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두근거렸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이천 년대 초반 고등학생이었던 내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버스로 1시간 걸리는 등하굣길, 하루 4시간 이상의 미술실기수업. 무색무취의 지루한 시간에 bgm이 깔리면서 일순간에 색깔이 입혀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해 질 녘 집에 가는 버스가 한강대교를 진입할 때에 맞춰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를 재생하던 것, 길을 걸으며 산울림을 듣다가 뛰기 시작했던 것, 지친 나를 잠시 다른 세계로 도피시켜 주던 원더버드.
좋은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지만 유독 심장이 벌렁거리는 노래들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그걸 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걸. 그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고 싶었다.
꿈과 로망은 다르다. '꿈'은 작더라도 실현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말이고 '로망'은 가능성을 부정해 놓고 욕망하는 말이다. (내 생각이다.)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고 싶다는 건 완전히 로망이었다. 나는 미술을 전공해서 작가가 될 생각이었고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노래를 못했다. 음악에 대한 욕망은 스스로도 낯부끄러워서 지나가는 말로라도 해본 적 없는 완벽한 비밀이었다. 문제집 귀퉁이에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어떤 여자의 모습을 조그맣게 그리곤 할 뿐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약간 용감해졌다. 화실강사 아르바이트로 받은 첫 월급으로 동네 악기상에 가서 십몇만원짜리 기타를 샀다. 학원에서 코드라는 걸 배웠고 칠 수 있는 코드로만 이루어진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 방구석에서 그러고 놀다가, 같이 놀던 친구가 운 좋게도 음악 전공이라 밴드 같은 걸 만들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했다. 이십대의 나는 당장 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고 겨우 로망 같은 걸 위해 쓰는 에너지는 사치 같았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쓴 나는 미술작가 대신 미술교사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고, 어...? 십 년이 흘렀다.
어느 봄날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길, 구름다리 위에서 꽃나무를 보다가 가까운 기타교습소에 전화를 걸었다. 곧 사십 아줌마가 되고 한층 더 용감해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래희망이 싱어송라이터라서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려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고 한다. 십 년 동안 이삿짐에 미술도구를 이고 지고 다니면서도 그걸 펼쳐서 그림을 그린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출퇴근길에, 유모차를 밀면서, 또 어떤 밤에 남몰래 녹음해 놓은 음성파일과 끄적거려 놓은 가사들은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그걸 꺼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