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는 친구가 좋았다. 물론 30대인 지금도 친구가 좋다. 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20대 때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라도 나를 부르면 무조건 나갔다. 술잔을 부딪히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밤이 즐거웠다. 누간가 나를 찾는다는 사실이 좋았고, 술기운에 마음이 붕 떠오르는 순간도 좋았다.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내 사람이라 믿었기에, 나는 늘 진심을 다했다. 이런 관계가 유지될수록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존재 의미도 생겼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즐거움이 서서히 불편으로 바뀌었다. 자리에 없는 친구의 흉을 보거나, 함께 있는 사람의 상처를 웃음거리로 삼는 친구 때문이었다. 감추고 싶었을 트라우마를 꺼내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 어떤 날은 내가, 어떤 날은 다른 친구가 그 대상이 되었다. 내 상처가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의 기분을 알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하지만 모두가 웃고 있었기에 나는 정색할 수 없었다. 나로 인해 그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는 게 싫었다. 상대의 행동은 옳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 건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그래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즐거움보다 피로가 앞섰다. 아마 그 친구는 본인이 친구들을 웃길 수 있다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소속감의 중심에 선다는 기쁨도 있었겠지. 처음엔 이해하려 애썼지만, 함께 있을수록 나는 작아졌다. 만약 그 친구가 내가 입은 옷을 지적하면, 나는 그 옷을 입지 않고 버렸다. 그 친구가 생각한 것처럼 모두가 나를 그렇게 볼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나는 친구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눈에 띄지 않아야 내가 타겟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노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피곤했고,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곱씹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나를 깎아내리는 자리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가 온다는 말에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놀고 싶었지만, 더는 즐겁지 않았다. 언제 내 치부가 꺼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대화보다 앞섰다. 내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던 날이면 다행이라 여겼다. 좋지 않은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시절의 나는 ‘함께 있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어느새 지침과 피로가 쌓였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싫어졌다. 이유를 만들어 약속을 거절했고,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되자 나를 부르는 연락도 줄어들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내가 잊히는 건 아닐지, 심심한 20대를 보낸 걸 후회하게 되지 않을지. 그럼에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대신 혼자 있는 시간을 택했다. 그 시간에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았다. 늦었지만, 덕분에 나의 취향과 경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야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의 연락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받아주는 친구들 덕분에, 애써 붙잡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 또한 내게 불편을 주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뭐, 조용히 손절하는 사람이 무섭다곤 하지만, 나라고 바로 손절 쳤을까. 20대는 노력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뻔히 보이는 미래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뜻과 무관하게 멀어지는 관계도 겪었다. 모든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마음을 여는 일이 언제나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도. 선을 긋는다는 건 나를 지키는 일이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상처받기도 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나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함께 있을 때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친구는 누구인지 구분해 낼 수 있다. 덕분에 그 친구들과 있을 때 편안하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뭐든지 당연한 건 없다. 내가 상대와 있을 때 편하다는 건 상대가 내게 준 배려일 수 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지킨다는 건 상대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감사함을 여기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나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진 사람들은 주로 나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이었다. 말의 영향을 받는지라 말투가 날카롭게 날아오면 나도 모르게 상대를 피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전에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즐거웠던 내 일상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가 이전에 비해 많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행복하고 즐거운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