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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pr 04. 2018

육아가 힘든 진짜 이유


우리의 삶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하는 과정이다.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추구하느냐가 어떤 삶을 사는지를 결정한다.



건강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외부보다는 내부를 열심히 들여다 보아야 하지만, 그건 매우 아프고 힘든 일이다.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기도 하고, 여태껏 믿어왔던 자신을 어느 순간 부정해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답을 조금 회피하는 자세로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비로소 손쉬운 답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역할’이 자신이라고 믿는 것이다.



보통 역할은 갈수록 많아진다. 직장, 친구, 가정 등의 여러 삶의 범주가 생기고 그 범주 안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갖는다.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도 아내, 엄마, 딸, 며느리, 누나, 동생 등 얼마나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가. 이런 역할 하나 하나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걸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서 ‘진짜 내가 누구인가’따위의 한가한 질문을 던질 시간이 없다.



그런데 내 생각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역할로 자신을 규정해도 별다른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 허탈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충실한 역할 수행에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다. ‘엄마’라는 역할은 아.... 너무나도 거대하지만 뚜렷한 피드백이 없는 것이라서 나 자신을 엄마의 이데아에 맞추려고 하는 순간 좌절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엄마의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끝없이 많은 견해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



결국 엄마가 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질문. 우리 삶을 관통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 바로 그 질문과 같은 말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나는 어떤 인간이냐는 질문이므로. 자식에게 평생 연기를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더라도 결국 들키게 되어 있다.


어차피 이런 인간이라면, 이런 엄마가 될 수 밖에.



육아가 힘든 이유는 이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명확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의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가 되어도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고 자신과 관계 없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한 채 사회가 규정한 나의 역할에 몰입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특히 꽤 괜찮게 살아온 사람에게, 적나라한 나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이 날 것의 경험들과 기댈 곳 없는 자아가 이제껏 지켜온 나의 자존감을 밑도 끝도 없이 끌어내리는 것이다.



무슨 회사를 다니든, 누구를 만나든, 집에서 애를 보든 안 보든 사실 나는 변하지 않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안 그래도 떨어질대로 떨어진 체력에 이런 정신의 고난을 극복할 힘 조차 없는 것이다.


나도 그랬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이토록 날 것의 나를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자식은 부모의 삶에 잠시 다녀가는 손님이라고. 그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나에게 맞는 엄마의 모습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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