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공개 가능하세요?

제 얼굴을 이미 공공재라서요

by Melody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던 네이버 블로그를 10년 만에 살렸다. 10년 전에 뭐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블로그를 살려낸 것은 단연 결혼 때문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본식 스냅, 영상, 한복, 예복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영역의 계약을 한다.


신부들은 원하는 업체에서 조금이라도 계약을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업체들은 조금이라도 네이버 검색량을 늘리고 홍보가 되기 위해 여기저기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을 홈페이지에 특전처럼 올려놓는다. 사전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계약 할인, 친구 할인을 넘어 본식 후기를 올리고 페이백 할인을 받는 방법까지 아주 다양하다. 웨딩 업자들이 원하는 매체는 명확하다. 네이버 검색을 잡기 위한 블로그, 신부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웨딩 카페. 보통 포스팅 하나당 만원을 할인해 주고, 친구 할인은 최대 7명까지 해주는 업체를 봤고, 본식 페이백을 만원 정도 해주고, 업체 SNS에 본식 사진을 올리게 해 주면 또 만원 정도 할인해 준다. 이렇게 쫌쫌따리 할인되는 금액을 합산해 보면 30만원 정도의 비용 절약이 된다. 모든 신부들이 받고 싶어 하는 피부 관리, 경락, 승모근 관리까지 협찬으로 받는다면 환산했을 때 약 3-400만원 정도가 세이브된다. 돈이 물 세듯 세는 결혼에서 이 정도 금액이라면 신부들을 혹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에는 대 전제가 붙는다. 얼굴 공개. 좀 더 시리어스 하게 이야기해 보면 초상권 사용. 누구에게는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고, 또 누군가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 같다. 결혼을 위해 해 처음 블로그를 살리면서 고민을 했다. 내 얼굴이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될까. 누군가는 '얘 옛날 oo 걔 아니야?!'라며 찾고 싶지도 않던 동창에게 결밍아웃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했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 준비를 하는 30대 중반의 여성에게는 단돈 만원이 아까운 실정이었으니. 지나가는 행인1 정도 되는 평범한 얼굴과 몸매지만 30만원 할인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내 얼굴과 손품과 글빨을 팔아 할인은 받기로 결정했다.


블로그를 다시 쓰면서 제일 중요했던 것은 꾸준한 포스팅이었다. 사실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포스팅 소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은 맛집 체험단이었다. 그렇게 맛집을 체험단을 쌓아가다 보니 어느새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일 방문자수 덕분에 화이트 태닝, 피부 관리, 경락, 승모 관리 등의 체험단까지 확장됐다. 결혼은 돈을 써야 할 곳과 돈을 쓰고 싶은 곳으로 나뉜다. 태닝, 피부, 승모는 쓰고 싶은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력이 안되고, 누군가에게는 아까운 영역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양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10여 년의 사회생활로 모아 놓은 돈은 충분했지만, 회사를 그만둬서 생활비와 결혼 자금을 함께 충당해야 되는 상황에 이런 관리들은 사치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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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메뚜기 뛰듯 피부, 경락을 체험단으로 이곳저곳 2주에 한 번씩 신청해서 다녔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런데 뭐 어떤가. '얼굴만 공개하고 글만 좀 쓰면 한 번에 10만원 가량의 돈을 세이브하면서도 관리도 받는데'라는 마음으로 결혼 6개월 전부터 나름 꾸준히? 관리를 받았다. 결혼 4개월 전. 체험단으로 갔던 한 에스테틱에서 체험단으로 여러 곳을 가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경우에는 관리와 압이 다 달라서 피부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순간 무서웠다. 공짜로 관리받고 예뻐진다고 좋아했는데 더 못 생겨질 수 있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관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가치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진짜 관리가 필요한가? 관리를 받고 싶다면 얼마나 받고 싶은가? 나도 여느 신부와 다르지 않았다. 회사만 다녔다면 아무렇지 않게 했을 것 같은데 결혼 준비를 하며 남자 친구와 돈을 합치면서 혼자서 눈치를 보고 있어서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ㅡ남자 친구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면서 괜찮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열심히 일만 했던 나는 안 벌 때는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ㅡ 사실 격렬하게 하고 싶은데 안 그런 척 꾹꾹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열심히 벌어서 모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모은 돈인데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있는 게 현타가 왔다. 하고 싶어 하는 결혼인데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여건과 상황이 안돼서 못할 때보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해봐서 못 하게 되는 게 더 마음에 남는다. 어떤 것이든 도전해 봐야 알고 부딪혀봐야 알듯. 누가 보면 그깟 관리라고 할 수 있지만 안 한 건데 못 한 것처럼 마음 한편에 남게 되면 결혼하고도 후회든 아쉬움이든 남을 것 같았다. 결혼하면서 몇백은 돈도 아니라고들 얘기하지만 직장 없이 결혼을 준비하는 나에게 피부관리, 승모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몇 백만원의 돈은 여전히 큰돈이었고, 쓰기 어려운 돈이었다. 특히 결혼 같이 우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만을 위해서 쓰는 건 더더욱.


그래도 안 해서 못하는 건 너무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해 냈다. 나는 이제껏 썼던 관리숍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피부, 승모를 모두 하는 에스테틱이면서 동시에 관리가 마음에 들고 관리사와 티키타카가 잘 맞아서 유독 정성 들여 쓴 에스테틱을 찾았다.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유독 여러 번 연락이 오가면 그나마 사업자와 소비자의 라뽀가 형성될 수 있던 곳이었다. 조심스레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원장님도 다행히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집에서 거리가 조금 있지만 이곳에서 저렴하게 네고해서 관리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돈내산으로 1회 예약을 잡고 다시 방문했다. 원장님도 내가 쓴 포스팅이 마음에 들었는지 비슷한 시기 체험단 한 사람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해 주셨다.ㅡ하긴 그때 탈의한 상체 비포, 에프터를 사진을 전부 공개했으니까ㅡ관리가 끝나고 원장님께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승모, 피부 비포/애프터 블로그를 2회 포스팅하고 결혼식 이후 사진 제공까지 해드리는 대신 회원가의 반값으로 회차권을 끊는 조건을. 조금 고민하시던 원장님이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결혼 3개월 전부터 매주 2회 피부, 승모 관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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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결과는 대만족. 안 했으면 어쩔 뻔. 세상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긴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했던 선택이 가끔은 사무친다. 그런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안 해서 평생 못하게 됐다면 심리적 타격이 오래갔다. 시간이 지나 나의 재력, 상황, 경험치가 쌓일수록 '그때 왜 그걸 안 했을까'라는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이 내 평생 가장 행복한 날 중에 하나인 결혼식에 남았다면 좀 더 큰 미련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넘겨버린 많은 나날들이. 어쩌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너무나도 가벼운 일들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아쉬움과 후회가 좋은 기억만 가져갈 수 있던 행복한 순간에 덧칠을 하지 않았을까. 조금만 용기를 냈다면 나를 믿었다면 즐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지 않았을까. 어느 순간에는 '이걸 왜 했을까? 안 해도 됐었는데'라고 웃으면서 하는 얘기들도 이미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여유의 한 마디가 아니었을까. 결혼에서의 선택뿐만이 아니더라도 지금 뭔가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면 일단은 해보자. 일단 해봐야 정답을 알게 된다. 정답은 행동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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