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계절

나만의 휘게 라이프

by 매실

평범한 사계절

나만의 휘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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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 좋아하는 시간과 사람들


[봄]

벚꽃을 좋아한다. 봄을 알리며 꽃 피우지만 금방 꽃잎이 떨어진다. 때를 놓치면 가는 길에 잠깐 스쳤던 벚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벚꽃이 있는 곳이면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동네 빌라 단지에 가로수길처럼 벚꽃이 길게 심겨 있는 곳으로 간다. 빌라 주민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그 빌라를 걸으며 봄을 맞이한다. 날이 덥거나 춥지 않아 가디건을 걸친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로서 봄은 정말 좋은 계절이다.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걷기만 한다. 이런 날에는 독서를 할 수 없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친구들과 한강에 텐트를 빌려 보드 게임하다 낮잠을 잔다. 벌칙을 정해 진 사람은 뒷정리하고 이긴 사람은 산책한다. 걷기만 해도 좋다. 더우면 더위를 피하고자 추우면 추위를 피하고자 걸음이 빨라진다. 하지만 봄만큼은 걸음이 느리다. 하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날씨를 느끼고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밤공기가 좋아 계속 새벽까지 머물고 싶은 나와 합의해야 한다. “막차 끊기기 전에는 집에 가야지.”



[여름]

피부가 약해 선크림을 발라도 금방 얼굴이 탄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위를 많이 타는 덕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많이 난다. 산책 대신 버스 여행을 즐긴다.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넋 놓고 밖을 본다.


여름 하면 바다가 빠질 수 없다. 인천의 장점은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는 점이다. 항상 도시 속에서 살다 보면 내가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물을 좋아하지 않아 물속에서 놀지 않지만, 바다 보이는 카페에 앉거나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친구들 역시 물속보다는 발만 담그거나 파도를 피해 뛰어다니거나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더 좋아한다. 바다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니 기분 전환하기 좋다.



[가을]

흔히 ‘가을 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도 가을 탄다. 가을이 되면 공허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욱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 억지로 약속을 잡아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잠시라도 그 공허함을 잊게 된다. 때론 비행기를 검색하거나 지도를 펼쳐 여행지를 정하기도 한다. 못 가더라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럼 공허함이 설렘으로 바뀐다. 다른 계절보다 여행의 욕구가 간절해진다.


가을은 다른 때보다 친구들을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만나서 하는 건 딱히 없다.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게 다이다. 매일 반복되는 루트지만 지겹지 않다. “이대로는 아쉬워서 겨울을 맞이할 수 없어!” 그러니 더 오래 집 밖에서 함께 있으려 한다.



[겨울]

겨울엔 주로 전기장판 속에서 귤 먹으며 밀린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더위를 잘 타는 난, 추위도 잘 탄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집에서 긴 겨울을 보낼 궁리를 한다. 내 옆에서 잠든 강아지 체온이 나를 더 편하게 한다.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겨울이 되면 맛집 탐방을 한다. 추위 속에서 든든하게 먹으면 추위를 덜 탄다며 평소보다 더 잘 먹고자 한다. 만날 때마다 먹는 장소가 바뀌고 그 속에서 아지트를 만든다. 겨울이 되면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 연말 등 모든 행사가 있다. 그래서일까 외식 횟수가 늘고 레스토랑이나 평소 비싸서 가지 못했던 곳은 오늘만큼은 괜찮다며 새로운 곳을 찾는다. 한 곳만큼은 아니다. 우리의 아지트. 포장마차. 춥더라도 포장마차에서 먹는 우동이면 추위가 풀린다. 순대볶음, 계란말이 등등. 이상하게 날이 추워지면 집에만 있고 싶은데 포장마차로 가는 날은 많아진다.


어느 계절을 맞이하든 작년에 뭐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sns는 작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알림이 울린다. 추억의 몇 년 전. 계절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일상은 다르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엔 주로 전시, 영화, 카페,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했고 친구들을 만나면 새로운 음식을 도전했으며 가끔, 술 한 잔에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제 있었던 일 혹은 앞으로 갈 여행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매 순간 달라진 내 관심사에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책을 쓰기도, 아카데미에 들어가기도, 관련 일을 해보기도. 사계절 분위기만 다를 뿐 난 언제나 혼자 있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연초,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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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저작권 때문에 길거리에 캐럴이 들리지 않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늘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만나서 밥 먹으며 “오늘 크리스마스 같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틀 뒤면 나의 생일이다. 생일 때 뭐할 것인지로 화제 돌린다. 매년 생일 때마다 초를 같이 불던 친구들이다. 10년 친구들.


생일이 되면 해피벌스데이 안경을 끼고 케이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인생 사진을 건지려 백 장 가까이 찍으며 한 장이라도 잘 나온 사진을 찾는다. 다양한 표정 혹은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서로의 엽사를 짤로 쓴다. 각자 집으로 가는 내내 웃는다. “나 지금 버스에서 혼자 미친 듯이 웃고 있어, 웃기지 마 봐, 진심”이라 말하지만 다른 사진으로 짤을 만들고 있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진이 좋다.


늘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 서로 바쁘다 보니 정말 필요할 때 옆에 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와”라고 말했던 몇 년 전과 다르다. 씁쓸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는 방법만 깨우치게 된다. 밥 먹고 간 포장마차에서 친구 중 한 명이 술에 취했다. 만날 때마다 술보다 잠을 선택했던 우리라 취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친구는 같은 말을 반복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새로운 모습에 우리는 웃었고 자기 얘기를 하지 않던 애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같이 울기도 했다. 울고 웃다가. 이상한 친구들이다. 20대 초반에는 취할 때까지 마시며 놀았는데 이런 일들이 줄어들었다. 이러면 되고 안 되고를 스스로 걸러내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속마음은 말하기 어려워지고 참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마신 술이 좋았다. 20대 초반, 어렸던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 마음 한쪽에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서로에게 들켰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들켜서 오히려 편했다. 그 답답함에 대한 반항 때문인지 딱 오늘만 오늘 하루만 정신을 놓고 싶은 그 무언가가 터져서 그런가. 맥주 6병과 소주 2병, 약간의 취기로 기분 좋은 새벽을 보냈다.


술에 의존하여 나를 내려놓을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은 편한 사람 앞이라면 좀 더 쉽다. 가까운 사람이라 이 관계를 위해 지켜 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내 옆에 있어 줄 친구이기에 가능하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길.


월간심플 1월 '휘게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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