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혀지지 않는 가족의 간격

[영화] 걸어도 걸어도

by 매실

좁혀지지 않는 가족의 간격

[영화]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모두 좋아하는 영화이고 이 작품 모두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들었다. 잔잔하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영화. 눈이 휘둥그레지는 반전영화나 감정 기복이 심한 영화가 아니다. 내 이야기 혹은 내 옆에 있는 이웃이나 친구 이야기랄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나를 생각하게 한다.


걸어도 걸어도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에서 주는 여운이 있다. 어머니가 혼자서 간직하고 있는 음악 속에 나오는 가사이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의 간격이랄까. 2시간 정도 러닝타임이지만 영화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보여준다. 사고로 죽은 장남인 준페이 기일.


KakaoTalk_20180810_125646777.jpg

거리가 필요한 가족

아버지는 의사다. 자식 중 한 명이 자신의 뒤를 이어가길 바라지만 장남은 죽었고 료타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대화하면서도 서로 못마땅해하는 게 보인다. 아버지는 애 있는 여자가 재혼하기란 쉽지 않다며 속 마음을 말하는 반면 엄마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답답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준페이를 직접적으로 죽이진 않았지만(어떻게 죽었는지 나오지 않음) 기일마다 오는 요시오를 그만 오게 하려는 료타의 말에 "왜 그래야 하는데" 라며 가슴속에 품고만 있던 말을 꺼낸다. 잠옷도 료타껏만 챙겨주는 모습에서 유카리와 료타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수락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좋아하니까. 엄마로서 응원해줄 수밖에.


KakaoTalk_20180810_125644146.jpg

그럼에도 가족은

기일이지만 우리 집 명절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작년에 했던 말을 하면서 웃고, 안부 물으며 상처 받고 상처 주는 모습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아들 준페이 죽음은 여전히 슬프다. 요시오를 대하는 아버지의 행동에서 알 수 있고. 방으로 날아와 준페이 사진 위에 올라온 나비를 보며 어머니의 행동에서 볼 수 있다. 그냥 나비일 뿐이라는 료타. 준페이를 생각하는 부모님과 이제 현실에서 살았으면 하는 료타.


료타는 아버지가 요시오에게 "하찮은 사람"이라고 할 때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좋지 않냐며 젊어서 괜찮다고 한다. 마치 자신을 대변하듯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가족이라도 속마음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거봐, 엄마 아빠 말 들었으면 좋았잖아"라고 할까 봐.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앞날을 미리 예측하고 상처 받을 것을 예상하게 되니.


KakaoTalk_20180810_125644698.jpg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 누구나 있기 마련이에요.


걸어도 걸어도

가족이라 말하기 어렵고, 가족이라 마음에 담아둔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 간에 간격이 생기는 것 같다. 부모님과 료타, 유카리와 어머니, 아츠시와 료타 등. 강하게만 보였던 아버지가 작아 보인다. 옆집에서 몸이 좋지 않다고 하자 응급실을 부르라고 한다. 더 이상 치료를 도와주기 힘들다며. 아버지의 뒷모습이 작아 보인다. 이 장면에 맘이 아팠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부모님과 싸우고 나면 부모님이 작아 보일 때가 있다. 설거지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이라던가. TV만 보는 아버지 어깨라던가. 화냈던 내 모습이 미우면서 부모님께 죄송해진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가까워지려면 멀어지고 멀어지려면 더 가까워진달까. 어렵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KakaoTalk_20180810_125647408.jpg

여전히 어려운 가족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아버지는 가족이 다시 모일 날을 "다음엔 설에나 보겠다"며 얘기하지만 료타는 정작 "1년에 한 번이면 족하지..."라고 한다. 가족 간의 간격.


료타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3년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결국 자동차에 타고 이동하는 게 소원이라던 엄마와 축구장을 가기로 했던 아버지의 약속 모두 지키지 못했다. 료타의 목소리에 후회가 담긴 것 같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릴걸. 한 번이라도 더 뵐걸. 부모님이 원하던 걸 미리 해줄걸.

하지만 그때도 분명 알았을 것이다. 맘처럼 쉽지 않았을 뿐. 알아도 바빠서, 알아도 또 싸울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계속 미룬다. 우린 어떤 노력을 해도 그 간격을 좁히기 힘들 것이다.


KakaoTalk_20180810_125645542.jpg

부모님 기일에 묘지에 간다. 료타는 묘석에 물을 뿌리며 어머니가 했던 말을 한다.

오늘 더웠을 텐데 기분 좋죠?


딸이 생겼다. 이들도 그 사이에 진짜 가족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다 보여주지 않아도. 가족이 되어가면서 여러 감정을 느꼈고, 많이 성장했을 거란 걸 안다. 부모님은 늘 말한다. "너 같은 딸 낳아봐야 내 맘을 알지"


아츠시가 준페이 기일에 말했다. 죽었는데 누구한테 말하냐고. 유타리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들 몸에도 엄마와 아빠가 섞여있다고. 료타는 천천히 들어올 거라고. 아직 아빠를 잊지 않는 듯 보이지만. 어린아이에겐 아빠가 필요했기에 료타와 결혼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이젠 료타도 한 가족이 되었겠지.


노란 나비를 보며 말한다.

저 노랑나비는 말이지,
겨울이 되어도 안 죽은 하얀 나비가 이듬해 노랑나비가 되어 나타난 거래


어머니가 전해준 말 그대로 자식에게 말한다. 사라지지 않는다. 늘 곁에 있다. 아들이 태워주는 차에 타보고 싶다던 료타 어머니 말이 생각났다. 차가 필요 없다고 했던 료타. 료타 마음속에도 늘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어제 아빠와 싸웠다. 한 마디도 안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된다. 아빠가 묻는 질문에 단답형으로 말하지만 계속 불편하다. 화가 나도 아빠니까, 화가 나도 앞으로도 계속 살 가족이니까. 그 생각에 서로의 감정을 풀지 않은 채 덮고 살아간다. 상처 받으며. 그래서 가족이 제일 어렵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며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 가족이라 서로 말하지 않고 참고 사는 건 누구나 그렇다고. 잘하려 해도 맘처럼 안되며, 늘 후회한다고.

그렇게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