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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an 28. 2024

친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친한 친구를 잃는 일 따위는 고작 12년의 학창생활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나는 단순히 친하다를 넘어 정말 친하고 소중하다 생각했던 친구도 지금까지 셋을 완전히 잃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와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우리의 성장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잃는다-라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이다.


오늘은 그 세 명중에 한 명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학창 시절에 처음 안 이후로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매일 함께 다니고 어울려 놀았고 무슨 일이든 연락하고 공유하며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고 말 그대로 ‘절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학창 시절의 우리는 서로의 지금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미래의 우리를 생각하기도 했다. 서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를 생각하기도 하며 그 속에서는 떨어지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을 공유할 친구 한 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토록 가까이 지내던 친구와 헤어질 계기는 고등학교 졸업이었다. 나는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가게 됐고 친구는 본거지에 남아있게 됐다. 서로 멀리 있게 돼도 자주 연락하고 보자는 얘기를 하면서 대학에 가기 전의 시간도 항상 함께 놀았다.


그야말로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 나에게서 절대 때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 기억이 한없이 크고 소중했기 때문에 절대 잃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 2년이었어도 그 시간에 대한 얘기만으로 밤낮을 지새우며 다시금 학생으로 돌아가게 해 줄 사람이니까.


우리는 바빴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나지 않았다. 매일 하던 연락은 점차 주기가 길어졌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그러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더욱 시간을 보내게 됐고 그 친구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생겨났다.


그래도 한 번씩 만날 때면 역시 제일 편하고 가까운 사람은 얘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고작 연락의 빈도로 친함을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굳이’라는 생각이 늘었다. 꼭 그 친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얘기나 일은 많았으며 약속도 사람도 늘어났다. 힘들게 시간을 맞추거나 할 필요도 없었고 만나서 하는 늘 똑같은 얘기나 관심 없는 푸념을 서로 늘여놓는 것도 지겨워졌다.


그렇게 서로 연락을 조금씩 안 하게 됐다. 그런 와중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에게서 이상한 소식을 하나 듣는다. 그 친구가 도박에 빠져서 빚을 졌다는 얘기. 그런 와중에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와서 혹시 나도 알고 있는가 하는 안부 연락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내 탓 같았다. 좀 더 챙겨볼걸, 하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연락을 할까 했지만 그때 또 떠오르는 생각은 ‘굳이’였다. 아, 멀어졌다.


먼저 연락이 온 것은 그쪽이었다. 차마 나한테는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와서 한 것 같았다. 또다시 추억에 빠지는 옛날 얘기를 하면서 입을 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데 이 정도도 알아차리지 못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 필요하냐고. 친구는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그딴 거에 빠져서 이렇게 됐느냐고, 이렇게 주변에 돈 빌리고 다닌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한참을 뭐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친구가 짧게 말했다. ‘그럼 말아라.’


고작 이 말에 관계가 끝났다. 친구의 잘못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쓴소리만 한 내 탓인가 싶었다. 하나하나의 관계가 다 너무 소중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런 식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를 하나 잃는다는 것은 너무 아팠다.


하지만 이내 하나를 깨달았다. 관계가 아무리 깊다고 해봤자 고작 이딴 말 한마디에 끊기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었다. 나 혼자 깊이 파내려 봐야 연결되어 있는 줄이 굵어지지 않는 다면 의미 없는 거였다.


나는 또다시 인간관계에 대해 하나 배웠다는 생각으로 그 친구를 지웠다. 그렇게 5년이 지났나, 주변의 다른 친구들로 인해서 내 소식이 그 친구에게 닿았고 나에게도 친구의 소식이 닿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하겠냐는 생각에 다시 연락해 볼 생각을 않았다.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와의 관계를 고작 그런 식으로 끊었던 것을 기억도 못하는 듯이 그냥 연락이 왔다. 가증스러웠다. 아직도 나와 그 시간의 얘기를 꺼내며 쉽게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친구도 어렵사리 나한테 연락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연락이 끊기던 시점의 얘기가 우선이었지만 이 친구는 단순히 고작 그런 일이었다. 뻔뻔하게 다가오는 친구에게 곁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정말 이제 나에겐 ‘굳이’조차 되지 않는 하찮은 지난 시간에 머무른 관계 1이었다. 아프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잃음은 이미 다 나아서 새로운 살이 되어서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었다.


아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관계에서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서로의 배려와 친함의 정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소중함의 정도일 뿐이다. 이것은 나에게 적용되지만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어도 그 사람에게 내가 그렇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나의 관계에서 깊이를 지웠다. 벽을 높였다. 함부로 곁을 주지 않았다. 나는 단단해졌다. 그만큼 외로울지라도 상처 입지 않았다. 나는 잃었으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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