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있는 처음, 첫 실수

나만 참는 줄 알았다

by 매실

누구에게나 있는 처음, 첫 실수

나만 참는 줄 알았다


나만 참는 줄 알았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다.
나만 눈치 보는 줄 알았다.
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
말하면 미움받을 거라는 두려움.
비웃을 거라는 지레짐작.
그러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무례하고, 난폭하고 무신경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만했다.
나와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이다.
나만큼 불안하고 나만큼 머뭇대고 나만큼은 착한 사람

청춘시대 1화 中 - 낯선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갈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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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게 익숙하다


참는 게 익숙하다. 참는 게 익숙해지면 늘 피곤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쉬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이 답답함에 벗어나고 싶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성격이 그런 것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을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상처되는 말을 해도,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니 하면서 웃어넘기려 했다. 웃어넘길 수 없는 나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참다 보니 답답했다. 내가. 항상 나만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나만큼이나 참고 있었다. 나만큼 참기 때문에 몰랐던 것들.


친구들과 마신 술 한 잔이 여러 병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꺼내면서 우리는 다 같이 눈물을 보였고 웃었다. 말하면 이렇게 편한 것을, 말하면 이렇게 가벼워지는 것을. 언제부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걸까. 처음이 어렵지, 계속 속마음을 꺼내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처음이라 두렵고 낯설어서 눈물이 많은 그때. 잊고 싶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친구들에게 처음과 첫 실수에 대해 물었다.


처음과 실수 그 사이


A님에게 처음이란 (의류 판매원, 20대 후반)

설렘과 두려움 반반인 것 같아요. 지금은 사진을 하고 싶어요. 반면 이걸로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엄습해오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이 나이에 이걸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설레는 감정이 더 큰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20대 초 중반이든 30대 초 중반이든 언제든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뒤를 보면 그것도 하나의 경력이 생기는 것이라고요.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뭔가를 시작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의 경력을 쌓기보다 좋아하는 걸 열정적으로 해서 만든 경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첫 실수는?

예전에 옷 가게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었는데 한 손님이 A와 B 옷 중에서 어떤 걸 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손님은 A를 더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은데 B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B를 추천해드렸어요. B를 구매하셨죠. 근데 그 두 가지를 계속 고민해서 그런지 B가격이 아닌 A 가격으로 계산했어요. 그걸 나중에 알았어요.



B님에게 처음이란 (빵집 사장님, 50대 후반)

기대하는 편이에요. 의기소침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 될 수 있으면 모든지 담담하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흥분하면 그것만큼 실수가 많은 게 없는 것 같아요. 흥분해서 잘 되는 건 별로 못 본 것 같고. 차분하고 담담해야지 실수를 덜 할 수 있어요.


첫 실수는?

첫 직장이 조선소였어요. 조선소에서 배를 용접을 할 때 용접 위치를 알려주는 일을 했어요. 초반에 제가 잘못 알려줘서 직원들이 다른 곳에 용접했어요. 그래서 그걸 다 빼고 밤새 작업했죠. 진짜 미안했어요. 그 당시엔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일을 더 만들어버렸던 거예요. 10개월 하고 이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해서 그만뒀어요.



C님에게 처음이란 (호주 워홀러 20대 후반)

견뎌내는 거예요. 호주에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수습 기간이 있어요. 이때 업무를 익히고 강도를 파악하며 오너가 이 직원을 뽑을지 직원도 이 일을 계속할지 판단하는 기간이죠. 워홀 특성상 우리들의 언어 실력에 한계가 있어 대부분 몸이 힘든 일들을 많이 해요. 그 기간이 끝나고 혹은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죠. 어떤 일이든 처음은 힘들고 어렵잖아요. 이걸 받아들이고 견뎌낸다면 일하는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잖아요. 개인적인 제 생각으로는 처음에만 집중하지 말고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지금 나의 방향을 확인하고 끝까지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첫 실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나쁜 버릇이 생겼어요. 정말 안 좋은 건데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하는 거예요. 제가 주방일 할 당시 싱크대를 막아놓고 설거지하라 했는데 못 알아듣고 씩씩하게 알겠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했죠. 제가 대답을 잘 하니까 오너는 자기 말대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제가 막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혼내셨어요. 들어보니 안 막고 하면 음식물이 하수도를 막아 물이 역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늘 저에게 너 이해했어?라고 물어보고 내가 이해했다고 해도 "Are you sure?"라고 한번 더 확인하셨어요. 저도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중이에요. 그래도 손님이 난감하고 무례한 질문 하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해요.



D님에게 처음이란 (간호사, 20대 후반)

'처음'하면 두려움이 먼저 생각나요. 일을 할 때도 실수하면 어쩌지 내 적성에 안 맞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하지만 그 일이 익숙해져 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처럼 또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서 용기가 생기는 거 같아요.


첫 실수는?

간호사를 막 시작하고 처음으로 혈당 체크할 때였어요. 손가락에 바늘을 찌르면 피가 나오는데 그걸로 혈당을 체크하는 일이에요. 환자분 손가락을 바늘로 찔렀는데 피가 안 나왔어요. 당황했지만 상황을 말씀드리고 바로 옆에 한번 더 찔렀죠. 그리고 손가락을 누르니까 양쪽에서 피가 나오더라고요. 너무 놀랬어요. 죄송해요. 이제는 잘 합니다.



E님에게 처음이란 (프리랜서, 20대 후반)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처음엔 설레요. 그리고 그 일이 시작하기 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 동안 걱정해요.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겁이 나요. 일보다 사람에 대한 걱정이 더 있는 것 같아요. 막상 일하면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지만요.


첫 실수는?

일 했던 곳에서 펀딩에 성공해서 감사인사로 편지랑 굿즈 상품을 보내주는 일을 했어요. 굿즈 상품을 포장할 용지를 사러 갔는데 눈에 예뻐 보이는걸 사서 갔어요. 근데 그게 상품과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무난하지 않아서 오히려 튈 수 있다는 거예요. 다시 포장지를 사러 갔어요. 그땐 예쁜 것만 보였는데 상품을 잘 표현하거나, 그런 디자인이 없으면 무난한 것을 찾는 게 안전하다는 걸 알았어요.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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