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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Sep 09. 2019

어색한 명절

차 막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무엇보다 길거리 뻥튀기가 맛있었다. 뻥튀기 먹으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마음껏 잘 수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 시간이 좋아서 최대한 시골에 늦게 도착했으면 했다. 생각보다 밀리지 않으면 여행이 금방 끝난 것처럼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고 싶어서 휴게소가 보일 때마다 휴게소에 가자고 졸랐다. 고속도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친척들과의 어색함이 싫어서 늦게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서 어색했고, 할 말도 없었다. 어렸을 때 반말했던 거 같은데, 이젠 존댓말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존댓말 하기엔 뭔가 어색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매번 고민이었다. 이처럼 생각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말주변이 없어서 어른들께 싹싹하게 말하지 못했고, 친척 언니들은 친구 만나러 나갔다. 할 일 없이 무료하게 명절을 보내곤 했다.


도착하면 아빠는 가족들과 술을 드셨고, 엄마는 명절 음식을 하느라 바쁘셨다. 도와드리려고 하면 “너 할 일 해”라고 하셨다. 내 할 일이 뭐지? 할 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할 일이 없었다. 할 일 없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내 동생이었다. 동생이랑 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러다 동생이 공부 때문에 시골에 가지 않게 되자 매 명절 때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해졌다. 평소라면 읽지 않을 책을 들고 갔다. 그런 나를 보고 큰엄마가 말씀하셨다. “다혜, 열심히 공부하네” 온몸이 간지러웠다. 공부 못 하는 애가 괜히 시골만 가면 공부하는 척 한 달까? 그 척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그다음엔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갔고, 그다음 명절엔 하루 종일 자기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명절이 지났다.


이젠 길거리에서 뻥튀기 판매하는 사장님은 안 계신다. 차에 타면 너무 졸려서 잠들어버리고, 그렇게 자다 일어나면 벌써 시골에 도착해있었다. 좋아하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못했다. 아쉬움을 안고 시골집에 갔다. 어느 정도 친척들과 대화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가고 싶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서 공부는 끝났지만, 앞으로 취업과 결혼의 질문을 들어야만 하니까. 난 직장인이 아니고, 아직 결혼 생각도 없다. 그런 내게 명절은 불편한 공간과 시간일 뿐이다. 곧 명절이 다가온다. 또 어색함을 느껴야 하고,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번 명절을 마지막으로 시골에 가지 말아야겠다. 밀린 고속도로에서 보낸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야지. 가족을 피하는 게 씁쓸하긴 하지만, 무거운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았고, 휴일만큼은 편하게 쉬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일부러 명절 때가 되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게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그래도 명절만큼은 가족과 함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가족과 보내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다. 이를 위로 삼고, 이를 핑계 삼아 내년엔 편한 명절을 보내야겠다. 엄마 아빠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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