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May 13. 2018

혼자 떠난 여행, 전등사

나와 닮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혼자 떠난 여행, 전등사

나와 닮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맑은 공기가 그리웠다. 집 앞은 도로 공사 때문에 항상 시끄럽고 매연이 심하다. 집 안으로 매연냄새가 들어오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현관문을 닫았다. 마스크가 필수인 이 동네를 벗어나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과 혼자 하는 여행은 다르다. 친구와 함께 하면 서로에게 배려와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 여행하면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정하고 즐길 수 있다.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있다. 난 풀냄새 나는 곳에서 산책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책 읽는 여행을 좋아한다.


멀지만 좋았던 휴식


좋은 공기 하면 시골이 떠오르지만 인천을 벗어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검색하다가 나온 곳은 '전등사'. 일어나자마자 씻고 역으로 갔다. 인천이지만 멀다. 전등사까지 약 2시간 30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더 멀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1대만 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보이는 소나무가 너무 초록색이었다. 이렇게 초록색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들어가기도 전에 소나무에 매료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았고 아침부터 흐린 날씨 때문에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 부는 날이었다. 대웅전을 보면서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곳곳에 있는 벤치에 앉아 책을 보기도 했다. 잠시 책 내용을 머릿속으로 되새길 때, 지나가는 약 50대 후반 부부 인사를 몰래 엿들었다.


자기야, 깍꿍


내 기분과 닮은 오늘


난 여행할 때마다 책을 갖고 다닌다. 그 장소에 맞을 것 같은 책. 난 종교는 없지만 불교의 색감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담긴 벽을, 그 위에 덮인 색감을, 오래되어 나무가 바래진 것을 본다. 하나 둘 천천히 보다 보니 색에 반하고 향에 반했다. 곳곳에는 개개인의 소원이 담긴 돌이 쌓아져 있다. 이렇게 간절함이 있는 반면 어린아이들은 그냥 돌을 쌓기 바쁘다. 누가 높이 쌓는지, 서로 내기하면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소원 적는 사람들을 보고, 벤치에 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보면서 ‘좋다’고 생각했다. 이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가. 순수함을 어딘가 숨겨놓다가 여기에 풀어놓은 기분이다.  


잘 쉬고 싶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들리는 소리가 좋다. 돌을 밟고 나뭇잎을 밟으면서 나는 소리.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나는 풀 냄새가 좋다. 작게 들리는 사람 목소리가 좋다. 지금 이 분위기가 좋다. 몸이 피곤할 땐 집에서 쉬는 것도 잘 쉬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집이 익숙해져도 뭔가 모를 답답함과 심심함이 밀려온다. 아침에 일어나니 문득 나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이 나쁘지 않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좋은 책을 읽고 싶었고, 산책을 하고 싶었던 이 3가지가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에. 걸으면서 생각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일 집 밖에 나가서 놀기 바빴는데 언제부터 집이 편해진 걸까. 매일 집이 그리웠던 것 같다. 뭔가 모를 나의 일상에 지쳤던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과정의 귀찮음과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다는 생각과 사람에게 쓰는 에너지로 편안함만 고집했던 것 같다. 지금은 강요받는 모임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낮잠도 자면서 나의 쉼을 보내고 있다. 나와 맞는 장소가 있는 것처럼 나와 맞는 쉼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떻게 쉬면 더 잘 쉬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겠다.  “일단 커피 한 잔 마시자”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은 사라진 나의 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