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원> 리뷰
글 쓸 때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지만, 유독 힘이 들어간 글이 있다. 그런 글은 쓰고 나면 뿌듯하다. "분명 많은 사람이 좋아할 거야"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반응이 없을 때가 많다. 반대로 힘을 빼고,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은 생각보다 반응이 많다. 그럴 때면 좋은 글이란 무엇이며, 내가 쓰고 싶은 글, 대중의 원하는 글 사이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고민이 들곤 한다. 영화 <인사이드 르원>을 보면서 르원의 음악과 대중이 생각하는 음악의 갭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1960년대 뉴욕. 한 라이브 카페
르원 공연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시작 부분이 마지막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설정에 감탄했다. 르원을 모르고 음악을 들었을 때와 르원의 상황을 알고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느낀 바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완전히 똑같진 않다. 처음엔 뒷골목에서 낯선 사람에게 맞고, 교수 집에서 머물지만, 마지막 장면엔 교수 집에서 머물고 낯선 사람에게 맞는다. 르원에게 이런 현실적인 굴레가 반복될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이 아닌가 싶다.
르원은 집이 없어서 그와 친한 교수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집을 나서던 차에 고양이가 문틈으로 나갔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안고 지하철에 올랐다. 60년대라서 그런지 남자(르원)가 고양이를 안고 있다는 것에 사람들 시선이 그리 좋진 않다.
르원은 진 집으로 갔고, 진은 르원을 보자마자 짜증 섞인 말투로 그를 대했다. 메모에 적힌 말. "나 임신했어" 짐 모르게 르원과 진이 잤고, 그 때문에 진이 임신을 했다. 집이 없고, 음악도 잘 되지 않아서 돈도 없는데 낙태 비용까지 모아야 했다. 갈수록 책임이 더해지는 르원.
진 앤 짐이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르원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종종 삐뚤어진 태도를 보였고, 무대 선 사람의 음악에 딴지를 걸기도 했다. 이는 라이브 카페 사장님과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아마 자신의 음악을 고집하면서 공연하는 르원을 알아주지 않고,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음악을 인정할 수 없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교수님 집에서 그에게 노래를 요청했고, 그가 노래 부르자 옆에서 화음 넣는 가족 중 한 분이 있었다. 그 파트는 르원과 파트너였던 마이크 부분이었다. 그는 중간에 음악을 멈추고 그녀에게 화를 냈다. "이건 제 직업이에요. 재롱 잔치가 아니라고요" 음악의 태도가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르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간에 르원이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가 길에서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교수님의 고양이가 아니었다. 여기서 또 일이 꼬여버리네. 그에게 희망이란 게 있을까?
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팀과 음반을 만들었다. 르원은 이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당장 돈이 필요해 저작권료를 포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음악이 대박 난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르원이 가는 곳곳마다 그의 음악보다 자기와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면 혼란이 올 수 있다. 계속해도 되는지.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없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때문에 더 지칠 수밖에 없다. 낙태를 위해 병원에 갔는데, 그의 전 여자 친구가 낙태를 하지 않아서 수술비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 르원은 의사를 통해 세상의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계속 일이 꼬이는 그의 삶이 너무 안타깝다.
그는 시카고 동행자와 함께 차를 탔다. 소속사에서 르원의 음악을 보냈다고 했는데, 답이 오지 않아서 직접 사장을 만나러 갔다. 그 과정도 순탄치 않다. 함께 차를 탔던 사람은 르원과 함께 호흡했던 마이크를 비웃었고, 술 먹고 운전한 기사가 경찰에 잡혔는데 열쇠를 가지고 가는 바람에 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이기도 했다. 버릴 수 없어 데리고 탄 고양이를 그곳에 버리고 르원은 다시 떠났다. 르원을 보는 고양이 눈빛이 마치 르원이 보는 르원의 느낌에 가까웠다.
음반 사장을 만나 오디션을 봤다. 사장은 그의 음악을 칭찬하는 동시에 화음 넣어줄 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악을 계속하고 싶으면 알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포기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는 절대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면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음반 사장은 그의 음악보다 팔리는 음악의 입장에서 볼 수밖에 없으니 그가 음악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히치하이킹했고, 대신 운전해주는 조건으로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르원 역시 피곤했고, 졸음운전하다가 고양이를 치고 만다. 차에 내려 고양이를 봤을 때 고양이는 절뚝거리며 숲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잠들어 있어서 그는 모른 척 그 길을 빠져나간다. 이렇게 보면 르원과 고양이는 많이 밀접해있는 것 같다. 교수님 고양이를 들고 다니고, 착각하여 다른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고, 고양이를 치는 것처럼. 고양이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이미지가 크고, 르원의 삶과 비슷하여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음악이 잘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책임져야 할 대상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했던 배의 일을 보고, 시체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음악을 포기하고 배의 일을 하려 했지만, 배의 면허증을 버려 그나마 남아 있던 돈마저 잃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 선택했던 일인데, 이 일마저 쉽지 않게 됐다. 다행히 진의 추천으로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장면이 처음에 나왔던 부분이다.
한 번쯤 그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끝까지 그에게 기회다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르원의 모든 행동이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를 미워할 수도 없다. 르원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도, 내 가치관대로 살아도 확신이 없을 때도 있고, 부정한 일로 자꾸 뒤로 밀려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오해가 쌓이고, 진심으로 음악 하는 사람에게 상처도 줄 수 있고. 그래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면 조금 씁쓸해진다.
밥 딜런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면서 다시 뒷골목이 나온다. 무게만 더해지는 삶이 반복될 것처럼. 앞으로도 르원은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지금처럼 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질 때도 있고, 지금보다 덜 할 때도 만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