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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12. 2018

지금은 사라진 나의 동네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산책했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지금은 사라진 나의 동네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산책했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처음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뭘까. 첫사랑, 첫 자취, 첫 연애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내 어린 시절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돌아올 곳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어렸던 내가 이만큼 자라서 고향을 찾았을 때 안정감, 편안함. 곳곳에 남아있는 내 흔적을 보면서 위로를 받곤 한다. 글 쓰기 시작하면서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걸까. 문득 떠오른 내 어린 시절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쓸쓸하게 남아있는 동네


난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고 지금도 인천에서 살고 있다. 내 기억으로 이사는 3번 했다. 내가 태어났던 곳, 그 집 앞, 나와 동생이 커서 이사 온 아파트. 가끔 궁금하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들이 여전할지.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렴풋이 생각나는 순간들과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엄마한테 들은 몇 가지와 함께 그 길을 산책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이 좋았는데 하필 오늘 폭염주의 문자가 왔다. 양산 쓰고 꿋꿋하게 걷고 있는데 공사현장이 보였다.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살았던 집. 재개발 중이었다. 언덕 아래 있는 내가 살았던 동네까지도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사람은 볼 수 없었고 파리 소리만 들렸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진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추억도 같이 사라져 가는 기분에 괜히 쓸쓸해졌다. 분명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어릴 적 자주 놀았던 롤러브레이드 탔던 언덕 거리의 집들은 문이 열려있었고 창문은 깨져있었으며 가구들이 버려져 있었다. 현관문에는 무언가를 뜻하는 도형이 있었다. 동그라미, 세모, 완료.


사람 살던 동네에서 살지 않는 동네로


내가 자주 놀러 갔던 앞 집 문도 열려있었고 우리 집은 덮개로 가려져 볼 수조차 없었다. 뒷마당에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줬는데. 난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많이 놀았고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나를 찾기 바빴다는 엄마의 말. 어느 날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데 동네 미용실에서 날 돌봐주고 있었고, 어느 날은 슈퍼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간판은 여전히 있었지만 많이 낡았고 불이 꺼져있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 이 거리를 걸으니 너무 황량했다. 온통 쓰레기투성이에 어느 집인지 모를 그릇, 저금통, 공이 버려져 있었다. 넓게만 느껴졌던 우리 집 앞 거리는 좁았다. 그곳에서 기억나지 않은 친구랑 놀았고, 집 앞 계단에서 동생이랑 놀았다.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들어왔던 그 분위기가 아직 기억난다. 내가 살았던 곳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동네를 계속 걸어 다녔다. 잡초가 내 키만큼 자라 있는 걸 보니 재개발이 꽤 오래 진행된 것 같다. 분명 사람이 살았던 곳인데 죽어있는 동네 같다.

앞 집에 도둑이 들었대.
근데 잘 때 옷을 안 입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 그때도 옷을 벗고 있었다는 거야.
무슨 소리가 나서 살짝 눈을 떴는데 눈 앞에 강도가 있었던 거지.
놀래서 멍하게 있는데 그 강도도 당황했는지 목걸이 하나만 들고나갔대.


엄마, 토요 미스터리에서 밤에 이불 완전히 뒤 짚어 쓰면 귀신 나온대


술래잡기 하자


다혜야 마당에 가봐, 수박 잘라놨어, 가서 먹고 있어


꺼내본 옛 사진


이 작은 동네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어릴 적 모습이 기억 속에 살짝 보일 뿐. 이제 나의 옛 동네는 앨범 속에서만 볼 수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그립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옛 사진을 꺼냈다. 엄마가 찍은 내 어린 모습은 재미있었고 그때 좋아했던 옷이 생각나기도 했다. 기억난다고 말하는 내가 신기한 엄마는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웃었다. 지금보다 날쌔고 활발하고 엉뚱했던 내 어린 시절.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많이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매일 뛰어다니던 내가 이젠 뛰기보다 걷길 좋아하고 미용실과 슈퍼를 왔다 갔다 하며 잘 놀았던 내가 낯가림이 심해졌다. 뭐든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인 것 같다. 내가 변한 것처럼 내 동네가 변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지. 사진으로라도 내 어린 시절과 동네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록이 정말 중요하구나. 앨범 작업을 하기로 약속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잠시 어린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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