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산책했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산책했다. 사라진 줄도 모르고.
처음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뭘까. 첫사랑, 첫 자취, 첫 연애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내 어린 시절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돌아올 곳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어렸던 내가 이만큼 자라서 고향을 찾았을 때 안정감, 편안함. 곳곳에 남아있는 내 흔적을 보면서 위로를 받곤 한다. 글 쓰기 시작하면서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걸까. 문득 떠오른 내 어린 시절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난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고 지금도 인천에서 살고 있다. 내 기억으로 이사는 3번 했다. 내가 태어났던 곳, 그 집 앞, 나와 동생이 커서 이사 온 아파트. 가끔 궁금하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들이 여전할지.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렴풋이 생각나는 순간들과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엄마한테 들은 몇 가지와 함께 그 길을 산책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이 좋았는데 하필 오늘 폭염주의 문자가 왔다. 양산 쓰고 꿋꿋하게 걷고 있는데 공사현장이 보였다.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살았던 집. 재개발 중이었다. 언덕 아래 있는 내가 살았던 동네까지도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사람은 볼 수 없었고 파리 소리만 들렸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진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추억도 같이 사라져 가는 기분에 괜히 쓸쓸해졌다. 분명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어릴 적 자주 놀았던 롤러브레이드 탔던 언덕 거리의 집들은 문이 열려있었고 창문은 깨져있었으며 가구들이 버려져 있었다. 현관문에는 무언가를 뜻하는 도형이 있었다. 동그라미, 세모, 완료.
내가 자주 놀러 갔던 앞 집 문도 열려있었고 우리 집은 덮개로 가려져 볼 수조차 없었다. 뒷마당에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줬는데. 난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많이 놀았고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나를 찾기 바빴다는 엄마의 말. 어느 날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데 동네 미용실에서 날 돌봐주고 있었고, 어느 날은 슈퍼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간판은 여전히 있었지만 많이 낡았고 불이 꺼져있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 이 거리를 걸으니 너무 황량했다. 온통 쓰레기투성이에 어느 집인지 모를 그릇, 저금통, 공이 버려져 있었다. 넓게만 느껴졌던 우리 집 앞 거리는 좁았다. 그곳에서 기억나지 않은 친구랑 놀았고, 집 앞 계단에서 동생이랑 놀았다.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들어왔던 그 분위기가 아직 기억난다. 내가 살았던 곳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동네를 계속 걸어 다녔다. 잡초가 내 키만큼 자라 있는 걸 보니 재개발이 꽤 오래 진행된 것 같다. 분명 사람이 살았던 곳인데 죽어있는 동네 같다.
앞 집에 도둑이 들었대.
근데 잘 때 옷을 안 입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 그때도 옷을 벗고 있었다는 거야.
무슨 소리가 나서 살짝 눈을 떴는데 눈 앞에 강도가 있었던 거지.
놀래서 멍하게 있는데 그 강도도 당황했는지 목걸이 하나만 들고나갔대.
엄마, 토요 미스터리에서 밤에 이불 완전히 뒤 짚어 쓰면 귀신 나온대
술래잡기 하자
다혜야 마당에 가봐, 수박 잘라놨어, 가서 먹고 있어
이 작은 동네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어릴 적 모습이 기억 속에 살짝 보일 뿐. 이제 나의 옛 동네는 앨범 속에서만 볼 수 있다. 안타까우면서도 그립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옛 사진을 꺼냈다. 엄마가 찍은 내 어린 모습은 재미있었고 그때 좋아했던 옷이 생각나기도 했다. 기억난다고 말하는 내가 신기한 엄마는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웃었다. 지금보다 날쌔고 활발하고 엉뚱했던 내 어린 시절.
지금 그때를 생각하니 많이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매일 뛰어다니던 내가 이젠 뛰기보다 걷길 좋아하고 미용실과 슈퍼를 왔다 갔다 하며 잘 놀았던 내가 낯가림이 심해졌다. 뭐든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인 것 같다. 내가 변한 것처럼 내 동네가 변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지. 사진으로라도 내 어린 시절과 동네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기록이 정말 중요하구나. 앨범 작업을 하기로 약속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잠시 어린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