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Sep 29. 2019

여행은 호사를 누려야 제맛이죠

코타키나발루 자유여행 2.5일 차

코타키나발루 자유여행 1일차 "석양 보러 코타키나발루에 왔어요" 다시 읽기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 생각보다 빠르게 체크인 해준 덕분에 숙소에서 쉴 수 있었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제일 처음 하드락 카페에서 망고주스를 마시고, 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다시 숙소로 갔다. 몇 시간 뒤 환전하기 위해 위즈마 메르데카에 갔다가 중앙시장, 필리피노 마켓을 보면서 숙소로 들어왔다. 너무 더워. 중앙시장은 각종 야채와 과일, 견과류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필리피노 마켓은 저녁 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10월부터 우기가 시작이라는데 비 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온통 습하고 더워서 에에컨 있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여름을 겨우 보내줬는데 코타키나발루에서 여름을 다시 맞이할 줄이야. 이렇게 된 거 숙소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저녁에 선셋을 보는 여행으로 만족해야겠다.

워터프론트에서 보는 석양이 예쁘다곤 하지만,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선 5시부터 음식을 먹어야 한다. 또한 좋은 자리일수록 음식을 많이 주문해야 한다. 결국 워터프론트는 포기하고, 그 위층에 있는 seafront마사지샵에 갔다. 5시 40분쯤에 가도 해는 뜨거웠고, 50분부터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발마사지를 받으며 해 지는 석양을 보니 나른 나른해졌다. 여기서 보는 석양도 예뻤다. 마사지사는 다른 날보다 오늘이 빠르게 해가 졌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예뻤으니 괜찮다. 코타키나발루 해는 크고 선명하기 때문에 다른 일몰보다 예쁘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매일 일몰을 보면 무뎌질 거라 생각했는데, 마사지사 손은 내 발에 있고, 눈은 일몰에 있었다.

낮에서 저녁으로 바뀌는 시간을 좋아한다. 저녁을 알리듯 켜지는 가로등과 낮보다는 덜 더운 날씨와 어두워진 분위기에 취해 맥주 한 잔 마시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좋다. 그 소리와 다채로운 빛을 내뿜으며 점점 어두워지는 순간을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좋다” 이 말만 반복할 뿐. 사람들은 왜 일몰을 좋아할까? 나는 왜 수많은 나라 중에서 코타키나발루를 선택했으며 일몰을 보고 싶어 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제대로 그 시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발 마사지가 끝나고 야시장에서 애플망고를 구매해서 웰컴씨푸드에 갔다. 코타키나발루에 왔으면 씨푸드는 먹어야 한다. 많은 상점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추천해준 건 웰컴씨푸드였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고, 너무 맛있어서 단골가게가 될지 모른다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나는 가자마자 버터 새우, 칠리 가리비, 볶음밥, 맥주를 주문했다. 혼자서 3개의 메뉴를 먹는 내가 신기했는지 건너편 아주머니께서 계속 쳐다보셨다. 오징어튀김도 주문하려 했는데, 그건 다음에 먹어야지. 추천해준 만큼 너무 맛있었다. 세상에 이런 맛도 존재하는구나. 새우도 크고, 버터크림이랑 너무 잘 어울렸다. 입에서 샤르르 녹아버린다. 거기에 맥주 한 모금하면. 그 이상 말하지 않겠다.

예전 같으면 길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갔을 텐데,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은 짧은 여행인 만큼 보장된 맛을 보고 싶었다. 웰컴씨푸드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추천하는데 다 이유가 있어. 너무 좋다.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저녁이면 날이 선선해질 줄 알았는데, 덥다. 조금만 걸어도 땀범벅이다. 이래서 근거리도 그랩을 이용하라고 하는 거구나. 너무 먼 거리는 아니어서 걸어갔고, 걸어가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역시 밤이 되니 낮에 본 코타키나발루와는 다른 느낌이다. 걸어가다 보이는 쇼핑몰에 들어가서 구경했다. 옷을 사려고 보이는 쇼핑몰마다 들어갔는데,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지 못했다. 역시 이번 쇼핑몰도 없었다. G층(우리나라에선 1층)으로 내려가려다가 오락실을 발견했다. 잔돈으로 받은 동전이 많았는데 다행이다. 게임으로 동전들을 보내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1분 만에 게임오버 화면이 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 집인냥 너무 편하고 좋다. 아늑해. 특히 낮에는 푸른 바다가 보이고, 저녁엔 네온사인 간판과 수많은 차들, 늦은 저녁 장사를 하는 사람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게 영화를 보는 것처럼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엎드려서 구경하다 스르르 잠들었다.



자유여행 3일 차

다음 날 아침엔 2번 째로 예약한 에어비앤비로 갔다. 첫 번째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실망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이번 숙소도 성공적이었다. 비록 바다가 보이진 않지만, 높은 건물과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보여서 좋았다. 침대도 푹신하고, 화장실도 혼자 쓸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꼭 먹으라고 격하게 추천하는 현지인 맛집 유잇청에 갔다. 여기서 먹어야 할 많은 메뉴가 있는데, 카야토스트, 쌀국수, 꼬치다. 주문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꼬치는 금요일엔 판매하지 않고, 카야토스트는 12시부터 1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다. 시간 조절에 실패한 나는 꼬치와 쌀국수를 먹었다. 향신료 맛이 전혀 없고, 맛있어서 국물까지 다 마셨다. 쌀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꼬치가 나오지 않아서 물어보니 내 주문이 누락되었다. 망할. 그래도 꼬치는 진짜 맛있었다. 특히 사장님이 한국말을 잘하셨는데, 발음이 너무 귀여웠다. "저기요, 이쩜삼(RM2.3)" 이쪽저쪽 테이블마다 저기요를 외치는 사장님.


올드타운 화이트 커피에 갔다. 근처이기도 했고, 오랜 역사를 지녀서 커피 맛이 궁금했다. 기본 커피를 주문했는데, 달달하고 약간 씁쓰름했다. 그래도 맛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난 왜 이렇게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이 좋을까? 한 권 밖에 안 가져왔는데, 거의 다 읽어간다.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노트북을 켜고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글을 썼다. 더워서 밖에선 뭘 할 엄두가 안 난다. 그럴 땐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글 쓰는 게 최고지. 휴양 왔는데 거기서 뭔 글이냐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게 휴양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

글 쓰다 보니 곧 일몰 시간이 되었고, 걸어서 워터프론트 쪽으로 갔다. 오늘도 역시 해는 크고 동그랗지만, 사진 속에서 보던 황홀한 일몰은 아니었다. 낮에 비가 와서 구름 때문에 오히려 해를 가렸다. 아쉬워.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이마고몰 근처 마사지샵에 갔다. 할인 이벤트를 90분에 3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풀 예약이라 마사지는 받지 못했다. 아쉬움의 연속이네.


한번 더 아쉬운 마음을 달래러 건너편 솔드아웃 매장으로 갔다. 매장에서 들리는 음악이 좋아서 오늘은 파스타와 피자, 맥주를 주문했다.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흡입했다. 여긴 어떻게 하나같이 다 맛있을까? 한국에 있었으면 피자 먹을 때도 고민하게 되는데, 여기선 파스타와 피자를 동시에 주문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된 거 더 좋은 호사를 누리자마자 파라다이스 마사지를 예약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도 많다. 좀 대기하다가 아로마 마사지를 받았다. 팬티 빼고 옷을 벗은 뒤 누워있어야 한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멍하게 기다렸더니, 벗으라고 하셨다. 마사지사가 오셔서 마사지를 시작했다. 추나치료를 받을 때 우두둑 소리가 났는데, 여기서도 붙어있는 뼈를 올바른 위치를 보내주는 것처럼 소리가 들렸다. 시원했다. 안 좋은 평도 있고, 좋은 평도 있었지만, 역시 오길 잘했다. 오늘도 만족스러운 선셋은 아니었지만, 하늘은 예뻤고, 밥은 맛있었으며 몸은 가벼워졌다. 내일도 센 셋을 기대하며 자야지.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석양 보러 코타키나발루에 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