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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pr 04. 2018

나는 결핍을 동경하지 않는다

나는 결핍을 동경하지 않는다.
더이상은.

그런 때가 있었다. 어릴 때라고 해야 하나. 사춘기?
결핍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능력있고 성실한 아빠와 헌신적인 엄마, 공부 잘하고 반듯한 오빠로 이루어진 모범 가정 안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면서, 나에게 채워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 따위를 가질 일은 없었다.


이런 말을 어디가서 하면 여섯 살 짜리 아이도 배부른 소리 한다며 비웃을 것 같아서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지만, 사실 난 내 삶에 구멍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럼 내가 좀 더 매력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나는 결핍보다는 채워진 상태에서의 건강한 에너지를 더 좋아하고, 건강한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감수성이 오히려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 때의 나를 돌아보면, 아니 추측해보면 (사춘기의 자신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으므로) 무언가 분출할 곳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환경은 정답으로 가득했고 내 속에 있는 오만가지 색깔의 오답들은 튀어나올 곳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가정을 만들었고 자식이 생겼다. 나와 남편이 만든 환경은 이 아이에게 세계의 테두리가 될 것이다. 가만 보면 우리도 모범생들이고, 나와 남편이 공통적으로 가진 약간의 우울감과 내향성을 이 아이에게 물려주었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아이가 답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일부러 노력해야겠다고. 그저 평소에 생각하고 말하듯 무심코 이 아이를 대하면 나처럼 결핍 따위를 동경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앞으로 만들어낼 벼라별 생각들과 말도 안되는 계획들을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 있는 듯 없는 듯한 허술한 울타리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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