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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ug 30. 2019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천둥소리에 잠에서 깼다. 곧 더 큰 천둥이 칠 것 같아서 귀를 막았고, 잠잠해진 틈을 타 이어폰을 꽂았다. 이어폰을 빼니 천둥은 그친 것 같다. 덕분에 잠도 달아났다. 일어난 김에 밥솥에 밥을 올려놓고 다시 누웠다. 원룸이라 방 안에서 모든 게 가능하다. 다만 뭔가 할 때마다 누울 자리가 보이니 하던 일을 멈추고 게을러지려 한다는 단점이 있을 뿐. 그렇게 일어섰다 누웠다만 반복했을 뿐인데 어느새 4시다. 하루의 반이 지났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날씨가 우중충한 탓일까? 괜히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다. 청소나 하자며 마음먹고 주방부터 닦았다.


싱크대를 좌우로 닦다가 내 팔꿈치가 유리컵을 툭하고 건드렸고, 곧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깨진 유리 파편을 쳐다봤다. 사실 잘못하면 유리컵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귀찮았고,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귀찮음은 더 귀찮음을 불렀다. 그냥 누워있었다면 유리컵은 깨지지 않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치우는 번거로운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하며 바닥에 쏟아진 유리파편을 치웠다. 결국 주방을 끝으로 청소하지 않고 다시 누웠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인가 보다.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빨리 오늘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어야겠다. 이 생각을 한 뒤 시계를 봤는데 겨우 10분 지났다. 시간은 늘 빨리 갔는데, 아직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분명 시간은 같은 속도로 일정하게 흐를 텐데. 이상하다. 오늘은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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