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지금과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다
그곳에서 지금과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다
친구가 결혼했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는 많지만, 친한 친구가 결혼하면 기분이 묘하다. 아직 어린애가 결혼한 것 같고 보내주면 안 될 것 같다. 결혼식 때 신부는 웃고 있는데 나는 울음 참느라 혼났다. 성공적으로 결혼을 마친 뒤 친구는 바쁜 일상을 보냈다. 한 명씩 감사인사를 전하고 밀린 일을 처리하면서. 여전히 분주하지만 신혼집에서 좋아하는 순간을 만들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답변에 반가웠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녀를 만났다.
어떤 일이라도
양희조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자기 소개하면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어렸을 때 무의식적으로 저에게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는 나, 로맨틱한 나, 세상이 흉할 땐 겁 많은 나 등. 이 속에서 저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은 굳이 선택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다채로운 사람이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제 나이가 29세이지만 만 나이를 생각하고 싶고, 진로는 기획을 하고 싶으면서도 지금처럼 안정적인 회사에서 다녀보고 싶은, 어쩌면 평범할지도 모를 양희조입니다.
Q: 희조씨를 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해낼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졸업을 아직 안 했어요. 몰랐는데 8학기 안에 졸업하지 않으면 재적 처리당한대요. 그래서 지금, 토익 공부하고 있어요. 공모전은 결선까지 많이 올라갔지만 상 받은 적은 없어요. 감을 찾으려 할 때 다른 길에 접어들었어요. 그게 좀 후회돼요. 일하던 곳에서 퇴사하고 1년 쉬고 여기서 일하면서 감을 잃었어요. 제일 좋았던 건 300명 앞에서 발표했던 순간이에요. 다들 좋게 생각해주셨고, 성취감도 있었어요. 지금은 스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안정적인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여기 있으면서 종종 공모전 했던 그때가 생각나요.
절 보자마자 기획 쪽이 아닌 서비스 쪽에 있는 저를 보고 아깝다는 말을 해줬잖아요. 그 말이 좋아 계속 되새김질하게 돼요. "잘 해낼 것 같다"라는 말을 남편이 아닌 친구에게선 처음 들어요. 위안이 돼요. 재능도 없으면서 기획하고 싶다고 툴툴거리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누군가가 알아준 것 같은 기분이에요.
결혼과 현실
Q: 결혼을 했어요. 연애할 때랑 결혼은 다르잖아요. 어때요?
저흰 잘 놀다가 헤어지고 며칠 뒤에 봐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하고 헤어지지 않는 건 좋아요.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부분도 많아요. 2시에 끝나는데 ‘분리수거는 왜 안 했니’하는 말도 하고 명절에는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얼마나 드릴지 같은 고민도 해요. 아기를 갖게 되면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Q: 현실적인 부분도 많지만 가족이 생겼다는 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좋기도 하지만 여러 감정이 있어요. 정말 다양해요. 제가 토요일에 결혼식을 했는데 그 주 수요일에 동생이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어요. 가족을 잃었기에 저 포함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했어요. 힘들다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가족이라 하면 시기적으로 상실과 탄생이 같이 생각나요. 결혼이란 건 남편만 생긴 게 아니라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가 같이 생긴다는 거더라고요. 좋기도 하고 책임이나 의무가 커져서 힘든 부분도 있어요.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요. 좋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게 현실적이더라고요.
Q: 둘이 있을 때 좋은 순간은 언제예요?
사람 많은 아침에 1호선 전철 타고 학교에 갈 때예요. 둘이 딱 붙어서 갈 때가 좋았어요. 지하철 탈 때 남자 친구가 금정역에서 탔어요. 특유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나오면 따라면서 ‘너 이번 역에서 타겠다’라고 말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초반에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서 쳐다보지 말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해서 일찍 잠들어야 하는데 혼자 잠들지 않아도 될 때가 좋아요. 그 순간이 편하고 안심돼요.
Q: 든든했을 때가 있었나요?
제 동생이 입관하기 전에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말끔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데 남편이 저희 가족보다 더 울었어요. 진심으로 너무 슬퍼하면서. 그때 동생을 보내면서 힘들었는데 제 가족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힘을 받았어요.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어떻게 해줄지 고민할 때가 있잖아요. 그 고민을 하기보다 진심으로 울어주면서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Q: 생활 규칙이 있나요?
삶에 대한 규칙도 있지만 관계에 대한 규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흰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고 서로를 열어주려고 해요. 교집합을 만드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청소는 누가 할지 라는 규칙보다 싸울 때 언성을 높이거나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있어요. 연애 초반엔 잘 화내는 방법을 몰라서 많이 싸웠어요. 한 번은 (연애했을 때) 피자를 사서 기숙사로 가다가 싸웠고 남자 친구가 피자를 던졌어요. 제가 정색하면서 너 같은 사람이랑 못 사귀겠다고 하니까 무릎 끓으면서 사과하더라고요. 제가 피자를 주워오라고 했고 바로 주워왔어요. 화해했죠. 그 길을 지나다닐 때 "그때 그 피자를 개미가 먹었을까?"라고 말하면서 하나의 추억이 되었어요.
새로운 공간
Q: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방은 두 개고 공간을 물리적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뉘어요. 운동할 공간은 남편이 없이 제가 출근하기 전에 만들어져요. 방에서 요가매트를 깔고 스트레칭하면 일시적인 저만의 공간이 생겨요. 방 하나는 침실이고 하나는 작업실이에요. 서로 작업하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옷 방은 없어도 큰 책상이 있는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부부도 부부지만 자기로 살 수 있을 물리적인 작은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긴 해요. 최대한의 것이면서도 최소한의 것인 것 같아요.
Q: 인테리어 취향이 있나요?
결혼하기 전에 공간에 대한 취향을 많이 공유했어요. 저는 금방 질려해요. 그래서 꼭 필요한 것만 들이고 단순해서 질리지 않는 것을 선택하자고 서로 동의했어요. 리스트까지 만들었어요. 키워드는 ‘필수적인’. 냉장고는 필요하지만 텔레비전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구매하지 않았어요. 액자도 없어요. 그 선택 기준은 저희지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Q: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요가매트 위예요. 근무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눈감기 전 순간인 침대를 가장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햇빛이 들어오는 방에서 요가매트를 깔아놓고 머릿속을 비우고 스트레칭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일시적인 나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게 가장 좋아해요.
Q: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처럼 옷 구매할 때도 그럴 것 같아요.
옷 살 때도 질리지 않는 것을 구매해요. 기본 셔츠 같은 걸로. 화려한 걸 구매하면 그때는 좋은데 어느새 기부하게 돼요. 잘 안 입어요. 입는 것만 입게 돼요. 그러다 친구들이나 가족이 다른 옷을 사라고 하면 화날 때도 있어요. 칭찬이 아닌 말들로 기분 상할 때가 있어요. 왜 맨날 같은 옷만 입냐고 하고 초라하게 다니지 말라고 해요. 제가 세탁 안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심지어 머리도 길어보라고 압박을 받아요. 저도 제 취향이 있는데 인정받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Q: 공간이란?
과거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나를 있게 하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엄마의 배속도 공간이고 학교, 회사도 공간이잖아요. 그 속에서 제가 만들어져 갔으니 시간도 공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를 존재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제 성향은 정착에 더 가까워요. 여행 다닐 때 이상하게 자꾸 아파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해요. 공간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 있잖아요. 습하지 않고 소음이 없어야 하는 등. 여행 다닐 때 그 공간이 충족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요. 이번 신혼집도 엄청 힘들게 찾았어요. 최소한의 기준일 줄 알았는데 최대한의 기준이더라고요. 해가 들어오는 집, 환기시키기 위해 마주 보는 창이 있어야 하고, 회사랑 가까워야 하고, 근처에서 마트가 있어야 하고, 치안도 괜찮아야 하고, 1층 2층은 아닌 등의 조건이 맞는 집을 찾으려 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봤던 곳이 그 조건이 충족하여 바로 계약했어요.
습관적인 생활
Q: 이 공간에서 즐기는 취미가 있나요?
요즘 홈트레이닝에 관심이 많아요. 헬스도 다녀요. 침실에서는 매트리스만 있어서 높이가 낮아요. 그 매트리스 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작업실에서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운동을 해요. 몸이 좋지 않아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재미를 느꼈어요. 헬스도 집이랑 가깝고, 이 공간이 신혼집이기도 하니 새로운 공간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집이 넓지 않으니까 운동기구를 사기보다 이미 있는 물건으로 운동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같아요.
Q: 일하면서 습관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어요. 일적인 거 외에 습관적인 것들이 있나요?
잠들기 전에 설거지 끝내거나 출근하기 전에 청소기 돌리고 근력 운동하기 등 습관을 만들려고 해요. 일할 때 음료 약자만 보고 바로 만들 수 있어야 해요. 생각할 시간 없이 그 약자를 보자마자 만들어야 하죠. 처음엔 그 일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과정이 습관처럼 되니 이 일이 재미있었고, 더 좋은 서비스를 고민하게 됐어요. 중요한 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걸 계속 해내야 한다는 것 같아요. 전에 헬스를 1달 쉰 적이 있는데 쉬다 보니 환불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달 가지 않아서 구멍이 생겼지만 괜찮아' 하면서 꾸준히 하려 해요.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가더라고요. 매일 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계속 이어가려 해요. 그러니 몸도 좋게 바뀌더라고요.
월간심플 2월 '공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