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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15. 2018

첫 시도, 운전면허

두 손을 눈앞에 두면 떨리는 걸 볼 수 있다

첫 시도, 운전면허

두 손을 눈앞에 두면 떨리는 걸 볼 수 있다.


캠핑카 운전하는 그날을 위해


운전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다. 생명을 염두에 두고 운전하는 건 두렵다. 그래도 캠핑카 타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한 번쯤 운전대를 잡고 싶어 진다. 필기시험문제집을 보는 내게 동생은 말했다.


누나 수능 봐?


도덕적인 부분만 알면 무조건 합격이라는데. 도덕적인 걸 떠나서 배울 때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다행히 한 번에 붙었다. 바로 장내 기능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말했다.


왜 1종을 따요?


체격도 작고 보통 여자들은 2종을 취득하려 하는데 굳이 1종을 배우려는 이유가 궁금한 듯, 남자들도 운전하기 어려운 트럭이라며 네가 과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이라도 바꾸라고. 난 운전하는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에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생각과 달리 움직일 때마다 “멈출까요?”라고 말했지만. 시속 20킬로.


드디어 시험. 같은 시간에 시험 보는 사람이 모여서 다른 사람의 운전을 보거나 사무실에서 대기한다. 방송으로 이름이 불리면 본인 확인 후 운전하면 된다. 합격 또는 불합격은 방송으로 바로 알려주었다.


000 씨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000 씨 불합격입니다. 점수 미달 실격입니다.


떨리는 두 손


내가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이 시험을 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건 부담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선생님 없이 운전했다. 천천히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자며 혼잣말을 했다. 주차하면서 검은 선을 밟아 점수가 깎였다. 조급함이 생겼다. 아직 10점의 여유가 있다며 심호흡을 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웃으면서 도로주행 교육시간을 등록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합격과 불합격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특히 운전면허의 불합격은 재시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부담감은 더했다. 대충 배울 수 없는 교육이기 때문에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사람들의 운전을 보면서도 하나씩 배웠지만 배울수록 머리는 더 아팠다. 학원에서는 돌발 상황일 때 대처법을 비상등 외에는 알려주지 않으니 궁금한 게 많을수록 더 걱정됐다.


깜빡하니까 깜빡이


빨리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내가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실수하더라도 옆에서 알려줄 선생님이 있으니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해보자. 흔히 차선 변경을 못해 부산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교육 중에 부산 가는 건 아니냐며. 웃으면서 긴장을 덜어내려 했다. 긴장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적당한 긴장감을 갖고자 했다. 스포츠 선수들처럼 편한 음악을 검색해서 듣고 운전대를 잡았다. 장내 기능 때는 최대 2단으로만 밟다가 도로 운전에서는 4단까지 밟아 시속 60킬로로 달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속도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도로주행을 하면서 시동이 여러 번 꺼졌다. 클러치를 잘 밟지 못해서, 당황해서, 기어를 잘 바꾸지 않아서. 등등. 시동이 꺼지는 이유를 듣고 최대한 그 실수를 하지 않으려 신경 썼다. 다음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시동이 꺼지는 횟수가 줄었다. 교육받는 중에도 깜빡이를 켜지 않고 내 차를 앞지르거나 뒤에서 경적 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도로주행 교육을 마쳤다. 자꾸 깜빡이 끄는 걸 잊는 나에게 선생님은 깜박하니까 깜빡이라며 날 격려했다.


괜찮아,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고, 급할 거 없어, 천천히 하면 될 것 같아.


긴장감과 안도감 그 사이


첫 번째 시험에 떨어졌다. 좌회전하려면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데 옆에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내고 가려다가 차선 변경에 실패했다. 선생님께 들었는데 그 차는 내가 좌회전할 수 있도록 천천히 달렸다고 했다. 나 역시 배려였는데 배려도 타이밍이 맞아야 서로에게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장롱면허지만 먼저 운전면허를 취득한 엄마는 나에게 불합격이 좋다고 격려해줬다. 그 덕에 불확실했던 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며칠 뒤 재시험을 봤다. 한 번 떨어져서 긴장이 좀 풀린 걸까. 또 떨어질까 걱정되는 걸까. 그냥 마음을 내려놓은 걸까. 이 세 감정이 반복됐다. 내 두 손을 눈앞에 두면 손이 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긴장을 덜어내려 마음을 다스려도 어쩔 수 없이 떨리나 보다. 그렇게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번엔 차선 변경 잘했어. 신호도 다 이해했어” 몇 가지 실수는 했지만, 시험 끝나는 지점까지 잘 도착했다. 보통 끝날 때쯤 긴장이 풀려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끝날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운전대는 땀으로 가득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 건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이제 운전할 수 있다는 설렘과 차가 없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래도 자랑은 해야지. 친구들은 내 면허 합격 소식을 듣고 내년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웠다. 시작하기 전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것이 더 많다.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니까.


지금은 장롱면허 2018.5월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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