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는 고상하고 절약은 궁상일까? 미니멀 리스트와 짠순이는 한끝 차이다. 미니멀 리스트는 간소하게 살다보니 절약을 하게 되고, 짠순이는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을 할 것 같지만, 사실 이 둘은 서로를 오간다. 글쎄, 궁극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어떨런지 몰라도 적어도 어설픈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그랬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불안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 사피엔스다. 미니멀 리스트로 입문했다고 해서 다른 종족이 될 수 없었다. 적은 물건으로도 충분한 삶을 사는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지향하다보니 절약이 되었다. 동시에 아이들 잘 먹이고 깨끗한 옷 입혀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절약하다보니 미니멀리즘 철학이 아껴사는 나를 든든히 응원해주었다. 주부에게 미니멀 라이프와 절약은 한 몸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는 머리로 하는 철학이요, 절약은 두 다리로 뛰는 실천이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겠다며 안입는 옷을 모조리 의류함에 과감히 넣어도, 그 자리에 신상 원피스를 채우고 싶은게 30년간 다져온 소비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 신상 원피스를 몇 번 입고 안 입을게 뻔한 내 습성도 뻔히 보였다. 그러므로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돈 쓰는 일'과 '사놓고 물건을 방치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떨쳐버려야 했다. 머리로는 미니멀 라이프를 알아도 몸으로 절약을 훈련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물론 머리도 미니멀 라이프를 자꾸 잊어버려, 틈틈이 책을 읽어 미니멀 라이프에 맞게 머리를 예열해야 했다.)
물건을 비운 후, 그 자리를 채우지 않기 위해 절약 연습을 했다. 가계부 쓰기는 기본, 한 달 예산만 남기고 모조리 저축해버리는 선저축 후소비,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는 무지출 도전, 냉장고 식재료를 다 비워내기 전까지 장을 보지 않는 냉장고 파먹기, 하루 예산을 정해놓고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봉투 살림.서서히 절약하는 삶을 몸에 새기게 되었다.
간소한 삶에는 유행하는 옷도, 대형 SUV 차도, 33평 신축 아파트도 없었다. 놀러가면 좌판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어머, 이건 꼭 사야해!'하며 곧장 지갑 열던 과거도 비웠다. 소중히 쓰지 못 하고 예쁜 쓰레기로 전락해버릴 물건들은 사지 않는다. 습관적인 외식과 카페를 서서히 줄였다. (카페 줄이기는 여전히 어렵다. 왜 카페에서 책이 더 잘 읽힐까?) 더 사지 않는 것도 모자라, 갖고 있는 것도 비워냈다. 사지 않는 하루 끝에는 공간의 여유와 계좌 잔액이 남았다.
절약이 미니멀 라이프와 만나니, 절약은 더 이상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다. 소비지상주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유로움이었고, 주식 투자 했다하면 원금의 30%를 까먹어버리는 금융맹+똥손 부부가 빚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자식들이 편하게 살지 않는다고 불쌍히 여기셨다. 시어머니는 내 아들이 며느리 옷 한 벌 안 사줄 줄은 몰랐다며 통탄하셨다. 그런데 점점 지내다보니, 얘네가 옷이 없지 즐거움이 없는게 아니었다. 매주 애들 데리고 바닷가 모래 파고, 공원가서 킥보드 타고, 식탁 위에 찜닭, 훈제오리, 샐러드, 감자탕, 굴국 그럴듯한 일품 요리들을 올려놓는게 아닌가. 사지 않을 뿐, 살지 않는게 아니었다.
미니멀한 삶을 이어가고 싶은데 잘 안 된다면 절약 훈련을 하자. 명심하자. 부자가 되려고 절약하는게 아니고, 미니멀한 삶을 위해 절약하는 것이다. 우리의 철학은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자'가 아니다. '행복할만큼 벌어 필요한만큼 쓰자'다. 즉, 절약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는 지점이 있다면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또한 모아둔 돈이 없어 소박하게나마 먹고 살기 힘들어서도 안 된다. 적은 계좌 잔액 또한 행복을 앗아갈게 분명하다.
절약도 즐겁게 하고, 매일 룰루랄라 공원에서 단풍 주우며 보냈는데 어느새 종잣돈도 모여 있을 것이다. 그 종잣돈으로 아파트를 한 채 사서 세를 놓든, 땅을 사서 농사 지어 안전한 먹거리를 재배하든, 건물을 올리든, 어떤 방향이라도 좋으니 더욱 안정적인 삶을 위해 쓰자. 미니멀리스트들이여, 용기를 내자. 세상의 미니멀리스트들은 잘 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