는 것이 더 좋다.


예전엔 시간 속에서 타협점을 찾았다면 지금은 결과물에서 타협점을 찾는다. 이제야 옳은 방향을 택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또한 모른다. 다시 생각이 바뀌어 전처럼 돌아갈지도 모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효율과 가성비가 꼭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 가성비는 어디까지나 효율성에 대해서 스스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정말 본인이 생각하는 효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