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을 하면 표정도 달라져, <파벨만스> 리뷰

by 매실

이 영화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 리뷰 쓰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자리 잡고 써야 하는 글이 많아지면서 글쓰기를 미루게 됐고 까먹은 작품이 쌓여갔다. 결국 쓰지 않고… 이랬던 내가 오랜만에 리뷰를 써보자고 자리를 앉게 만든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틸버그 <파벨만스>. 집 근처에 상영하는 곳이 없어 굳이 서울 목동까지 갔다. 상영 시간도 애매했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심지어 요새 고민과 맞닿아있어서 무언가의 정답을 발견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영화를 재관람하며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하고 싶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떠오르는 장면 속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대로

엄마 아빠와 함께 간 영화관, 새미는 <지상 최대의 쇼> 영화에 나온 기차 충돌한 장면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잠 못 들 정도로 생각한다. 아빠가 사준 기차 장난감을 보고 조용히 충돌 장면을 재연해 본다. 엄마는 새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카메라를 주면서 ‘충돌 장면' 없이 장면을 찍어보라 한다. 다양한 시도 끝에 촬영을 마친 새미는 한 장면을 완성하면서 카메라와 하나가 된다. 동생들의 유령 분장을 도와 찍거나 상황을 연출하면서점점 영화에 흥미를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가족 모두가 응원해 줬기 때문에 새미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책 읽었니?' '숙제했니?' '그런 건 하는 게 아니야.'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생각해 보면 늘 이유가 빠져 있었다. 숙제로 내준 책을 읽지 않고 독후감을 쓴 적도 있다. 책이 너무 어려웠고 재미없었다. 아니 사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첫 장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확신했다. 나는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하지만 아니었다. 대학교 때 전과를 하면서 남들보다 뒤처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읽은 책이었다. 책이 재미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만약 책의 재미를 알려주는 교육 방식이었다면 독서하는 사람이 지금보단 많지 않았을까? 보통의 엄마라면 새미의 기차 충돌하는 장면을 보면 우리 아이가 이상한 건 아닌지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새미를 이해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꺼내줬다. 새미는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탐구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건 꽤나 위험하고 흥미로우며 즐겁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새미는 하고 싶어 하는 분야를 쫓았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그걸 좋아하는 새미가 있었기에 창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행복한 일을 하면 표정도 달라져

네 삶의 주인은 너야. 네가 원하는 것을 해.
네 엄마도 가슴속에 우리와 같은 것이 있었어.
예술이지


앞서 말한 것처럼 요즘 고민이 있다. 아니 정말 끊임없이 하던 고민이고 여전히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존재이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서 상담을 받기도 하고 명상원을 찾거나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본질적인 문제를 모른 채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만 찾았다. 잠깐은 피할 수 있겠지만 영원히 피할 순 없었다. 나한테 어떤 질문을 하면 이 답답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질문은 없었다. 그러다 새미가 영화를 찍으면서 짓는 표정을 보고 조금 알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 성인이 된 새미가 대학교를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황장애가 생겼다. 일은 해야 한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나와 맞는 일을 하는 게 조금 덜 괴로운 편이 아닐까.


일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료하며 답답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 표정이 좋았는지 생각해 봤다. 일단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사무적인 일도 하고 활동적인 일, 이를 테면 인터뷰를 하거나 현장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업무 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일도 적절하게 섞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나의 일을 꾸준히 하기보다 시도하고 결과를 보며 성취감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일, 일하면서 지루할 틈이 없는 것도 필요했다. 무작정 일이 좋다 싫다가 아니라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 나와 맞고 맞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했다. 덕분에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일이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일 때가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분야라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단, 고충 없는 일은 없고 완벽한 직장도 없다. 그럼에도 일의 애정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긴 하다. 어떻게 자신과 맞는 일을 찾았을까? 다 맞지 않아도 한 부분이라도 나와 맞고 그 부분이 꽤나 달콤했나 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다 좋을 순 없다. 내 시선에 맞게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제대로 들여보다면 아름답지 않은 진실을 발견할 때도 있다. 새미가 좋아하는 영화를 찍다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카메라를 놓자 그의 삶이 늘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어떤 계기로 다시 카메라를 들게 됐고 새미 표정은 다시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런 새미를 보면서 가슴 뛰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구나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 분야로

지평선은 아래 있어도 좋고 위에 있어도 흥미롭지만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어


내가 영화감독을 하고 싶으면 영화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회를 찾고 다가가기 쉽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모임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고 서점에 가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나와 거리가 있는 일이라며 스스로 선을 긋게 될지도 모른다. 새미가 좋아하는 감독을 만나 덕담을 듣고 거리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장면이 좋았다. 이런 과정 끝에 스티븐스틸버그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유명한 감독이 된 것도. 진짜 영화 같은 삶이네.


영화를 시작하게 된 전반적인 과정을 봤다. 새미에 집중된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네 이야기인 듯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 가족 간의 갈등, 여자친구와의 갈등, 미래에 대한 고민 등이 다 담겨 있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영화를 찍지 않다고 결심했던 새미가 땡땡이의 날 촬영을 한다. 그때 새미는 자신을 괴롭혔던 로건을 영웅처럼 찍었다. 로건은 새미에게 왜 그랬냐며 따져 물었다.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자신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늘 강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보이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어떡할지, 그걸 받아들이면 정말 그 정도의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공감됐다.

내가 다칠까 봐 피하고 외면했던 것들. 나는 안 될 거라며 단정 짓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렇기에 파벨만스를 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성장 없이 멈춰있는 내게 더는 좋아하는 일을 피하지 말라고, 지금의 내 표정을 읽어 보라고 말하니 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적어도 나를 모른 척하진 않겠지. 이런 모든 깨달음을 던져준 <파벨만스>가 내 인생 영화가 아닌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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