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워라밸과 20%의 성실함.
"물꼬기키즈카페가 있데!"
아뿔싸. 큰 아이가 글자를 잘 모를 때에는 어디 가자고 잘 조르지 않았다. 그런데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 산책길 굽이굽이 고비다. 오늘도 위기가 왔다. 녹색도시체험센터 마당의 놀이터에 가던 길에 아이가 센터 옆 건물의 아쿠아리움을 본거다.
"우리도 저기 가자. 물꼬기키즈카페."
난 아쿠아리움의 사악한 입장료를 안다. 어른은 18000원, 아이는 14000원. 길어야 겨우 1시간 코스인데! 4인 가족 한 번 가면 64000원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은 새로운 세계도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 두어번 가봤던 곳이니까. 거듭 생각해도 역시 비싸다. 나는 아이에게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절대 입장료 때문이 아니라는 태연한 표정으로.
"우리는 코로나를 조심해야해."
아이는 쉽게 수긍한다. 음. 맞아요, 코로나는 무서워요.
이렇게 코로나를 핑계로 우리는 64000원짜리 아쿠아리움 대신, 공짜 놀이터를 즐겼다. 사실 마스크 안 벗고, 틈틈이 손 잘 씻으면서 관람하면 괜찮겠지만. 이건 엄마만 아는 비밀. 아이는 뭐, 뒤도 안 돌아보고 놀이터로 직진해서는 신나게 놀았답니다.
부자가 되야하나? 64000원 짜리 입장료 쯤, 애가 원한다면 척척 내줄 수 있는 그런 부자 엄마? 코로나 핑계는 그만 대고 말이다.
뜬구름 같은 고민은 아니었다. 난 진지하게 돈이 많은 상태에 대해 고민했다. 작년 12월, 미친듯이 바빠서 밀키트를 사 먹었는데, 과연 돈이 좋았다. 편하고 맛있는 짜릿함! 안락에도 관성이 붙는걸까. 밀키트를 사게 되니, 비례하여 포장음식도 늘었다. 포장음식 뿐이랴. 장 볼 때도 지갑 빗장을 술술 풀었다. 절약에는 집 앞 작은 마트가 좋지만, 대형마트로 가서 온갖 간식을 잔뜩 쟁였다.
돈 쓰는 맛이 들었다. 쓰는 맛이 들수록 공허했다. 나 이렇게 돈 막 써도 돼? 당연히 그렇게 쓰면 안 됐다. 우린 아파트 대출도 갚아야 하고, 올해 3월부터 외벌이 살림이다. 쓰면 안 되는 돈인데 귀한 돈을 너무 막쓴거다. 후회가 됐다. 후회하고 나니, 부자가 되어야 하나 고민했다.
부자는 부럽다. 부자의 자유로운 소비와 안정감이 좋아 보였다. 부자들의 값진 달콤한 열매, 나도 먹고 싶었다. 좋아. 부자가 부러우면? 하면 되지. 부자가 되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보는거다. 요즘 애들도 커서 슬슬 내 시간이 생기고 있다. 남는 시간에 재테크 공부를 좀 해볼까 싶다.
오랜만에 재테크에 관심이 생기니, 예전에는 눈에 안 들어 오던 기사도 들어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25&aid=0003163517
기사 한 편 덕분에 '켈리 최'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베컴보다 부자인 사람이 한국 2030에게 경고한다는데 뭘까?
"워라밸을 주 단위로 하시면 영원히 노동에서 못 벗어나"
자극적이다. 놀면 뭐하냐고, 일하라는 주문이다. 적어도 부자 되기를 목표로 했다면, 퇴근해서도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었다. 역시 부자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_UPdT-LYk&feature=emb_imp_woyt
하나도 부럽지 않다. '워라밸을 주 단위로 하면 안 되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은 부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다. 부자가 되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 말이다. 아무래도 부의 추월차선을 쌩쌩 달리는 부자로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쉬어야 한다. 그리고 쉴 때 이은혜 작가님(이자 글항아리 편집장)의 <읽는 직업>을 읽고 싶다. 아니면 오은영 박사님의 <어떻게 말해야 할까>를 마저 공부하고 싶다. 그런데 켈리 최처럼 5년 동안 300억 벌려면 부자가 되려면 이거 말고 <주린이를 위한 쏼라쏼라>를 읽어야 한다는거다. 공부해서 5년 만에 300억을 벌 수 있다면, 그깟 피땀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부자가 부러웠다. 하지만 부럽다고 맹목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따라 살아야 할까?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오직 부자 뿐일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소신있게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부러움을 산다. 부자의 경제력. 욜로족의 화려함. 나 같은 부류(적게 쓰고 적게 일하는)의 저녁이 있는 삶. 각자의 매력이 넘친다. 부자는 돈의 매력이, 욜로족은 멀끔한 매력이, 나에게는 여유의 매력이.
다 가질 수는 없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니, 욜로족처럼 화려한 소비를 할 수도, 부자처럼 퇴근 후에 또 공부할 수도 없다. 그리고 아이가 '물꼬기키즈카페'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코로나는 위험해.'라는 팬데믹 기간 한정 핑계를 쓰면서 놀이터로 데려가야 하는거다. 대신 나는 매일 워라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중적이게도 여전히 부자가 부럽다. 켈리 최는 불안이 가득한 세상에서조차 삶에 생채기가 쉽게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단단한 다이아몬드 같다. 그들의 성실함을 닮고 싶다. 초고속 부자는 아니더라도, 아주 느린 부자는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러우면 하면 되지. 무작정 따라 하는거 말고, 내 소신에 맞게. 그러니 80%의 워라밸과 20%의 퇴근 후 성실함 정도는 갖춰야하지 않을까. '오직 돈'이라는 집념으로 맹렬히 질주하진 못 하더라도, 소비를 통제하고, 자산은 차곡차곡 모으는 기본기는 꾸준히 가져가고 싶다.
혹사하지 않을 정도로 재테크 공부를 하고, 매몰되지 않을 정도로 목표 자산을 정하며, 고요한 마음에 파문이 일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투자를 해서, 느리더라도 부자가 되고 싶다. 2022년, 올 한 해의 목표가 있다면 그건 기회 될 때마다 꿀빠는 워라밸 느린 절약가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