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준프로 자취러 강미정
부모님과 같이 살다 보면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취업준비 중일 때 어머니 친구분이 놀러 오시거나, 새벽에 배고픔을 못 참고 라면을 몰래 끓여먹는다거나. 눈치 보지 않고 내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순간을 즐기는 건 어떤지 궁금해졌다. 준비 없이 자취를 하게 된 7년 차 준프로 자취러 강미정을 만났다.
갑자기
자취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7년 차 준프로 자취러 강미정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자막과 CG를 제작하고 송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영화 CG 일을 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방송 쪽에서 근무하고 있네요. 지금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훗날 영화 쪽에서 일할 거예요. 영화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갈 수 있도록.
Q: 자취는 언제부터 했어요?
20살 되고 1년은 대학 기숙사에 살다가 휴학 후 집에 왔어요. 아빠가 시골로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가셨어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건 아빠의 꿈 중 하나였는데 갑자기 내려가실 줄은 몰랐어요. 엄마도 아빠가 있는 시골로 같이 내려가시면서 의도하지 않게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Q:부모님과 살 때와 혼자 살 때 차이가 있나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맞벌이신 데다 외동이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자취했을 때도 혼자 산다는 느낌이 와 닿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혼자 살기 전까지는 화장실 청소를 자주해야 되는지 몰랐어요. 여름이면 날파리며, 안 먹는 음식의 곰팡이며 혼자 살면 게으르면 안 되겠더라고요. 부모님과 살 때에는 이런 부분을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신경 쓸 일이 많아졌어요. 물론 청소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해서 청소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요.
Q:부모님이 오실 때 뭐라고 안 하세요?
오실 때마다 엄청 화내시는데 굴하지 않고 어지럽히고 있어요. 오히려 청소해주시면 방이 어딘지 허전한 기분이 들어요. 부모님이 가시고 나면 쓸쓸해질 때도 있어요.
나만의 공간
Q: 혼자 살면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싶잖아요. 어떤 걸 먼저 했어요?
보통의 자취처럼 자의로 짐을 싸서 나온 게 아니라 집도 가구도 그대로인 상태에서 부모님이 나가신 특이한 형태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 집이 오롯이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잘 안 들었어요. 어느 정도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혼자 산지 2년이 지난 후였던 것 같아요. 가장 먼저 한 건 가구를 옮기고 텔레비전을 버렸어요.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방의 중심이 텔레비전인 것 같아서 바꾸고 싶었어요. 방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에는 침대와 책으로 채워나갔어요.
Q: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예요?
당연히 침대 위예요. 집 구조를 몇 번 바꿨지만 지금은 침대가 가운데에 있어요.
Q:침대와 책을 중심으로 바뀐 이유는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책을 읽고 싶으면 책 읽고 컴퓨터를 하고 싶으면 바로 옆 책상에서 컴퓨터를 할 수 있어요. 일이 끝나면 침대 위에 먼저 눕게 돼요. 일어나는 것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까지 침대에서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집순이인가요?
집순이 테스트 하면 만점 받을 자신이 있어요. 요즘에는 집에만 있는다고 하면 걱정하는 사람들이 줄어서 전보다 더 레벨 업 된 집순이예요. 물론 집에만 있는 것보다 사람도 만나고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지만 되도록 안 느끼려고 하고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혼자는 외롭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집에 있거나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은 그냥 자신의 성향 그대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혹은 무언가를 해야 될 것만 같은 생각을 되도록 안 하면 오히려 더 잘 쉴 수 있는 것 같아요.
Q: 집에서 있으면 주로 뭘 하나요? 취미가 있나요?
아무것도 안 할 때가 많아요. 취미를 가지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실패한 것이 대부분이에요. 코바늘 뜨기, 프랑스 자수, diy 만들기 등등. 재료는 집에 많지만 쌓아둔 걸 볼 때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이라 생각해요.
외롭지 않지만
가끔은 외롭다
Q: 혼자라서 좋았던 순간, 혼자라서 싫었던 순간이 있나요?
혼자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혼자서 편하고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혼자라서 외롭지 않아?’라는 질문이 따라와요. 혼자 살 때의 외로움이나 누군가와 같이 살 때의 외로움이나 그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혼자라서 싫었던 건, 아무래도 아플 때였던 것 같아요. 병원 갈 정도로 아플 땐 조금 서러웠어요. 집에 혼자뿐이라 누군가에게 아픈 걸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죠. 병원에서 보호자를 찾는데 혼자 왔다고 말하면 어딘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고요.
Q: 혼자라서 외로울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새벽에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이 안 오면 밥을 했어요. 쌀을 씻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불리고 취사를 누르고 나면 외로움이 조금 덜어졌어요. 일을 다시 하면서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요즘엔 딱히 별다르게 하는 건 없어요. 일부러 밖에 나간다거나 무언가를 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그냥 체력이라도 비축하며 그대로 있어요. 무료하게 핸드폰을 하고 영화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잠들고 그렇게 아침이 되면 괜찮아져요.
얼마 전 저렴한 과일가게를 발견했는데 혼자 먹다 보니 양이 많아서 잼 만들기를 시작했어요. 방 안에 달달한 냄새가 너무 좋아요. 관련 책을 사고 재료를 구매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Q: 나에게 공간이란?
대학시절에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오랜 기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루 손님이 천명이 넘는 곳에서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시간을 일하고 오면 사람에게 지칠 때가 있었어요.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집에 와서 문을 닫고 혼자 있으면 편안해졌어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죠. 저한테 집은 쉴 수 있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Q: 돈 생각하지 않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꾸미고 싶어요?
베란다를 꾸미고 싶어요. 작은 아파트지만 다행히 베란다가 있어서 여름에 문 열고 있으면 시원해요.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맘 놓고 열고 있지는 못해요. 블라인드를 설치해서 편하게 바람을 맞으며 베란다에서 쉬고 싶어요. 마당 같은 베란다였으면 해요. 인조잔디 깔고 식물도 키우면서. 베란다 문 열었을 때 밖에 나온 것 같은.
Q: 한 번에 나와 맞는 공간을 만들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생활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채워가면서 나의 취향에 가까워지는 거죠. 미정 씨는 지금 제일 버리 싶거나 구매하고 싶은 게 있나요?
가장 사고 싶은 걸 생각하면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이에요. 침대에 누워 큰 화면으로 영화나 영상을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원하는 화면 크기의 텔레비전을 놓을 공간은 방에 없어요. 월급이 들어오면 살 수 있지만 계속 구매를 미루는 걸 보면 당장 필요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제일 버리고 싶은 건 붙박이장. 혼자 살면서 이 크기의 장이 필요하지 않은데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요. 버리려고 알아봤는데 이삿짐센터 사람을 불러서 베란다 문짝을 떼서 빼야 한대요. 어쩔 수 없이 큰 장은 저와 한 몸이에요.
Q: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혼자의 시간을 지키며 살고 싶어요.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요.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혼자의 시간을 지키고 싶어요. 그 시간만큼은 여유로웠으면 해요.
월간심플 2월 '공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