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만으로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기억하고 싶다.

by 매실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기억하고 싶다.


자고 일어나 뻗친 강아지의 머리를 보면 어제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구의 엽사는 어느 개그 프로그램보다 웃기다. 하나 둘 셋 하면서 찍은 어색한 모습보다 잘 나오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을 주로 찍었다. 그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기억하고 싶어서.


소나무 같은 모습

앨범을 구매했다. 시작은 이렇다. 우연히 서랍에서 냄비를 꺼내다가 내 어릴 적 앨범을 봤다. 신기하다. 내가 이렇게 어렸던 적이 있었다니. 키만 컸지 얼굴은 유치원 때 모습 그대로였다.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친구들은 폭소했다. 나름 귀여운 모습에 당당하게 보여줬지만, 친구는 나를 보며 소나무라며 변하지 않은 모습이 웃겼다고 했다. 친구는 우울할 때마다 꺼내보겠다며 내 어린 모습을 저장했다. 엄마에게도 보여줬다. 엄마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이때 기억 안 나? 집에 가자고 했는데 네가 싫다며 자꾸 도망갔잖아” 앨범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기억나지 않은 순간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쌓여 내가 만들어졌다고. 그래서 난 지금부터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추억 깃든 앨범

사진을 정리하고자 노트북을 켰다. 많은 앨범 목록을 보자마자 내가 이 많은 사진을 정리할 수 있을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됐지만, 작업하기 위해 켠 사진들은 그때를 추억하게 했다. 오랜만에 꺼낸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줬고 “내가 이렇게 풋풋할 때가 있었다니” 하며 나처럼 사진 속 그때를 추억했다. 사진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컸다. 사진을 정리할 때마다 조금 더 젊었고 조금 더 철없던 때를 생각하게 했다. 난 계산 없이 행동했다. 무슨 깡이었을까. 대학교를 입학하고 원하던 동아리가 없어서 교수님께 찾아갔다. 동아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지도교수님의 요청과 지원금을 받았다.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지금은 조용하게 글 쓰고 있다.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나의 여러 모습을 본다.


가족, 친한 친구, 내 일상을 함께 해준 사람들, 여행, 강아지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핸드폰으로만 간직하거나 노트북 파일 속에만 있던 추억들을 꺼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시간이 점 점 줄어들고 있구나. 시간에 상관없이 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시간을 맞춰야지만 만날 수 있구나, 강아지는 항상 나를 향해 잠들고 있었구나. 앨범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은 안 했겠지. 무료하다고 생각했던 내 시간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친구와 밥을 먹고 엄마와 카페에서 차 한 잔 하고 강아지와 아파트를 산책하는 이 일상도 좋았다. 매일 하고 있는 내 행동이 특별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내 일상이 특별해지고 있었구나.


드디어 사진을 인화하고 앨범에 사진을 꽂았다. 정리하자마자 엄마 아빠에게 보여줬다. “이때 63 빌딩에서 찍은 거 기억나?” “어, 기억난다. 젊었네” 엄마의 표정은 조금 늙은 것에 대한 씁쓸함이 아닌 그때의 그리움을 회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 했던가. 그러니 지금을 잘 기록해야 한다.


사진이 준 또 다른 추억

여행 앨범을 보고 있다. 저때 마신 와인은 특별했다. 와인으로 약간의 취기도 있었지만 재즈 공연으로 가게 전체가 들썩거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앨범을 놓고 와인 사러 갔다. 더 완벽하게 기분 좋은 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코르크 마개 오프너가 오래되어 코르크 마개 속에서 부러졌다. 와인 마실 생각에 기분 좋았는데 우울해지려 하자 아빠는 비장한 표정으로 펜치를 가져오라 하셨다. 사진을 보다 이런 상황까지 오다니. 아빠는 가위, 열쇠 등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앨범을 보고 그 순간을 추억하지 않았다면 이런 웃픈 순간도 없었겠지. 결국 난 와인을 마셨다.


월간심플 4월 '필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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