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로 떠난 여행, 군산
필름 카메라로 떠난 여행, 군산
필름 카메라를 들고 군산에 갔다. 가본 적은 없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을 보자마자 오래된 것을 지키는 지역이라 생각했다. 필름 카메라로 찍으면 내가 느낀 그대로를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버스를 타자마자 흔들림 때문에 잠들었고,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 번도 깨지 않고 도착하니 기분 좋다. 별거 아닌데 이런 시작이 기분 좋게 한다.
기분전환
가능한 여행
내 여행은 여기저기 걷는 것이다. 몰랐던 곳을 산책하면서 길을 알아가는 것.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내 취향에 맞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날씨까지 좋다면 금상첨화. 덥지 춥지도 않은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군산을 선택한 이유는 엄마와 함께 단 둘이 여행하고 싶어서였다. 엄마와 나는 둘 다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엄마는 나이 들수록 일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조급해하고 나는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하며 적당히 조급하려 했다. 엄마와 기분 전환하고 싶었다. 서로 티 내지 않지만 집이 답답했으니까. 여행하기 하루 전에 엄마가 취업에 성공해서 나 혼자 왔지만.
군산은 볼거리가 몰려있어 도보로 여행이 가능하다. 경암동 철길마을에 갔다. 보자마자 엄마랑 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세대 교복을 입고 사진 찍는 곳도 많았고, 추억의 간식도 팔았다. 혼자 여행하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도 되고, 먹고 싶은 걸 먹어도 되는 편함이 있지만, 엄마 또래분을 보면 갑자기 외로워진다. 그나저나 나는 여행이라도 하는데 엄마는 기분전환을 어떻게 할까.
8월의 크리스마스
엄마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여준 적 있다. 나는 못 봤지만. 군산에 왔으면 초원사진관은 가야지. 내부는 영화 스틸컷이 있고 의자가 있었다. 오래된 영화지만 이렇게 관광지로 이 공간을 유지해서 좋다. 사진을 찍자마자 엄마한테 보냈다. “초원사진관 기억나?, 여기 오고 싶지?” 엄마는 “응 좋네” 짧은 답변을 보내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 하셨다. 진짜 좋은 건지 모르겠다. 나도 가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때가 있지만 엄마는 정말 모르겠다. 엄마가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가자고 하면 할 일 많다고 거절한다. 그럼 그 일을 나눠서 하고 같이 가면 되겠다고 하자, 귀찮으니까 네 일 하라고 하신다. 그 말이 서운하다. 엄마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소통하지 않는 배려가 서로를 서운하게 만든다. 엄마는 아마 내 시간을 엄마를 위해 쓰는 게 싫은 것 같다. "넌 네 친구들이랑 놀아야 재미있지, 엄마랑 가서 뭐해"
한적한 뒷마당
동국사에 갔다.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한 바퀴 돌면서 뒷마당에 갔는데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들어와도 계속 자고 있는 걸 보니 사람이 와도 조용히 보다 간다는 걸 아는 강아지인 듯싶다. 바람이 불었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앉았다. 다양한 초록색을 가진 나무들을 보면 편안해진다. 이런 나를 보면 시골에서 살아야 될 것 같지만 벌레를 싫어하는 나를 보면 시골이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한테 사진을 보내려다 참았다. 집착하면 내가 친구가 없는 건 아닌지, 남자 친구가 없어서 엄마한테만 애교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난 그냥 엄마가 좋아서 같이 봤으면 하는 건데, 우리 엄마는 날 너무 귀찮아하신다. 난 나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도 딸이 최고야.
취향이 닮은 카페
'핸드드립'간판 보고 카페에 들어갔다. 다양한 커피 추출 기계와 도구를 보고 흥미를 느낀 내게 사장님은 원두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내 취향을 물으시며 나와 맞는 커피를 추출해주셨다. 약간 신 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커피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때야, 지금 찍어야 예뻐" 카페에 들어갈 때마다 사장님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손님과 얘기하길 좋아하는 사장님을 종종 만난다. 오늘이 그랬다. 어디서 왔고, 우리 카페 어떻게 왔는지, 어디 어디 여행했는지. 사진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사장님이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여행지에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게 여행하는 묘미지"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길,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여행이라 가능한 거니까.
잠시 들린 군산
걷다가 흑백 사진관이 보였다. 지금 이렇게 여행 온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사진관에 들어갔다. 내가 첫 손님이다. 자리에 앉아 정면, 오른쪽, 왼쪽 여러 각도로 찍었고 그중에서 가장 예쁜 사진으로 인화해주셨다. 예전에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이 각 국에 있는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는다는 말이 기억났다. 포토샵 보정 없이 있는 그대로로 찍히지만 그때의 나를 기록하는 재미있는 방법인 것 같다. 나도 여행 다닐 때마다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지. 당일치기라 일정이 금방 마무리됐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느낌이다. 군산은 여행보다 그냥 잠시 들린 곳 같다. 쉬어가는 곳. 매일 집에 있거나 카페에 가지만, 가끔은 이렇게 다른 도시에서 산책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엄마랑 여행 가야지.
월간심플 4월 '필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