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리뷰 (스포 있음)
영화 <패터슨>을 보면서 떠오른 질문
1. 마빈이 패터슨의 시집 노트를 찢어버린다. 패터슨이 매일 애정을 갖고 쓰고 다듬었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대면했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패터슨은 상실감에 폭포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때 일본의 한 시인이 등장한다. 시인이 건네준 노트를 받자마자 패터슨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패터슨이 쓴 시가 세상에 없어졌다고 해도 그가 썼던 과정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말하듯이. 다시 쓰는 용기에 그가 진짜 시인이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라면 이런 망연자실한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나아갈까?
2. 마빈은 어떤 강아지일까? 의도적으로 우체통을 삐뚤게 만들고 패터슨의 시집을 찢고, 늘 가던 산책 코스가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마빈! 패터슨의 안정적인 일상을 자꾸 바꾸려고 하는 거 같은데, 다들 마빈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놀고 싶어 하는 걸까? 참고로 마빈은 칸도그상을 받았다고 한다. 연기를 잘한 강아지에게 주는 상이라던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연기를 잘 하긴 한다.
3. 시와 시인을 이야기할 때 패터슨의 눈이 반짝인다. 그만큼 시를 좋아하며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시를 쓰고 잠들기 전에 낮에 쓰지 못한 시를 마저 쓰기도 하는데,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건 주저한다. <패터슨> 영화 안에서도 아이와 일본 시인의 시를 들었어도 자신의 시를 들려주진 않았다. 당장은 조용히 시를 쓸 것 같지만, 언젠가는 패터슨이 자신의 시를 보여줄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점이 언제일까?
한 줄 평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여도 다른, 우리는 언제든 빈 페이지를 채워나갈 준비가 되어있을지도!
줄거리이자 느낌
Monday로 시작하여 다시 Monday로 끝나는 형식으로 패터슨의 일상을 요일마다 보여준다. 형식이 주는 안정감이 있지만, 단조로움도 있다. 물론 뒤로 갈수록 아내 로라가 플리마켓 준비를 하거나 마빈이 시집을 찢으면서 비슷했던 아침이 조금씩 달라지긴 한다. 묘한 긴장감을 주는 음악 덕분에 위기가 찾아올까 조마조마하면서 봤다. 하지만 자극적인 거에 익숙한 내게는 눈에 띄는 갈등 지점은 없었다. 영화 <패터슨> 감독 짐 자머시는 영화로 만들 것 같지 않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기 같은 형식을 과감하게 만든 이유도 짐 자머시 감독이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패터슨은 핸드폰 알람이 아닌, 눈이 떠지는 시간에 일어나 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고 아내에게 뽀뽀를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월요일에는 아내의 쌍둥이 꿈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일까. 근무하는 내내 패터슨의 눈에는 유독 쌍둥이가 눈에 띈다. 원래 쌍둥이는 늘 있었지만, 아내의 말로 인해 쌍둥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걸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영화 같은 화려한 꿈을 꾸면 아침 플레이리스트부터 당찬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 소재가 내 하루를 긴장감 있게 만든달까. 그런 의미에서 <패터슨>의 배경음악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하긴 했지만 조금은 반복되는 듯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도는 사운드 덕분에 안정적인 일상이지만 무언가의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긴장감도 든다.
영화 <패터슨>은 비슷하지만 하루하루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아침에 시리얼을 먹다가 본 성냥개비가 영감의 소재가 되고 아내의 꿈 이야기가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늘 익숙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이러한 소재들이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누군가에겐 패터슨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리얼을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시를 쓰고 저녁도 못다 쓴 시를 마무리하고 매일 같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소소한 변화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일상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반복되지만, 다르게 보이는 건 등장인물에서도 한 몫한다. 영화 주인공 패터슨은 극 I의 느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도 않을 것 같은데 혼자 앉아 있는 소녀에게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을 건다. (실제로 패터슨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았을까.) 패터슨에게 작은 변수가 시작됐다. 아이의 시를 들으며 일상에서 아이의 시를 떠올린다. 그 아이 역시도 쌍둥이였고 쌍둥이 자매는 시를 쓰지 않는다며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빨래방 래퍼, 일방적인 헤어짐(?) 커플, 펍 사장 등도 등장한다. 또한, 공간에 따라 패터슨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내와 있을 때는 조심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이 보이지만, 바에 있을 땐 크게 웃는 패터슨을 볼 수 있다. 좀 더 편안해 보인다. 단순히 술이 들어가서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처음에 패터슨과 아내 로나랑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했다. 성격과 성향이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에 이 둘이 부부인 게 신기했달까. 근데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이 둘이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 했다. 집에는 로나가 그린 여러 패턴이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무색인 건 패터슨의 베개뿐이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로나와 달리 패터슨은 매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길을 운전하는 버스기사이다. 다만 일상 속에 숨은 소재를 찾아 시를 쓴다. 패터슨에게도 예술적인 면모가 있다는 뜻이다. 제대로 표출하고 있지 않는 패터슨과 달리 아내 로나는 이를 자유롭게 표출한다. 이에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또한 아내가 비싼 기타를 산다고 했을 때 패터슨의 표정이 굳어지지만 아내의 꿈을 응원해 준다. 잘 받아주는 성격이며 아내 역시 마빈이 시집을 찢었을 때 패터슨 대신 화를 내주면서 패터슨을 잘 이해해 준다. 잘 맞는군.
집은 온통 로나가 그린 패턴뿐이다. 패터슨 성격상 정신없다고 생각할 거 같은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키는 듯한 표정도 아니다.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 그래서 아내를 사랑하지만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패턴이 곧 일상의 패턴과 연결되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일본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쓴 시가 사라져서 폭포 앞에 있을 때 일본 시인이 패터슨에게 시인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답하지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패터슨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때 패터슨도 시인이라는 걸 알아차렸을까. 빈 노트를 선물로 주면서 자리를 뜨는데, '아하!'라는 말을 한다. 약 3번 정도 하는데, 약간의 연기톤이 섞여 있어서 처음엔 영화를 긴장감이나 흐름을 방해받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아하‘라는 감탄사 자체가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무언가를 깨달아야 하는구나 라는 느낌도 있었다. 또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순간에 알게 된, 너랑 나밖엔 몰라,라는 농담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도 든다. 너 다시 시 쓸 거지? 난 알아!
패터슨은 그 노트를 받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며, 아쉽긴 해도 계속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그간 썼던 글, 시각들이 연습이 되어 또다시 시를 쓸 용기를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닐까 싶다. 각자에게 빈 노트가 하나씩 주어져 있을 수 있다. 이걸 채워나가느냐 나가지 않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내 노트의 가치가 변할 순 있겠지.
"빈 종이가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주지요."
추가로 쌍둥이를 보여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얼굴은 똑같지만, 대조되는 인물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패터슨의 쌍둥이는 누구일까. 글을 보이고 싶은 마음과 보이고 싶지 않은 내면에 잠들어 있을까. 일상과 예술, 일상과 시의 연계성이 어쩌면 쌍둥이일 수 있지 않을까.
영화독서 모임에서 나눈 대화와 생각을 정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