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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Sep 27. 2019

석양 보러 코타키나발루에 왔어요

코타키나발루 자유여행 1일 차

적금은 사치였다. 당장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면 적금은커녕 오늘 반찬 살 돈도 부족할 때가 많았다. 먹고 싶은 걸 포기한 지는 꽤 되었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다 몇 년 전에 산 옷이다. 매번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걸 포기하고, 월세 내기 위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내 생활과 달리 적금하는 친구들을 보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원래 적금을 해야 하는구나. 혹시 몰라 적금한다는 친구 말에 나도 1,2 만원씩 적금을 시작했다. 그렇게 백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 이제 겨우 백만 원이 되었는데, 엊그제 그 적금을 깼다.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던 돈으로 코타키나발루 항공권을 예약했다. 원래 여행 갈 생각으로 모았던 돈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늘 돈이 없었는데, 저 백만 원 없어진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도 적금 깨기 직전까지 갖고 있는 돈 마저 잃어버린 기분이라 망설임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늘 돈이 없었고, 그래도 잘 살아왔다. 그럴 거면 여행을 떠나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좋은 영감을 받아 글 쓰는 게 나한테 더 좋은 투자가 아닐까? 합리화를 마친 뒤 3일이 지났고, 드디어 오늘 비행기를 탄다.

 

나는 배낭가방을 좋아한다. 캐리어나 배낭가방이나 짐 넣는 건 똑같은데 느낌이 다르다. 캐리어는 휴양하는 것 같고, 배낭가방은 뭔가 삶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무거워도 늘 배낭가방을 메고 여행을 떠난다. 관광지보다는 머무는 여행을 좋아하고,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숙소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 커피 마시러 카페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른 곳에서 내 일상이 만들어지는 게 좋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 같다고 할까? 오히려 기대하기보다 자꾸 뭘 빠뜨린 것만 같이 걱정됐다. "그래도 돈과 여권, e티켓만 있으면 뭐든 가능해"


코타키나발루는 세계 3대 석양이다. 난 오로지 그 석양을 보기 위해 코타키나발루에 가기로 했다. 주로 커플이나 친구들끼리 많이 가곤 한다는데, 즉흥여행이기 때문에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친구가 셀카봉을 챙겨줬다. 역시나 비행기 안엔 커플과 가족들만 있었다. 굴하지 않고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낮잠 잘 시간이라 그런지 이륙 준비할 때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계속 자고 있는데, 식사 준비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평소 같으면 테이블 자리를 만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릴 텐데, 너무 졸려서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밥은 역시나 딱딱하고, 자다 깨서인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잘 몰랐다. 밥을 먹으니 잠이 깼고, 미리 다운로드한 영화를 틀었다. 다시 졸렸다. 조용히 잠드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붉은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아 곧 하늘이 더 예뻐질 것 같았다. 하지만 눈 뜨니 저녁이었다. 망할.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어찌나 안 가는지, 음악도 들어보고 밖에 있는 별들도 보고, 아무것도 없는 암흑을 보기도 했는데, 겨우 5분이 지났다. 기차와 비행기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무서워서 물도 마사지 않고 참았다. 목도 마르고, 비행기 안이 좁아서 더 답답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곧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직항으로 5시간 소요되는데 체감은 10시간 같다.


코타키나발루 입국 심사할 때 시간이 많이 걸려서 비행기 앞쪽에 앉으라는 팁이 있었다. 덕분에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스타벅스와 유심 판매하는 곳이 있었고, 입국 심사 방향으로 내려가 지문과 얼굴을 찍었다. 코타키나발루는 입출국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서 편하다. 짐을 찾고, 2번 게이트 쪽에서 미리 구매한 디기 유심을 찾았다. “디기 빨라요” 다시 1번 게이트에서 에미넌트 호텔 픽업을 기다렸다. 늦은 시간에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하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어두워서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그래서 에미넌트 호텔을 이용했다. 무료 픽업 서비스와 호텔도 넓고, 깨끗하며 무엇보다 직원이 친절해서 좋았다. 조금 어두웠지만, 아침에 커튼을 치니까 방 안이 환해졌다. 매일 늦게 일어나는데 여행 오면 긴장된 상태여서 매시간 마다 깼다.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앉았더니 사장님께서 메뉴판을 주셨다. 볶음밥엔 c148이 쓰여있었다. 구매하고 보니까 148이 148링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150링깃이 있었다. 순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망했다. 그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코타키나발루까지 2시간 걸어야 하나? 너무 불안한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9.5링깃이었다. 148은 메뉴 번호였던 것. 그러면 그렇지. 이 밥이 이렇게나 비쌀 리 없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푸석푸석한 밥을 먹었다.

(1링깃 =약 300원)


그랩을 불러서 미리 예약한 에에비앤비 호스텔로 갔다. 스타벅스 앞에서 기다렸고 곧 직원이 왔다. 직원을 뒤따라가니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망할, 사진과 다른 거 아니야? 다행히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환했고, 깨끗하면서 쾌적했다. 푸른 바다가 보였다. 심지어 코타키나발루에서 처음 본 바다였다. 2시가 체크인인데 11시에 체크인해주셔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뒹굴거리다가 아까 계단에 쓰인 하드락 카페 간판이 생각났다. 하드락 카페 가야지.


평소에도 하드락 카페 가고 싶었는데, 코타키나발루에서 하드락을 만나다니! 음료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공연하는 공간과 바다 뷰를 보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기분 좋을 줄이야. 매장 음악도 너무 좋다. 직원은 선곡된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부르던 노래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너무 좋아. 모든 게. 역시 떠나오길 잘했어.



코타키나발루 TIP

1. 한국 돈 50,000원을 가져가면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환전할 수 있어요. 저는 첫날 예약한 호텔의 관광세와 다음 날 아침 식사, 그랩 교통비 등 약 5만 원을 링깃으로 환전했고, 나머지는 50,000원짜리로 챙겨 왔어요.

2. 유심은 한국에서 미리 구매하고 현지 공항에서 찾으면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저도 하루 전에 구매했어요. 만약 미리 구매하지 않았어도 공항 2번 게이트에서 유심을 구매할 수 있어요.

3. 한국에서 미리 그랩을 설치하면 좋아요. 코타키나발루는 우리나라 여름보다 덥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서 땀이 흘러요. 그랩은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고, 셀카 혹은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어요.

4. 코타키나발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려요. 시차 적응이 필요 없기 때문에 덜 피곤해요. 또한 90일 이내 관광 목적이면 비자가 없어도 되고, 입출국 신고서도 작성하지 않아요.

5. 해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선글라스, 모자, 선크림은 필수이고, 모기기피제와 물파스도 있으면 좋아요. 저는 9월 말일에 여행을 떠났고, 10월이 우기이기 때문에 우산도 챙겼어요. 실제로 9월 26일 소나기가 내렸고, 금방 그쳤어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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