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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ug 12. 2019

장애와 비장애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장애와 비장애는 일상 속에서도 생기는 것 같아요.


요리수업에 참여했을 때 강사가 했던 말이다. 그날부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생각해봤다. 오늘은 비장애였는데 하루아침에 장애가 생긴 것처럼 장애는 선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끔은 이런 당연함을 놓칠 때가 많다. 나한테 장애가 없어서 장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다. 평소에도 장애인을 잘 못 봤던 것 같다. 왜 볼 수 없었을까?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렸다. 우연히 고개를 돌려 계단을 봤는데, 가슴이 쿵했다. 다들 에스컬레이터를 편하게 올라가는 동안 시각장애인은 긴 계단을 어렵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장애에 대해 관심이 생기니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이 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누구는 편하고, 누구는 불편할 수 있구나. 불공평했다.


그 뒤로 장애인이 일상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눈여겨봤다. 길거리에 점자블럭이 있었다. 그 점자블럭을 따라 걸었다. 우린 점자블럭 없이도 걸어갈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럭은 눈이 된다. 하지만 공사 중이라 점자블럭은 끊겨 있었고, 공사가 아니어도 중간에 끊겨 있는 점자블럭이 많았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가야 할 길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다. 점자블럭이 끊긴 것만 문제가 아니다. 신호등 앞에만 점자블럭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초록불인지 빨간불인지 알기 어려웠다. 버튼을 누르면 음성으로 신호를 알려주지만, 그 버튼을 누르는 과정까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불편은 지하철에서도 계속된다. 손잡이에 점자로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그 손잡이를 만질 수도 없을뿐더러 훼손된 점자도 많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걸 뭘까? 눈을 감고 걸었다. 눈 감은 지 3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서워서 실눈을 떴다. 그 3초 사이에 나를 툭치며 걸리적거리게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냥 어둠뿐이다. 지금 내 앞에 어떤 물건이 있고, 이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으며, 지나가는 차에 부딪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하철을 환승하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다들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 가운데에서 시각장애인만 가만히 서계셨다. 다가가서 도움드리고 싶다고 하자 합정역 방향을 물으셨다. 계단을 내려가 위치를 알려드렸다. 우리에게 별거 아닌 일들이 그들에겐 별거였다.


지하철에도 점자로 방향을 알려주고 있지만, 이처럼 사용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장애인을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훼손되어도 훼손되었는지 모른 채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만들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지?"라고 예측하는 게 아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장애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끊어진 점자블록이 더 이상 앞길을 막지 않았으면 하고, 들리지 않는 신호등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집 밖으로 나오는 것부터가 두려울 것 같다. 우리가 안대 쓰고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무서우면 안대를 벗으면 되지만, 장애인은 그럴 수 없다. 무서워도 끝까지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 한다.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이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신호를 건널 때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외출할 때 많은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게 아닌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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