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히끄네 집, 노견 만세

나를 웃게 하는 고양이와 강아지

by 매실

나를 위로하는 히끄네 집, 노견 만세

나를 웃게 하는 고양이와 강아지


여름이었다. 집 안 온도가 올라가자 베란다와 현관문을 열었다. 이때다 싶은 똘똘이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계단으로 내려간 똘똘이를 잡기 위해 온 가족이 뒤쫓아 갔다. 녀석은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뛰기 바빴다. 겨우 잡힌 똘똘이는 숨이 찼는지 혀를 내밀며 웃었다. 분명 미소였다. 우리가 이렇게 놀라고 자기 뒤를 쫓아올 거란 걸 알았던 걸까. 어디로 도망가도 자신을 놓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얄밉다가도 귀엽다. 이렇게 강아지로 인해 우리 집은 평온과 북적거리는 일상의 반복된다. 이처럼 어느 날 만난 히끄로 인해 삶이 달라진 히끄 아버지 이신아씨의 삶이 궁금했다.


동물이 주는 위로


히끄와 함께한 시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나란히 서서 본 구름이 매일 달랐던 것처럼,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나날이 미묘하게 다른 빛깔로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그 소중한 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서 매일 하늘을 찍는다

[히끄네 집] 중에서


<히끄네 집>의 히끄는 게스트하우스로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었다. 실종 털빛이 히끄무레하다고 ‘히끄히끄’로 이름을 지었고 줄여서 ‘히끄’라고 불렀다. 히끄와 같이 살면서 일상을 기록한다. 히끄를 통해 하늘을 보고, 히끄를 통해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히끄를 통해 두려웠던 마음도 나아진다. 동물의 힘이란.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새벽에 우연히 들은 곡 때문에 우울했다. 당장 비행기 타고 떠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지 못함에 잔뜩 움츠리고 누워있는 내게 똘똘이가 다가왔다. 내 등 뒤에 자기 등을 맞대고 하품을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귀여워서 강아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팔을 펼치자 똘똘이는 내 팔을 베개 삼아 잤다. 똘똘이가 내게 해 준 건 옆에 있어주는 일뿐인데, 등을 맞대어 따스함 준 것뿐인데. 큰 위로가 된다.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진 삶

히끄와 함께 살면서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도, 꿈도 없었지만 히끄가 놀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꿈꾸게 되었고,
고양이와 사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유기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곁의 또 다른 히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되었다.

[히끄네 집] 중에서



똘똘이와 살면서 그 전엔 몰랐던 것들, 혹은 관심없던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수제 애견 간식 간판이 눈에 띄거나,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들 표정이 보이거나, 독특한 강아지 패션을 눈여겨본다거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수제간식 집에서 똘똘이 간식을 사서 집으로 갔다. 내가 들고 있는 간식을 향해 뛰어오는 녀석을 보면 엄마가 퇴근하면서 사온 치킨을 본 내 모습과 닮았다.


길거리에 강아지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제주도엔 떠돌이 강아지들이 많았다. 예전 같으면 무서워서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날 헤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유기견이 많아지고 학대받는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감정이 이입되기도 한다. 똘똘이도 입양했다. 혹시 입양하기 전에 이와 같은 학대를 받은 건 아닌지 하는 상상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사람처럼 강아지도 늙는다. 우리가 과거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듯 강아지도 자기보다 젊은 강아지를 만나면 그때를 추억한다. 그 강아지를 멍하게 쳐다본다. 늙을수록 뼈가 약해서 어릴 때처럼 빠르게 뛰지 못한다. 천천히 걷고 힘들면 주저앉는다. 강아지도 늙어간다. 사람에게 1시간이 강아지에겐 7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혼자 집에만 남겨져 있는 똘똘이를 생각할 때만 미안해진다. 노견 만세에서는 늙은 강아지를 이야기한다. 이 아이들도 한때 무릎 걱정 없이 뛰어다녔지만 지금은 그때를 추억하며 천천히 걷는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동물


해리가 떠나기 얼마 전의 산책은 달랐다.
당시 해리는 열세 살이었다. 대형견으로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해리는 주변 환경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발 앞에 한 발, 그 앞에 또 한 발 교대로 내딛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해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한 남자가 원반을 던지며
개와 프리스비 놀이를 하고 있었다.

몸집이 해리만 한 개는 해리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날아가는 원반을 능숙하게 쫓았고,
해리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원반의 상하 움직임과 회전, 기울어짐을 지켜보면서
원반이 날아가는 방향을 예측한 후,
역시 해리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날아올라 원반을 낚아챘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해리가 가만히 앉더니 10여분 동안 남자와 개가 던지고 받고
또 던지고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녀석의 얼굴이 만족감에 차올랐고, 두 눈은 빛났으며,
두 귀는 쫑긋 세워졌고, 꼬리는 씰룩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둘의 발걸음은 의기양양 그 자체였다.

[노견 만세] 중에서


강아지도 사람처럼 아프다. 상처 받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때도 있다. 강아지도 사람과 같다. 가족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고 먹는 걸 밝힌다. 아니다. 어쩌면 강아지는 사람과 같지 않다. 욕심이 없다. 그저 함께 있어주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놀기만 하면 된다. 그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숨바꼭질할 때마다 항상 똘똘이가 술래다. 내가 어디 숨을지 꿰뚫어 보는 똘똘이는 문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래서 다른 곳으로 뛰어간다. 그때 난 다른 곳에 숨는다. 역시 바로 찾는 이 녀석은 똑똑한 강아지가 아닌가 싶다. 강아지 영재. 생각해보면 내가 똘똘이를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똘똘이가 나를 놀아주고 웃게 하는 것 같다.


혼날 때마다 꼬리와 귀를 내리며 눈은 잘못했다고 쳐다본다. 신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배고플 때마다 나를 불러 밥 먹는 걸 봐주길 바란다. 항상 함께 있길 바란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산책할 때 앞장서서 걷는 똘똘이는 내가 걸음이 늦어질 때마다 기다려준다. 똘똘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아이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모른 채 살았겠지. 지금도 이불속에서 나를 쳐다보며 놀아주길 기다린다. 이만 글을 마치고 똘똘이에게 간식 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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