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를 긁고 도망간 사람이 인정했다가 말을 번복했다

by 매실

주말마다 운전을 한다. 2018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도로로 나갈 자신이 없어 2024년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무릎이 안 좋은 엄마와 이곳저곳 여행 다니고 싶어서. 아직 50대인 엄마는 '다 늙어서 뭘 하냐, 이 나이에 뭘 하냐'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뒤로 미뤘다. 엄마는 나보다 오래 인생을 살았지만, 세상의 재미는 내가 먼저 깨달은 것 같았다. 엄마에게 세상이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차 없는 곳에서 운전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차를 몰았다.


보통날처럼 이번에도 운전을 하기 위해 주차장에 갔는데, 운전석 범퍼 부분이 심하게 긁혀있었다. 누군가가 긁고 간 게 분명했다. 주변을 서성거리다 옆 차를 봤는데, 내 차와 비슷한 위치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내 차는 흰색이었고 긁힌 부분을 봤을 땐 검은색 차량일 확률이 높았다. 내 옆에 있던 차는 검은색 차량이었고 긁힌 부분은 흰색이었다. 의심 가는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아쉽게도 내 블랙박스가 고장 나서 차를 긁은 범인을 알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했다. 나보다 더 중요한 사건을 담당할 텐데, 이 신고가 폐가 되지 않을지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렇게 신고한 지 10분 만에 경찰이 왔다. 다행히 주변에 씨씨티비가 있었다. 하루 전에 강아지를 데리러 엄마집에 갔었기 때문에 사건 예상 시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건이 접수된 후 저녁에 담당 경위님에게 연락이 왔다. 씨씨티비가 주차장 쪽을 항상 찍는 게 아니고 시간마다 다른 방향을 찍기 때문에 안 찍혔을 확률이 높다고. 가장 확실한 건 블랙박스이고 그다음이 씨씨티비인데, 둘 다 흔적이 없으면 거의 못 잡는 거라고 봐야 한다고 말해줬다.


다음날, 주차장에 갔을 때 의심 가는 차량 차주랑 남편이 긁힌 자국이랑 문 쪽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차량 뒤에는 초보운전 팻말이 붙어있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경위님에게 의심 가는 정황과 차량 번호, 전화번호를 남겼다. 몇 시간 뒤 의심 차량과 통화한 경위님이 말했다. "처음엔 아니라고 하다가 나중에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끝까지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괘씸해서 화가 나면서도 안심됐다. 긁힌 자국을 봤을 때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초보여도 긁히는 소리가 들렸거나 무언가 긁히는 느낌이 있었을 거다.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으면 억울한 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검색해 보니 차량을 긁고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면 못 잡는 게 현실이고.


안심하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담당 경위님이 보험 처리를 하기 위해 상대 차량에게 내 번호와 차량 번호를 준다고 하여 알겠다고 했는데, 운전자 남편이 내가 경위님인 줄 알고 전화했던 거였다. 나한테 한 말은 사과가 아니라 마누라가 그런 적 없다는 말이었다. 운전자가 인정했는데, 남편이 전화해서 아니라고 한다는 사실에서 갑자기 화가 났다. 손이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경위님에게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를 가라앉히려고 찬 물을 마실 때 경위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라고 하는데,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발뺌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아니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인정했다가 번복한 거라 화가 더 커졌다.


경위님과 통화한 다음 날, 부부가 경찰서에 왔다고 들었다. 블랙박스를 확인했을 땐 사고 영상은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차량 긁힌 자국에 대해서 묻자, 남편이 그제야 "언제 긁혔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차량이 긁혔다고 하면, 경찰서에 오기 전에 본인의 차량을 확인했을 텐데, 그 반응이 이해되진 않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결국 보험 처리하기로 했다.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쩌면 진짜 몰랐던 게 아니었는지 싶었다. 차주 남편에게 사과를 받았다. 친구들은 몰랐다는 거 자체가 거짓말이니 속지 말라고 했다. 난 여전히 모르겠다. 이미 밝혀진 걸 왜 그렇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짜 몰랐던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좀 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곱씹게 됐다.


주차장에 씨씨티비가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블랙박스도 차가 흔들리는 정도만 보이고, 큰 부딪힘이 아니면 기록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때 알았지만, 범인을 못 잡으면 보험 처리도 안 된다. 그래서 보통 다른 사람이 차량을 긁어주길 기다린다고 한다. 그때 한 번에 교체하려는 마음.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내 담당 경위님도 "제가 살인 사건이나 이런 것들도 많아서 이 사건을 오래 보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내 사건은 소소하고 다른 사건이 더 중요한 건 맞다.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피해를 준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차를 긁혀서 답답해서 전화한 건데. 이렇게 차를 긁고 도망가는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경찰에서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없다면 뭔가 다른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블랙박스 업그레이드나 뭐 다른 것들.


경위님은 끝까지 씨씨티비를 확인하지 않았다. 범인을 잡았으니 결론적으로 좋은 거지만, 씨씨티비로도 잡을 확률이 높은 게 아니라 경찰이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말도 많았다. 잘 해결해 줄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일단 블랙박스를 고치는 일.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법이나 절차를 숙지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잘못을 인정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 내가 나쁜 마음먹고 차량 범퍼를 갈겠다고 할까 봐 그런 걸까. 이런 악순환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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