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휘게 라이프
시간은 늘 빠르다. 금세 아침이고 어느새 저녁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 때도 있다. 책 읽을 때와 차 마시는 시간. 이 시간만큼은 여유롭다. 카페 가기 전 책 한 권과 블루투스 키보드는 필수 준비물이다. 따뜻했던 커피가 차가워지고 빈 잔으로 남겨질 때까지 책에 집중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느낌을 적으면서 그 책을 다시 한번 본다. 이 시간이 좋다. 단돈 오천 원으로 좋아하는 시간을 살 수 있다니.
느리게 흐르는 시간
무언가를 보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무언가를 마시려고 할 때마다 서울을 찾았다. 항상 내 주변보다 먼 곳을 찾았다. 어느 날 집 앞에 카페가 생겼다. 어떤 곳일지 궁금해 찾은 그곳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가까운 곳에서 즐길 수 있다. 그 뒤로 가까운 카페, 서울이 아닌 인천에 있는 카페를 찾으며 공간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도 내 일상을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 뒤로 소소한 일상 속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산책
내 가방엔 필름 카메라가 있다. 걷다가 찍고 싶을 때 찍는다. 바로 볼 순 없지만, 사진을 인화했을 때 잊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가령 롱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 숙이며 걷는 무리를 보거나, 흰 철벽으로 막힌 재개발 길을 걷는 커플 같은. 사진 한 장이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게 한다. 찍은 사진을 볼 때, 왜 찍고 싶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순간은 내 기분과 감정에서 시작하니. 외로우면 외로워 보이는 사진에, 즐거우면 즐거워 보이는 사진에. 그래서 필름 카메라 산책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필름 2 롤을 찍으며 그 순간에 맞는 글을 쓰거나 잘 표현된 책 구절을 적어 엽서로 만든다. 내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제대로 된 산책을 하기 위해.
습관처럼 하는 일이 생겼다. 엽서 뒷장에 좋아하는 글을 적어 책에 꽂아놓는 일. 그 책과 전혀 상관없는 글이지만. 책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 글을 발견하는 날이면 기분 좋아진다. 잊고 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하게 해 주고, 잠시 그때를 추억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니까. 내가 찍은 사진 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산책엽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고 산책하며 떠오른 무언가를 적습니다.
뭔가 모를 불안감을 항상 느낀다. 일기 쓰면서 그 불안을 기록했다. 책에 꽂아 놓은 불안한 글을 지금 보면 별거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런 고민을 했던 내게서 풋풋함이 느껴진달까.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감정을 산책하면서 생각했고 엽서에 남겼다. 그 글을 본 친구는 '나도 나도'라며 내 불안에 공감해줬다. 내 고민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고민이었다.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내 불안을 꺼내면서 답답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 엽서는 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20대 초반 중반 후반에 하는 고민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엔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 후반인 지금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며 방황한다. 가끔 어릴 적 앨범을 꺼내서 본다. 아기에서 성인이 된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분명 이렇게 작은 아기였는데. 키 크는 것처럼 생각도 성장한다. 그 성장 과정을 산책 엽서로 기록하려 한다. 우연히 발견한 내 불안이나 과정을 보면서 흐뭇할 때도 있겠지.
사진전에 가는 일이 늘었다. 잘 찍힌 사진을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산책하며 사진 찍는 날도 생겼다. 우린 별 사진을 찍기 위해 몽골 여행을 계획했다. 좋아하는 일을 공유하고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이 생겼다. 기분 좋은 일이다.
관찰하는 일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다. 좁은 운동장이지만 아파트 안에 있어 주민들은 그곳에서 운동하고 아이들은 정글짐에서 놀곤 했다. 이젠 저녁이 되면 문을 잠가놓는다. 아쉬웠다. 운동장 계단에 앉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다양하게 운동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줄넘기하는 초등학생, 빠른 걸음으로 운동장 도는 아주머니, 늦은 밤이라 보이지 않는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나도 이어폰 꽂고 운동장을 돌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저녁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이 정도 걸었으면 라면 정돈 먹어도 되지 않는지 등. 저녁이 되면 약속한 것처럼 운동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몸을 풀었고 저녁을 보낸다. 같은 공간에 다른 시간을 만드는 사람을 보는 건 소소한 힐링이었다.
넋 놓다가 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웠다. 그리면서 색깔을 자세히 봐야지. 겉보기엔 빨간 나뭇잎이지만 빨간색만 있지 않다. 약간 바래진 부분에 노란색과 초록색이 있고, 갈색도 있다. 이렇게 나뭇잎을 자세히 보면 여러 색깔을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색깔을 가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우리 강아지를 관찰하기로 했다. 약간의 부작용은 있다.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호들갑 떨며 엄마한테 “우리 애가 요새 눈곱이 자주 껴” “우리 애가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 “우리 애 엉덩이가 조금 튀어나온 것 같아” 말한다는 것. 엄마는 귀찮다는 듯이 답했지만, 바뀐 간식 때문에 눈곱이 자주 뀌었고, 건조한 집 때문에 물을 자주 마셔 화장실에 간 것이었다. 엉덩이가 튀어나온 것 같이 보이는 원인은 못 찾았지만. 자세히 보니 속눈썹도 너무 길고 발가락도 다섯 개며 가끔 방귀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중
이 말처럼 자세히 보고 똑같은 모습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매일 아침 출근길을 배웅하는 건 우리 강아지 몫이다. 똘똘이가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때면 엄마와 아빠는 간식을 줬다. 내가 깨어있을 때면 똘똘이를 안고 아파트 복도에서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는 가던 길을 멈춰 나와 똘똘이를 보며 “똘똘아 똘똘아”하며 몇 번의 이름을 부르고 출근한다. 이렇게 배웅하다 보니 똘똘이는 그 일이 일상인 것처럼 엄마가 나갈 때쯤 내게 달려온다. 엄마의 출근길을 인사하는 건 좋지만, 뻗친 머리를 하고 복도에 있는 나를 누군가가 볼까 봐 불안하기도 했다. 출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나도 일을 시작해 엄마에게 용돈 주는 딸이 되었으면 좋겠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들곤 하지만.
잠들기 전, 영화와 라디오
영화를 좋아한다. 보고 싶은 영화를 항상 찜해 놓고 자기 전에 한 편씩 보면서 잠든다. 안 좋은 습관 일지 모른다. 좋은 영화를 보면 그 생각에 잠들기 어려우니. 잠들 때는 잔잔한 영화를 보고 낮잠 잔 후에는 조금 밝은 영화를 본다. 생각하게 만들어주거나 미스터리극을 본다. 하루 종일 잠만 자더라도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그날 기분이 좋은 채 마무리할 수 있다.
라디오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지 않는 날이면 보통 [푸른 밤, 이동진입니다]를 틀어놓고 잔다. 개그코드도 맞고 요일별로 소개하는 코너도 좋다. 내 취향의 사람들이 모인 공간 같다. 나른한 목소리 때문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아침이 밝았다. 어제 그 부분 되게 웃겼는데, 아마 웃으면서 잠들었던 것 같다.
(이 글은 2018년 7월 11일 수요일 푸른밤 이동진입니다. <해시태그 푸른밤>에 소개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예전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내게 심심할 시간을 준다. 여유롭게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핸드폰도 하고. 그러다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이불 빨래를 하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해야 할 일이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딘가 나가지 않고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이 채워지는 게 좋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논다고. 혼자서 잘 놀다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은 지 알 수 있다.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어디를 여행하고 싶은지, 어떤 노래를 듣고 싶은지도.
월간심플 1월 '휘게라이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