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기 위한 요령이 있나요?

[영화] 팥빙수 먹으며 멍 때리는 삶, 안경

by 매실

사색하기 위한 요령이 있나요?

[영화] 팥빙수 먹으며 멍 때리는 삶, 안경


나는 자유가 무언인지 안다.

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라

심연의 바다를 멀리 한 채

그대의 말들을 뒤로 남긴다.

달빛은 온 거리를 비추고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석처럼 빛난다.

어쩌다 인간이라 불리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

무얼 두려워하는가?

무얼 겁내는가?

이제 어깨를 누르는 짐을 벗어버릴 시간

나에게 용기를 다오

너그러워질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나는 자유를 안다.


-안경 영화 중에서


재능 있네요. 여기에 있을 재능

비행기를 보며 말한다. “왔다” 누군가의 등장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안경을 끼고 있다. 안경은 여러 의미로 볼 수 있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으로 눈이 나빠졌거나 무언가를 시작할 때 안경 끼며 집중하는 등. 그들이 안경 쓰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숙소에서는 2가지만 알면 된다. 마을과 바다 위치.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온 타에코에게 유지는 “재능 있네요. 여기에 있을 재능”라고 말한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은 곳으로 왔지만 낯선 곳이기에 두려움은 있다. 아침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바다 쪽으로 걸어간다. 그곳에 메르시 체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안경>에서는 메르시 체조를 뺄 수 없다. 아침마다 사람들이 모여 같이 체조를 한다. 음악이 너무 귀엽다. 진지하게 따라 하는 사람들. 보통 영화에서는 이런 체조하는 장면을 지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략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체조하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타에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낯섦

일상에 지쳐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낯선 환경의 삶.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실컷 잘 수 있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볼 수 있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릴 수 있었으면. 하지만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낯섦을 꿈꾸지만 적응하기 어렵다. 타에코 역시 마트에서 실과 바늘을 구매해 뜨개질을 한다. 다 같이 먹는 아침식사. 밥상에는 항상 매실장아찌가 있다. 매실은 그날의 화를 면해준다. 그 소소한 믿음이 귀엽기도 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에 미소 나온다. 타에코를 찾아온 제자. 타에코와 함께 바다에서 맥주 마시며 말한다.


여기서 마시는 맥주도 최고지만, 사색하기 좋은 곳 같네요


사색하기 위한 요령

사색하기 위한 요령이 있나요?
음, 옛 추억을 그리워한다 던 지, 누군가를 곰곰이 떠올려 본다 던 지 그런 거


타에코만 모르는 사색. 그 사색이 궁금하여 유지에게 묻는다. 유지는 흘러가 버리는 것을 차분히 기다릴 뿐이라 한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조급함 없는 편안함을 궁금해한다. 그때 그 빙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기 있지 않을 거란 유지 말에 타에코는 빙수를 먹으러 간다. 사람들은 빙수를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보답한다. 당장 어떤 걸 줘야 할지 모르는 타에코. 사쿠라를 보면 타에코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사색할 수 있도록 ‘빙수’를 만든다. 타에코는 어떤 걸 만들어야 할지 모른 채 뜨개질했었는데 머플러를 만들어 사쿠라에게 준다.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모를 때 해야 할 일을 알게 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알게 된 것처럼.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공간과 사람들이 좋아서 머무는 곳이 된 걸 수도 있다.


머물고 싶은 낯선 곳

모든 스토리는 밋밋함 속에서 진행된다. 타에코가 낯섦에 적응하고, 다음 해 봄에 빨간 머플러를 하고 온 사쿠라를 만나게 되는 장면까지. 어쩌면 우리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낯섦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이들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와 맞는 장소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타에코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이곳까지 왔다. 우리 모두 타에코란 생각이 들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쉬는 방법을 잘 모르고. 가끔 무리에서 어울리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을까?' 생각하게 한다. 사람으로 인해.


생각할 시간이 충분한 곳에서 빙수 맛을 보고, 자연스럽게 본 바다와 바람 그 분위기, 사색을 통해 조급할 필요 없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타에코가 떠날 때 안경을 떨어뜨린다. 보통 안경이 떨어지면 다시 주울 텐데 아-하고 넘긴다. 뭔가를 벗어던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다. 그리울 때마다 찾을 곳이 있다는 건 부럽다. 나도 언젠간 찾을 수 있겠지. 나와 맞는 장소를. 낯섦을 적응할 수 있는 그런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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