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유교걸은 아니지만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다 보면 확실히 일반인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모르고 살면 좋았을 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는 한복 드레스가 그랬다. 결혼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결혼에 대한 로망 있어? “ 나의 결혼식의 유일한 로망은 한복 드레스였다. 사회초년생 시절 어느 화보에서 보았던 패션쇼 옷 중에 이영애 배우가 한복 드레스를 입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결혼한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던 그 시기에도 느꼈던 것 같다. 누구나 입는 것 같은 드레스보다 아무나 안 입을 것 같은 한복드레스가 더 있어 보인다고. 업무 특성상 수많은 화보와 패션 위크, 광고, 드라마, 영화 일의 사진을 보며 셀렉하며 10년을 넘게 일했다. 그러다 보니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당연히 시야가 넓어질 수밖에. 패션을 하나도 모르지만 본 것만 많아진 지금이 여전히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 한복드레스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막상 결혼을 할 때가 되니 그때 스쳐 지나가며 봤던 한복 드레스가 다시 떠올랐다. 훤하게 쇄골을 드러내지도 않고 팔뚝살 뺀다고 난리 치지도 않으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가진 한복 드레스. 내가 대단히 유교적이라 노출 없는 옷을 선호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는 그냥 한복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부터 명절이면 한복을 챙겨 입혀주던 엄마 덕분일까. 초등학교 1학년 대구에서 살던 시절 학교와 주변의 권유로 대구 전체에서 열리는 어린이 한복 맵시 대회에 초등학교 대표로 친구와 나간 적이 있다. 물론 결과는 수상하지 못해 참가한 것이 전부인 초등학생이었다. 그때도 그저 한복 입는 게 좋아서 나갔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몸만 컸지 별 다를 게 없었다. 강남 8학군에 속하는 한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미션 스쿨인 그 학교는 노래선교단이라는 전통 있는 합창단을 계승하고 있었다. 성가곡과 일반 곡을 합창으로 노래하며 여름 내내 전국 곳곳을 누비며 순회 연주를 하는 합창단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한복을 공식적으로 입을 기회가 찾아왔다. 그 합창단의 단복 2가지 중 하나가 바로 한복이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대단히 잘하는 언니가 전년도 합창단이어서 지휘자 선생님의 환심을 사서 뽑힌 것 같다.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한복을 입으며 다시 무대를 올랐다. 이쯤 되면 입을 만큼 입지 않았나 생각도 되지만 나의 한복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창 개량 한복이 유행해 예쁜 한복들이 나오던 대학생 시절. 일본과 독도 분쟁이 한창 회자되던 시절. 무슨 대단한 독립투사라도 된 듯 친구와 함께 개량 한복을 사 입고 울릉도, 독도를 향했다. 작다면 작은 섬 마을에서 어딜 가나 튀었던 분홍 한복에 대한 사람들이 관심과 환심이 한복 입은 그 당시 나를 또 무대에 올려놓았던 것 같다. 아직도 사진을 보면 왜 이렇게 한복을 고집했는지 생각나기보다 ‘나 참 별나다’ 생각밖에 안 든다.
이렇게 한복에 대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내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혼에 대한 무대에 오른다. 그런데 나는 이미 봤다. 한복 드레스를 입은 이영애를(손님 그건 이영애고요). 다 모르겠고… 몰랐으면 몰랐지 한복도 드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어떻게 포기하냐고. 이렇게 유니크한 드레스가 있는데 어떻게 포기하냐고. 그때부터 한복 드레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결혼식 한복’ ‘한복 드레스’ 해시태그를 수도 없이 검색하며 모았던 서울 어딘가, 수원 어딘가, 광주 어딘가의 한복집들. 사실 결혼식 한복이라고 검색하면 혼주 한복과 신랑신부가 2부에 입는 전통적인 한복이 나오기 마련이지 본식에 입을 수 있는 한복 드레스는 거의 없다. 그래도 개 중에 하나씩 전통방식에서 조금 리폼된 한복을 2부 드레스로 입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어떻게 잘하면 본식에서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화려하면서도 예쁜 화이트 컬러의 한복들. 한복집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첫 게시물부터 최근 게시물까지 샅샅이 뒤지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캡처해 하나씩 DM을 보냈다. 대부분의 한복집에서는 맞춤한복이란 대답을 줬고, 대여 가능한 한복은 본식드레스로는 조금 약한 디자인이었다. 그렇게 뒤지고 뒤지고 또 뒤졌지만 나의 뇌리에 박혔던 이영애의 한복 드레스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비슷한 것조차도.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한복 드레스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뒤지는 걸 보면 주변에서 묻는다. 대체 무슨 한복 드레스냐고 좀 보여달라고. 아쉬운 마음에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이영애의 한복 드레스 화보를 다시 인터넷에 검색했다. 한복 드레스를 치면 딱 두 명의 화보가 나오는데 바로 이영애와 수지다. 그런데 그들이 입고 있는 어떤 한복 화보도 내가 찾던 디자인이 아니다. 내가 찾는 디자인, 스타일을 누군가 인터넷을 쥐 잡듯 뒤져 전부 삭제 조치 했다고 할 정도로 없다. 나 이런 거 보고 입고 싶었던 거라고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사진이 없다. 만들라면 어떤 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진이 없다니…. 진짜 신기루 같아서 억울할 지경이다. 분명 봤는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럼 사람들은 그런다 그냥 적당히 찾아 입으라고 사실 뭐 입었는지 아무도 기억 못 한다고. 아니, 그래서 기억하라고 한복드레스를 입고 싶었던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 봐야 소용없다. 그저 내 기억에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한복 드레스와 한복 드레스에 맞는 베뉴를 잡는 걸 실패한 나는 결국 교회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한다. 어쩌면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나만의 한복 드레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한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갈망하고 있던 로망이라 포기가 쉽게 안 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편하다. 로망을 실현하지 못하다 보니 그냥 아무거나 입지 뭐, 잠깐이데 뭐 비싼 거 입나, 다들 내가 뭐 입었는지도 기억 못 할 텐데 그날 잘 어울리는 거 입으면 되지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결혼도 어쩜 그런 거 같다고. 내가 원하는 것, 바라던 것, 상상하고 있던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어떤 일은 설명이 안되고 어떤 일은 착각이고 오류일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 삶 속에 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양보하고 포기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나에게는 로망을 내려놓음이 드레스로 왔지만 누구에게는 남자친구의 성격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집을 결혼식 위치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오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꿈꿔왔던 결혼의 로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혼을, 결혼 생활을 위해 타협, 이해, 배려,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확장해 가는 시간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