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 리뷰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출산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무서웠다. 생명을 낳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지만, 내겐 아픔이 먼저 보였다. 나도 아기를 갖는다면 이렇게 힘들겠지? 걸음걸이부터, 먹는 것, 입는 옷까지 불편하면서도 모든 게 조심스러워 보였는데, 내가 본 건 극히 일부분이었다.
출산 이후 본격적인 힘듦이 시작된다. 새벽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줘야 하고, 젖을 물리며 트림까지 해줘야 쪽잠이라도 잘 수 있다.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며, 푹 잘 수 없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피로는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함도 느끼겠지만, 이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유 없는 삶,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로 산후 우울증이 올 수 있다. <툴리>에서 현실적으로 산후 우울증을 다뤘다. 말로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육아의 힘듦이 그대로 느껴지는 영화였다.
말로는 새라, 조나, 계획에 없던 미아의 엄마이다. 조나는 발달장애가 있어서 쉽게 짜증 내는 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학교에서도 조나를 특수학교로 옮기고, 전담 선생님을 구하라고 할 정도다. 3명의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어 보여 오빠 크렉이 야간 보모를 불러주겠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불안해서 야간 보모와 전담 선생님을 거절한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말로는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였고, 조나와 계속 우는 미아 때문에 결국 야간 보모를 불렀다.
전 엄마를 돌보러 왔어요
말로와 달리 툴리는 날씬하고, 예쁘면서 어렸다. 어린 툴리가 어떻게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걱정하지만, 다음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걸 보면서 말로는 마음을 놓는다. 미아가 젖 먹을 수 있게 말로를 깨우고, 그녀가 불편하지 않게 멀리서 기다렸으며, 말로를 위해 컵케익을 만들어주는 등 힘들어서 하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툴리 덕분에 할 수 있었다. 말로는 재충전한 에너지로 아이들을 돌보고, 냉동피자가 아닌 제대로 된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챙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툴리는 말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녀를 돌본다. 돌봄으로 그녀는 속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 전과 다르게 말로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은 안심해하지만, 이 모습이 다가 아니었다. 반전을 봐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사실 남편이 육아에 관심이 아이에 없는 것은 아니다. 퇴근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도시락도 같이 싸주고, 아내의 교육지침에도 함께 해준다. 하지만 자기 전에 헤드셋을 끼고 좀비 게임을 하다 자는 게 끝이다. 아내가 괜찮은지 묻지 않으며 새벽에 아이가 우는지, 야간 보모가 언제 왔다 갔는지 등을 모를 뿐.
아이는 돌봄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못 한 상황에서 모유 수유하고, 기저귀 갈며 트림시키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밤이면 우는 미아를 다시 모유 수유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매일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삶이 무료해 보이면서도 고단함이 묻어져 있다. 엄마도 사람이다. 당연히 잠을 못 자면 힘들고, 피로할 수밖에 없다.
못 이룬 꿈이라도 있었다면 세상을 향해 화라도 냈을 텐데,
그저 나한테만 화풀이해요.
가정을 이루고, 그 삶에 익숙해지면 과거의 내 모습을 잊게 될 때가 있다. "예전에 이런 걸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는데" 말로는 그 꿈이 없어서 늘 자신을 탓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 대사에서 엄마가 생각났다.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땐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 같았다는 말이. 조나가 음료를 말로에게 엎질러서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벗자, 새라가 엄마 몸을 보고 "엄마 몸 왜 그래?"라고 묻는다. 지친 모습이 그대로 보이면서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가꿀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미아는 당신 체취도 알고, 목소리도 알고, 심장소리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은 미아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요.
당신이 미아 발가락부터 다 만들어낸 사람이니까.
툴리는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말로에게 굿 나잇 뽀뽀해주라고 말한다. 내일이면 달라져있을 거라고. 하루하루 아이는 자라지만, 피곤하여 그 과정을 모를 때가 많다. 툴리는 이런 순간순간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말로, 당신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꿈을 이루신 거예요.
그렇게 싫어하는 단조로움이요.
매일 일어나서 가족에게 같은 일을 해주는 것.
삶도 심심하고, 결혼도 심심하고, 집도 심심하겠지만 그게 멋진 거예요.
별 탈 없이 성장해서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잘 키우는 일이요.
고달픈 하루를 보내는 말로는 툴리에게 단조로운 삶을 말했지만, 툴리는 그녀를 위로하며 그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이 둘은 말로가 살았던 브루클린으로 갔다. 거기서 툴리는 야간 보모 일을 그만둔다고 했고, 말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도망치듯 떠나는데 그곳은 그녀가 전에 살던 집이었다. 그곳을 서성이는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듯하는 것 같았다. 이런 모든 감정을 겪은 뒤 졸음운전으로 강에 빠지면서 반전이 나온다. 이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툴리와 말로의 대화를 들으면서 현실적인 육아의 고난과 말로 자체를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다.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이를 비교하면서 관람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