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공간

나만의 휘게 라이프

by 매실

시간이 멈춘 공간

나만의 휘게 라이프


불 끄고 캔들을 켜면 방은 밝아진다. 불빛 가득한 공간이 왠지 모를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심지가 타면서 혹은 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생긴 바람으로 불빛은 계속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보고 있다보면 넋 놓게 된다. 때론 뜬금없는 기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흑역사부터 시작해서 나를 힘들게 했던 순간까지. 캔들은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오래 입어 무릎이 해져있는 잠옷을 입고 음악을 켠다. 이 잠옷만 입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한때 이 바지를 탐내던 이모가 인제 그만 버리라고 말할 정도지만. 그렇게 하나둘 나의 시간과 공간을 만든다.


문 닫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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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준비단계가 있다. 우선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켠다.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정하여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한다. 은은한 향이 나는 캔들을 켜고 문을 닫는다. 문 닫는 일은 거실에서 들리는 각종 소리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나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음악이 방 안에 퍼져 온통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향이 가득한 공간. 그 공간에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쓴다.


사춘기일 때는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을 닫았다. 또는 친구와 다투었을 때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때 문을 닫았다. 그때처럼 지금도 문을 닫지만, 이유가 달라졌다. 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좋아하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 오늘도 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문을 닫는다.


좋아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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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물건들 속에서 지낸다. 세계지도가 벽에 붙어있고, 여행할 때마다 구매한 차(tea)들이 있고 좋아하는 책들이 쌓여있다.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지만 책만큼은 아니다. 읽고 싶을 때마다 책을 구매했고 읽지 않아도 버리기 싫어 쌓아 둔다. 바닥에 누워 스탠드를 켠 뒤, 좋아하는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순간이 좋다. 여러 종류의 책을 보면 그때마다 바뀌었던 나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을 땐 기획 및 광고 분석 책을 구매했고, 뭐 먹고살지 고민할 땐 에세이를 구매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지금은 스토리 관련 책이 많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나의 공간과 물건도 바뀌어간다. 내 생활패턴에 맞게 물건이 쌓이고 가구 배치가 바뀌며 인테리어도 달라진다.


내 방 안의 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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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랑 같이 산다. 똘똘이. 항상 내 옆에 있다가도 보이지 않아 찾아보면 책꽂이 아래에서 나를 보고 있다. 그 공간에 똘똘이가 좋아하는 담요와 인형을 넣어 똘똘이 방을 만들어줬다. 똘똘이가 없었다면 그곳은 먼지만 쌓여있었을 것이다. 그 옆에 작은 옷걸이를 만들어서 똘똘이 옷방도 만들어야지. 생각만 해도 귀엽다.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단순한 내 방


어렸을 때 내 방 꾸밀 선택권은 엄마에게 있었다. 책상, 침대, 옷장만 있어도 발 둘 자리가 없을 만큼 방은 좁았다. 내 취향을 잘 몰랐기에 엄마 선택으로 가구가 채워졌다. 어느새 나도 월급 받는 나이가 되었다. 돈이 생기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내 방에 있는 가구를 버리는 일이었다. 침대로 인해 방이 좁았고, 옷장은 오래되어 다 뜯겼으며, 20살이 되면 공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책상을 버렸다.


가장 먼저 화장대를 구매했다. 나를 꾸며주고 내 피부를 가꿔나갈 화장대. 인터넷과 가구 가게를 보면서 가격과 디자인을 비교했다. 화장은 하지 않지만 피부가 예민하여 각종 보습크림과 팩을 보관할 수 있는 화장대가 필요했다. 화장대가 생겼다. 전신 거울로도 활용할 수 있고, 앉아서 눈썹도 그릴 수 있다. 책상을 구매했다. 공부하지 않을 거란 내 다짐과 다르게 대학 생활은 과제로 가득했다.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나무 재질이면서 넓은 책상을 원했다. 책 펴고 노트북 하면서도 차 마시고 무언가를 쓰거나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 디자인도 중요했기에 디자인과 크기를 살펴보며 책상을 찾았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이 책상은 직접 조립해야 한다. 혼자 하려다가 결국 동생에게 용돈을 쥐여주고 조립을 시켰다.


옷장도 필요했다. 서랍 형식으로 된 옷장은 옷을 넣으면 구겨지고 매일 개는 게 귀찮았다. 옷을 걸 수 있으면서도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옷장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할머니께서 사용하지 않는 좋은 옷장을 주셨다. 이 옷장 역시 옷을 개야 하기에 옷걸이를 따로 구매했지만. 나무가 너무 예쁘다. 마지막으로 책꽂이를 구매했다. 책을 멀리하던 내가 책을 읽게 되면서 책꽂이가 필요했다. 방이 좁기에 기능적인 책꽂이를 찾았다. 처음엔 돌아가는 책꽂이를 구매했지만, 생각보다 관리하기 어려워 친구에게 기부했다. 그러다 나무향이 나는 친환경 책꽂이를 찾았다. 폭이 넓어 한 칸에 책을 두 줄로 꽂을 수 있다. 침대가 없어 방이 넓어졌지만, 이것저것 구매한 탓에 이불을 깔면 방은 다시 좁아진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가구들이 있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면서 하나 둘 채워지는 방을 보는 건 나쁘지 않다. 이불을 펴고 책상 위에 있던 스탠드를 베개 옆으로 옮긴다. 누워서도 손이 닿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는다. 그렇게 아늑해진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잠들 수 있다.


청소한 뒤 인도에서 사온 인센스를 피운다. 마음을 편하게 안정시켜줄 뿐만 아니라, 여행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 주니까. 가끔 '어?'하고 좋은 향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향을 만날 때마다 지나칠 수 없다. 분명 그 향기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들 거란 걸 알기 때문에. 향으로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뿌리던 향수가 있었다. 그 향수를 뿌린 사람이 지나가면 그때 일했던 분위기가 생각난다. 즐거운 기억만 있어서 일까. 잠시 그때를 추억할 수 있다. 그만큼 향은 중요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한다. 1년 동안 입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을 기부하거나 버린다. 정리를 마친 옷장에 방향제만 넣으면 좋은 향기로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계절별 또는 한 해별로 방 구조를 바꿨다. 방 구조를 바꾸면 이사 온 기분이 든다. 최근 몇 년 동안 방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지금 이 구조로도 충분히 좋아서. 나중에 독립하게 된다면 꼭 필요한 가구들만 채워놓고 싶다. 불필요한 물건으로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게. 단순한 공간 속에서 살고 싶다. 복잡하면 청소하기 어렵고 먼지만 쌓일 것 같다.


월간심플 1월 '휘게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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