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느라 내 생각과 다르게 괜찮다고 말하던 날들

by 매실

대학교 때부터 일을 했다. 일하면서 대학교 동아리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과 동아리를 콜라보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친구들은 일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반전! 웃으면서 할 말 다 하네." 친구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 듣는 편에 가까운 쪽이었기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의미를 잘 전달해야 오해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애썼던 기억은 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만약에 친구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장점을 생각해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의견 내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생겼다. 내가 의견을 내는 게 즐거웠던 이유는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 덕분이었다. 의견이 별로여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기 때문. 덕분에 의견을 말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더 나아가기 위한 다음 단계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회사가 이렇게 소통하기 좋은 환경일 리 없다. 본인이 생각한 결과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때 한숨을 쉬거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경험을 할수록 의견을 말하기보다 말을 아끼는 걸 택하게 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보다 상대가 생각하는 정답을 찾기 바빴다. 우리 타깃이 소비자여도 말이다.


회사복이 없는 건지, 나는 주로 직원을 몰아세우는 회사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압박감에 말을 계속 버벅거렸다. 이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어느새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말을 하다가도 귀찮게 느껴지거나 말을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제가 뭘 말하려고 했는데 까먹었어요. 이따 다시 얘기할게요라고 넘기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로 나를 판단할 거라는 걸 알게 되니까 말하는 게 어려워졌다. 가볍게 던지는 아이디어 회의시간에도 내가 말하면, 내 아이디어가 어이없다고 생각하겠지? 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다 내게 의견을 물으면 "아까 말씀하신 거 괜찮은 것 같아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했다. 의견을 말할 때도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말을 못 한다니. 상대가 틀릴 수도 있는 건데, 정답은 없는 건데. 나는 무조건 상대의 말이 정답이며 나는 그 정답을 맞혀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처럼 눈치를 살폈다. 말하면서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살폈고, 입꼬리가 올라가면 내 의견을 좀 더 확실하게 말했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면 저도 아직 확신은 없지만, 이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 듣는 소설 수업에서도 이런 기분을 종종 느낀다. 말을 조리 있게 잘 전달하는 사람을 보면, 귀에 쏙쏙 들리게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나 자신이 작아진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저렇게까지 설명하지 못할 텐데. 이 생각 때문에 목소리는 기어가고, 제가 잘 못 읽은 것 같은데 라며 밑밥을 깔았다. 또 내가 느낀 감정이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말하지 않을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나 다음으로 말한 사람이 내가 하려던 말을 하면, 그냥 말할 걸 후회한다.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니었네 하면서.


같은 걸 읽어도 이해도와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른 기획안이 나온다. 그러니 지금처럼 자꾸 눈치 보면서 말을 아끼고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 혹은 그런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지! 상대를 탓하며 나를 지켜내자고! 물론 내가 다르게 이해했음을 받아들이고, 왜 이렇게 해석했는지 이유는 말할 수 있어야겠지. 그러려면 지금처럼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말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던지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 그렇기에 나는 내 의견에 이유를 붙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내 의견에 확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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