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까짓 게? 그러게 나까짓 게 뭐라고

by 매실

어디선가 가스라이팅 당하기 쉬운 유형을 봤다. 상대와 부딪히는 게 싫어서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 즉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할수록 가스라이팅에 당하기 쉽다고 한다. 맞다. 나는 가스라이팅 당하기 좋은 유형이다.

일을 하면서 내가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업무를 할 때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는데, 평가받는 게 두려웠고, 좋은 평가가 나올 때까지 나를 탓하고 갉아먹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겠지? 기대감을 낮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할 수도 없으니 나는 내가 만든 만족과 욕구 안에서 스스로를 가뒀다. 누구나 부족할 수 있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작은 실수를 확대 해석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작아지도록. 그러니 '네까짓 게?'라고 직접적으로 들은 적이 없는데도 나를 보는 시선들이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의견 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비웃겠지? 조용히 해야겠다. 네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이 말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완벽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거라고, 실수했으면 그 지점에서 다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말은 쉬웠다. 아무리 마음을 그렇게 고쳐먹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여전히 평가는 무서웠다. 회의 시간에는 꿀 먹은 사람처럼 조용히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나였는데. 기획서를 수십 번 확인해도 계속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빨리 피드백받고 수정하는 시간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 피드백을 최대한 늦게 받으려고 수를 쓰며 시간을 버렸다.

돌이켜 보니, 내가 이렇게 된 건 '사람'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첫 직장 빼고는 사수가 없었다. 첫 상사는 내 옆에 서서 많은 걸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목표가 동일했고, 목적을 함께 달성하기 위해 서로의 성장을 응원했다. 그 뒤로는 사수 없이 대표가 내 직속 상사인 경우가 많았다. 대표는 항상 바빴기 때문에 항상 혼자서 스스로 문제와 해결을 찾으며 나아갔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책임감이 컸나 보다. 실수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는 시간이 없었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화를 내며 불필요한 소모품 취급을 했다. 그렇지 않은 회사도 많은데, 난 참 직업운이 없었나 보다. 20대 때는 하나같이 그런 곳만 골라서 다녔다.


어떤 곳에서는 한 퇴사자가 말했다. "그렇게 사람을 몰아세우지 마시고, 그렇게 살지도 마세요." 어떻게 했길래, 저런 말을 하지? 설마 나한테 그러진 않겠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러다 그 몰아세움이 뭔지 알게 되는 사건이 생겼다. 그걸 한 두 번 겪고 나니 공황장애가 왔다. 굳이 내 자리로 와서 높은 톤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보다 스트레스를 주는 게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 밑에 있다 보니 모든 게 싫었다. 그 사람이 회사에 오지 않기를 바랐고, 점심을 따로 먹길 바랐다. 회사에 출근하는 걸 보는 순간 기운이 빠졌다. 즉, 하루의 반을 머물고 있는 곳이 지옥이 됐다. 그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곳도 내 상사가 대표였기 때문에 그 부담감과 책임감의 무게는 컸다. 칭찬할 때와 나를 몰아세울 때의 온도를 모두 경험해 봤다. 매일 혼내다가 한번 칭찬해 주면 그게 좋아서 바로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칭찬도 박해졌다. 그렇기에 잘해도 잘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무응답이 잘했다는 거라는 거로 이해해야 했다. 답이 오기 전까지 항상 긴장 상태였다. 바빠서 답이 없는 건지, 내가 실수해서 답답함에 답이 없는 건지 몰랐으니까. 다시 나를 낮게 평가할까 봐 전전긍긍거렸다. 한번 생겨버린 고정관념은 꽤 오래 유지됐고, 그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잘해도 어쩌다 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회할 기회마저 없어진 것 같았다.


다행히 퇴사하면서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 아쉽게도 이전 퇴사자처럼 당차게 말하진 못했다. 설명해서 뭐 해. 말하는 내 입만 아프고, 그걸 떠올리는 나만 괴롭지. 오랜 기간 그곳에 있어서 그런지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를 망가뜨리는 곳에 있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들이 나를 작아지게 보니, 나도 나를 작은 사람으로 봤다. 나만큼은 나를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계속 내가 못나니까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까짓 게 그렇지 뭐. 타인의 시선에서 내가 만든 시선에 갇히게 된다.


나는 그런 시선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고, 나만의 이직 규칙을 만들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느냐, 회사 분위기는 어떠한가. 면접 볼 때마다 항상 물어봤다. 그렇게 나를 지킬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나를 원하는 회사를 경험하면, 내가 문제가 아니라 이전 회사가 나와 맞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당장 돈이 급하다고 이전과 비슷한 회사에 입사하면 똑같은 일만 반복될 것 같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와 맞는 회사를 찾는 게 나를 위한 길인 것 같았다. 나와 가치관이 맞고, 서로의 방향성이 맞으며 존중과 배려, 갉아먹는 피드백이 아닌 함께 해결하는 피드백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나도 사람인지라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대접받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상대가 만든 이미지에 갇히기 싫지만,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