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Nov 20. 2023

양문모 '닮아가는 사물들'

예술가는 고민을 한다.

그 고민들은 예술 안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을 기준으로 작업의 성향을 어설프게나마 나눌 수도 있다. 주로 예술의 경계 안에서 질문을 시작하는 사람의 작업은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고 논해질 만한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현실에서 질문이 시작되는 사람의 작업은 비교적 더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양문모의 작업은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선, 색, 질감 등의 순수한 회화의 요소들 안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찾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회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아마… 도?) 그리고 그 점이 바로 그가 지금까지 미술계라는 이 황량한 벌판 위에서 진지하고 묵직하게 자신의 작업을 밀어나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그의 작가노트는 황당하게 시작한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다 보니 편안함과 불안이 어쩌고 저쩌고…. 무슨 말인지는 너무 알겠는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미간에 인상을 쓰고 다시 한번 읽어보니 어쩔 수 없는 삶의 모순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 같다. 절대 타협되지 않는 양 극단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 그래, 그런 순간이 있지. 갈수록 많이 있지. 삶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바퀴 같을 때. 난 그냥 거기에 실려 나를 포함한 삶을 넋 놓고 보고만 있을 때. 그리고 때론 그 풍경이 그냥 아름다울 때도.


‘원래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네모난 프레임들 간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픽셀로 깨진 이미지들처럼 뭔가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예쁘다. 작가가 예쁘려 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시각적인 긴장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다.


예술가인 양문모의 장점은 고민이 많다는 것이고, 그의 고민의 장점은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 안에서도 현실 위에서도 주구장창 고민한다. 그래서 그 인간 자체인 그의 작업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좌로 우로 오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그 작업을 왼쪽에서 볼 수도 있고 오른쪽에서 볼 수도 있고 혹은 왔다 갔다 하며 볼 수도 있다. 그 풍경들은 서로 다르겠지만 모두 양문모가 상상한 풍경일 것이다.


그 풍경들이 제각각 변화해 나갈지, 서로 중첩되어 갈지, 혹은 반죽처럼 합쳐져 하나가 될지… 아마 자기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양문모는 고민하는 사람인지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리 집에 있는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그날까지…


(전시는 끝났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