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Sep 09. 2018

별 아래에서 나눈 대화

몽골 2일 차

[여행하는 느낌 없이 그저 웃는 시간] 2편 다시 읽기


8월 30일 테를지


조식이 있다. 7시부터 10시까지. 5층으로 내려가 룸 번호를 말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빵, 베이컨, 치즈 등 다양했지만 너무 짜거나 싱겁다. 중간이 없다니 큰일이네. 오렌지 주스가 제일 맛있었다. 조식을 먹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사람이다.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한국사람. 그때 아저씨 2분이 내려오셨고 직원이 '룸넘버?'라고 했지만 손 인사하고 식사하셨다. 지은이는 직원분 표정을 보며 웃었고, 아저씨의 손인사가 너무 귀여우셨다고 했다. 갑자기 아빠가 생각났다. 회사 사람들이랑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몇 시인지 알기 위해 팔목을 치며 바디랭기쥐로 대화했던 일화가.



우리가 예약한 여행사 후기가 좋지 않았다. 제시간에 오지 않고, 불친절하고 불판을 던지는 등. 하지만 8시 30분 시간에 딱 맞춰 로비 앞에서 사진 찍는 우리를 발견하고 인사해주셨다. 송다혜가 발음대로 쓰여있어서 내가 아닌 줄. 한국말 가능한 가이드 언니 한 분과 몽골 운전기사님이 계셨다.



2일 동안 먹을 우리의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마트에 갔다.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린 것 같은데. 엄청 큰 마트다. 이동거리가 꽤 있는데도 사람이 있는 거 보면 신기하다.


장보고 칭기스칸 동상을 봤는데 엄청 크다. 안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신발과 다양한 칭기스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보면 주변이 다 초원이다. 어제 비가 와서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 가득.



게르로 가기 전, 독수리 체험이 있다. 나는 무서워서 멀리서 지켜봤다. 지은이와 주영이는 독수리 체험을 했는데 사진에만 멍쩔해보인다. 겁먹다가 사진찍을 땐 무섭지 않은 표정을 지은 뒤 바로 독수리를 내리는 두 친구. 지은이와 주영이는 작은 독수리로 체험했다. 지은이는 작은 독수리를 팔에 올려놓고 무서워 내려놓고 도망갔는데 바로 옆에 더 큰 독수리가 있다고 했다. 그 놀람이 뭔지 알 것 같아. 진짜 너무 커. 독수리를 올린 두 친구의 표정을 보니 체험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잠시 쉬는 동안 언덕 아래에 있는 마을을 구경했다. 몽골은 지붕 색깔이 다양해서 예쁘다.


나 분명 신발 신었는데 맨발로 뛰어다니는 기분 뭐지. 이 사진을 보니, "앞에 보지 마, 뒤돌아 있어"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라며. 앞모습은 절대 안 된다며.



게르에서 잠시 쉬었다가 테를지 국립공원을 산책했다. 걸으면서 나무와 강을 봤다. 지은이가 여기서 강만 보이면 예쁠 거라 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이 보였다. 물살이 세고 빠르다. 낚시하는 사람과 물 앞에서 노는 사람들, 물길 건너는 말과 다람쥐까지 볼 수 있다. 주영이의 카메라 소리가 들렸다. 아, 쟤는 뭔가 있어 보여. 갑자기 내 카메라가 작아 보여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사원 보고 거북이 바위를 보러 갔다. 이렇게 간단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블로그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멋있지만 '우와'가 끝이다. 웅장 한 건 맞지만. 너무 좋아 입을 벌릴 만큼은 아니랄까. 사원을 올라가면 판을 돌릴 수 있다. 판이 돌아가다 멈춘 숫자를 찾으면 올해 운세(?)를 알 수 있다. 나는 다음 생에 부자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거라 했다. 올해운 알고 싶은데. 올해는 이미 끝이란 건가. 숫자 운을 보고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면 사원이 나온다. 안에서 염주를 손으로 하나씩 만졌다. 만지면 좋다고 하길래. 밖에도 돌리는 게 있는데 손으로 돌리면서 한 바퀴 돌면 좋다고 한다. 나쁜 기운이 나간다고 했던 것 같다. 사원에 앉아있으면 나무 냄새와 주변 사람 소리가 섞여서 뭔가 편안해진다.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하늘 보며 눕는 듯 나른해진달까.



오늘 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따로 있다. 저녁 식사 전 2시간 휴식과 별 보는 시간. 게르 문 앞에 의자를 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생각하지 않고 멍 때렸다. 음악에 집중하기도 했고 내 앞에 있는 산을 보기도 했다. 몽골보다 시골 할머니 집 같지만. 항상 도시에만 있었으니 시골도 나쁘지 않다. 5시쯤이 되어 한적하다. 그 시간과 어울리는 음악을 계속 들었다. 생각해보면 여행 첫인상은 공항에 내려서 만나는 게 아니라 하루 지난 다음에 만나는 것 같다. 첫날은 어안 벙벙하니까. 괜히 내 발아래에 있는 풀을 보고, 내 옆에 있는 게르의 문고리를 봤다. 아까 본 동상보다 내 발아래 있는 초록색 잔디가 더 좋다. 여유로운 이 시간이 좋다. 지은이는 잠들었고 주영이와 나는 밖에 앉거나 산책하며 음악을 들었다. 내 발가락 너무 낙타 발 같아.



평소에도 좋은 사람, 좋은 상황을 만나고 싶지만 여행지에서는 더 심하다. 혼자서 여행하면 비교대상이 없지만

친구랑 여행하면 비교하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이 '어, 이거 예쁘다'라고 하면 나도 보고 싶고. 내가 뭔가 하고 있어도 친구가 하는 게 더 재미있어 보이면 따라 하고. 이렇게 여행하다간 어중간하게 여행이 될 것 같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고 느끼게 하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함께 하기 불편한. 그런 기분은 좋지 않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배려하려 노력한다. 다행인 건 내가 뭔가 먼저 하면 이번엔 내가 할게 혹은 고마워 라고 해주는 친구들이랑 있다는 것. 장난은 여전하다. 찍어달라 하고 뒤돌아서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렸는데 친구들은 이미 떠났다. 포즈 취하면 못 본척해서 무안하게 하고.


게르 주인아닙니다.

인도, 라오스, 치앙마이 이번 몽골. 여행할 때마다 다 다른 감정이다. 인도에선 여행의 재미를, 라오스는 다양한 사람 만나는 재미를, 치앙마이는 혼자 여행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몽골은 걱정 없이 친구랑 웃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날이 좋지 않아 걱정했던 얼마 전과 다르게 너무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오늘도 지은이가 한 건 했다. 저녁시간에 양고기가 나왔고 기사님 쪽으로 뼈가 날아간 사건. 지은이가 여행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더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올 텐데. 요즘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갈수록 나보다 더 몽골사람 같다고 할까?



저녁에 의자를 챙겨 게르 밖으로 나왔다. 보드카를 따르고 라면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별 사진을 찍었다. 낮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다 저녁이 되니 거의 안보였다. 덕분엔 우린 별을 볼 수 있게 됐다. 별 보며 이 시간이 좋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서 본 영화 [색계] 얘기가 나왔다. 너무 좋은 영화라는데 그땐 그런 것보다 성에 눈 뜬 우리였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 그 기억은 선명하다며 웃었다. 근데 왜 갑자기 그 얘기가 나왔지?



구름 뒤로 엄청 밝은 무언가가 보였다. 캠프파이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달이였다. 그것도 엄청 선명한. 생각났다. 우리가 여행하는 날에 슈퍼문이 떠서 별이 잘 안보일 수도 있다고. 막상 달을 보니 좋았다. 역시 걱정은 미리 하는 게 아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


주영이와 지은이가 별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계속 만졌다. 전문 용어가 오고 가는데 갑자기 멍해진다. 분명 우리 3명 모두 사진동호회 회원인데 나만 아닌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2018. 8.29 ~ 9.2 몽골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하는 느낌 없이 그저 웃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