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공간, 어린 시절
잃어버린 나의 공간, 어린 시절
가끔, 어린 시절이 그립다. 옷과 손이 더러워져도 마냥 즐거웠던 그때가 그립다.
방이 생겼다
방을 갖고 싶었다. 물론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난 혼자서 옷을 입을 만큼 컸다. 엄마가 마트에 다녀오셨다. 물건을 정리하니 박스만 남았다. 그 박스를 보다가 문을 만들고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을 만들고 ‘다혜 방’이라고 적었다. 엄마가 노크해주셨다. 박스에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놀다가 색종이를 붙여 꾸미기도 했다. 좋았다. 내 방이 생겨서. 방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방을 생각하기보다 내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걸까.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박스 하나로 기분 좋게 만들어준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 어렵다. 지금보다 더 많은 걸 바란다. 현재를 만족하지 못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꾸 욕심내고 나를 괴롭힌다.
도라에몽을 본 뒤 붙박이장을 갖고 싶었다. 이불을 여러 겹 쌓으면 침대가 되고 문을 닫으면 아늑해 보였다. 이사 온 아파트에 붙박이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좁고 답답하고 추운데 그 공간이 왜 좋았을까. 잠시나마 만화 주인공처럼 그 캐릭터에 이입된 걸까. 나에게도 도라에몽이나 둘리가 찾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만화를 보면서 영웅이 된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도 영웅으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별할 줄 알았던 내 삶은 평범했다. 가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내게도 생기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너무 평범하기에 평소와 다른 특별한 꿈을,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꾼다. 하지만 여전히 난 평범하다.
난 한때 영웅을 꿈꿨는데
시간은 크게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있다. 한 번 더 들여다보면 과거는 어른의 장난도 믿는 순수함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상상한 세상과 현재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었다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유행을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도 한다. 혼란을 겪다가 내가 누구인지 찾아 나선다. 난 그 현재에 있다. 현재에 집중하느라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받기 위해 울지 않았던 순수함을 잊었고, 어느새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나를 있는 그대로로 보기 어렵다. 누군가가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쟤는 뭘 보고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 부정하려 한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원래 겁쟁이였던 것처럼. 난 한때 영웅을 꿈꿨던 사람이었는데.
공간을 장소로만 보긴 어렵다. 시간도 공간이 될 수 있다. 20대지만 10대를 상상하면 그때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추억은 대화의 소재가 된다. 교복 입은 10대를 보며 ‘한 때 나도 저랬었는데’ 미소 짓는 것처럼. 바쁜 일상으로 과거의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지금보다 더 나이 든다 해도 그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게 난 어제를 생각하고 오늘을 보려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를 보면 내가 기억해내지 않으면 그 기억은 사라질 거라 말한다. 지난 어제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다. 과거와 지금은 이어져있다. 한때 난 그네에서 뛰며 ‘변신’을 외쳤고, 아파트 놀이터 아래에 타임머신을 심으며 미래를 상상했으며, 많은 걸 바라기보다 그저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신발 던지기 같은. 난 당찼고 로맨틱했으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현재를 즐겼다. 순수했던 시절을 잊고 싶지 않다. 이런 모습이 아직 내 안에서 남아있을 것이다. 때론 당참이, 때론 순수함이, 때론 많은 걸 따지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는 일이. 나만 생각하고 떼쓰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나올 것이다.
월간심플 2월 '공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