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프로젝트
방백 프로젝트
언제부터인가 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으면 마음 아프고, 발걸음 가볍게 뛰면 웃음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보면 뒷모습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고 표정이 있는 것 같다.
방백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말은 하지만 무대 위에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대사(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젊거나 늙거나 상관없다.
나이를 무색게 하는 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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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소, 그때의 나를 기록하는 포즈
젊고 늙음을 떠나 무언가를 시도하는 우리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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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오른쪽 봐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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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내꺼 공룡은?
여기 있어, 걱정 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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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게
(묵묵)
뒷모습으로 상상한
그들의 일상
Q: 뒷모습은 어떻게 촬영하게 되었어요?
길을 걷는데 제 앞에 노부부가 있었어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알 수 없지만 저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를 상상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말없이 낚아챘고 할머니가 다시 반쪽을 들더니 한쪽씩 나눠 들었어요. 들리지 않던 대화 속에서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격을 상상하고 노부부의 일상을 생각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 뒤로 사람들 뒷모습을 보며 상상해요. 그러고 혼자 피식 웃곤 하죠.
Q: 상상 속 노부부의 일상은 어떤가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집에 도착하면 할아버지는 식탁 위에 장 본 재료들을 놓고 거실에서 TV 보실 것 같아요. 정리하는 할머니를 힐끔 쳐다보며 TV를 볼까 도와줄까 고민하지 않을까요. 고민하다 갑자기 일어나서 잔소리처럼 이건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말하고 냉장고에 넣어 주실 것 같아요. 츤데레 할아버지.
Q: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바로 상상하나요?
모든 사람을 상상하진 않아요. 내 앞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있구나’ 정도로 넘기는 경우가 더 많아요. 어떤 사람은 갑자기 상상돼요. 그냥 걷는 것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걸으면 더 튀는 것처럼. 그 뒷모습이 화려해서 혹은 화려하지 않아서 눈에 들어와요. 예를 들면 우리 엄마처럼 단발머리에 파마를 하고 엄마와 비슷한 체형에 옷 입는 스타일까지 같다면 눈에 띄잖아요. 엄마가 아닌 걸 알지만 뭔가 엄마처럼 느껴져서 감정 이입하게 돼요. 퇴근길이면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차리시겠지? 우리 엄마처럼’ 이렇게요. 아마 제가 하는 고민이나 제 일상과 맞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 그들을 상상하는 것 같아요. 화려한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걷는 할머니를 보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는 것처럼요.
Q: 뒷모습 촬영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저만 들리는 이야기라 좋은 것 같아요. 제가 그들을 상상하지만 그들이 제 상상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같은 사진이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노부부 사진을 보고 친구는 많이 사는 할머니에게 짜증 내며 빨리 가자고 반쪽을 낚아챈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거죠. 그 말을 들으니 그런 상황 같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Q: 앞으로도 방백 작업은 계속하는 건가요?
길을 걸으면 많은 이야기가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반대편에서 휠체어 탄 어머니와 그 휠체어를 미는 딸,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이야기가 있겠죠. 그들에게 관심 두지 않으면 지나갈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상상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만. 전 앞으로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기록할 거예요.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찍고 싶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이 사진을 통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월간심플 4월 '필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