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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Sep 06. 2021

재테크 책은 알려주지 않는 비법, 절약이 재밌어졌습니다

절약으로 삶을 개선하고 싶으신 분들께,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두루 쓰이는 세계에 산다.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데! 돈 하나면 뭐든 가능하단다. 분명 긍정형 문장이다. 하지만 이토록 희망적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불행하고, 불안했다. 당연했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신혼 때는 불안하지 않았다. 월셋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결혼식을 치르느라 모은 돈을 다 썼는데도 별 걱정 안 했다. 우리는 맞벌이였으니까. 돈이야 다시 모으면 되는 거고,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든 때에 빚 없이 결혼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몹시 현명한 젊은이라며 자축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달라졌다. 나는 육아 휴직을 했고, 우리는 외벌이가 되어 있었다. 남편 소득으로만 먹고살아보니 돈에 쫓겼다. 원하는 만큼 돈이 없었다. 돈이 부족한 현재에 불행했고 돈이 부족할 미래에 불안했다. 그제야 돈이면 다 되는 황금 만능 세상 앞에서 살짝 떨렸다.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만능이었으니까.


미래에 대한 으름장까지 여기저기 널려 조마조마해졌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80%는 직장을 잃을 거라 예고했다. 로봇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었고, AI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대신할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없어진 인류의 80%는 무용(無用) 계급이 되어 직장을 잃고, 산업은 소수 지적 엘리트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80%는 일자리도 없어지는 마당에 100세 시대까지 다가왔다. 돈 없는 100세 인생은 선물일까, 저주일까?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 작고 약한 개인인 나는 겁이 났다. 나의 미래 시나리오는 단순했다. '나는 돈이 없을 예정이다.' 아, 하나 더 있다. '내 자식도 미래에 돈이 없을 확률이 크다.'


양육할 아이도 생기고, 미래는 어둡고.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니야? 살아남고자 주위를 살펴봤다. 때는 바야흐로 너도 나도 빚내서 집을 사던 2016년.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해서 돈 버는 속도를 제친 지 오래였다. 조급한 마음으로 재테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을수록 확신했다. 역시 재테크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잘 따라만 하면 미래에 잘 먹고 잘 살 예정이었다.


▲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을 시작했습니다.


종잣돈 모으기, '해피'는 과정 말고 '엔딩'에 있었다


복잡한 투자 기술은 엄두도 못 냈고, 절약부터 시작했다. 돈 안 쓰고 돈 모으는 건 머리보다 몸으로 하는 일이니까. 재테크 초보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책에서 한결 같이 말하던 '종잣돈 모으기'를 시작했다.


십 원 한 장 샐 틈 없이 살림을 시작했다. 봉투 안에 만 원 한 장씩 끼워놓고, 식비는 딱 만 원 안에서만 썼다. 작정하고 돈 안 쓰는 일주일도 도전해봤다. 일주일 동안 안 써보려 했지만, 3일 만에 실패했다. 수박 딱 한 통만 사러 마트에 들어갔다가 피자, 파스타, 시리얼까지 다 담아와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복직했다. 절약해서 종잣돈을 모으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투자용 종잣돈은 월급으로 만들어야 했다. 뱃속에 자라고 있던 둘째가 걱정되어 배에 손을 자주 대어 보면서도, 한 달 200만 원 넘게 통장으로 꽂히던 월급은 종잣돈으로서 꽤 두둑했다. 다 잘 풀릴 줄 알았다. 맞벌이는 종잣돈으로, 종잣돈은 투자 성공으로 이어져 4차 산업 혁명과 100세 시대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나의 첫 아이, 우리 연우. 먼 훗날의 재난을 막기 위해 다녔던 직장은, 매일 재난 상황이었다. 아이는 종일반에서 자주 아팠다. 아파도 내가 돌볼 수 없었다. 아이는 열이 나서 울었고, 때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


아이가 잘 달래지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전화를 받고도 발만 동동 굴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갈 수는 없었다. 미안해서 매일 울었다. 맞벌이 부부들이 다들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겉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속까지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다들 흐느끼며 일한 거구나. 죄책감을 이겨내거나, 무시하거나, 그 무게 그대로 아파하며 버틴 거구나. 무지한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뱃속 둘째도 지키지 못했다. 학교에서 무거운 장구를 들고 나르며, 자진모리 장단에 '모심는 소리'를 4시간 동안 불러댔던 탓일까. 임산부라 동료들과 상사의 배려를 듬뿍 받았음에도 아이는 37주 3일 만에 태어났다. 37주는 미숙아를 가르는 기준이다. 아슬아슬하게 미숙아는 면했다. 여담이지만 아이는 3.54kg였다. 40주 채워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나 싶긴 하다. 그럼에도 뱃속에서 3주 성장할 기회를 놓친 것 또한 사실이다.


종잣돈을 모으던 중에 벌어졌던 험난한 나날은 내 사정만이 아니었다. 그간 절약 서적이나 재테크 서적에 등장한 숱한 사례였다. 지루하고 힘겨운 오늘과 오늘을 버티고 버티자. 그렇게 모은 돈으로 투자에 성공하면 드디어 많이 벌어 많이 쓰는 부자 궤도로 입성! 해피엔딩은 언제나 미래형이었다.


재테크 책은 '10억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태어났다. 때문에 절약의 즐거움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절약하는 과정에서 행복하다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


부자가 되어야 '해피'하다. 따라서 '해피'를 '엔딩'에 배치한다. 반면 고통에는 둔감하다. 아니, 심지어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라고 말한다. 재테크의 해피 엔딩은 부자가 되는 일이었고, 절약은 부자가 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힘든 과정이었다.


절약은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었다. 간소하고 소박한 삶은 촌스럽고 낡은 생활 양식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부자가 되는 온갖 방법이 나열되어 있는 시끌벅적한 재테크 세계의 옆에서 돈 안 쓰는 이야기는 고요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얘기 말고, 버는 돈 보다 적게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알고 보면 절약이 더 재밌다.


▲ 저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지키는 힘으로서의 절약을요.


절약은 글이 되고, 책이 됐습니다


40대 10억 부자가 되고 싶어서 종잣돈 모으려고 봉투에 만 원 한 장 씩 끼워놓았을 때, 나는 행복했다. 돌아보니 나는 절약이 적성에 맞았다.


물론 절약은 불편하다. 눈앞의 편리함만 추구하며 살고자 하면 몸도 마음도 힘든 게 절약이다. 하지만 나는 절약하며 고통스럽지 않았다. 진짜 고통은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는 부모 마음이지, 원목 티슈케이스나 이케아 베란다 바닥재를 못 사는 것과 상관이 없었다.


편리한 삶은 아니었지만 해방감을 느꼈다. 봉투에 만 원 한 장 씩 뽑아 쓰는 것도 성취감 있었고, 불필요한 물건을 비워내면서 작은 집을 넓게 쓰니 쾌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 행복이 큰 돈에 좌우되지 않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채워짐을 깨달았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던 세상에서, 적은 돈으로도 됨을 깨달았다.


결국 무급 육아 휴직을 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 살림이 되었다. 한쪽 소득은 숭덩 잘렸다. 그렇지만 아이가 아프면 방바닥 잘 덥힌 집에서 아이랑 동화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걸로 충분했다. 큰돈 없이도 매일이 즐거웠다.


절약은 글이 됐다. '소비하라!'라는 구호가 도처에 널렸기에, '조금 덜 사도 별 탈 없다'라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내고 싶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최소한의 소비>라는 제목으로 2년 동안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들이 묶여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이라는 책이 되었다.


나는 절약이 고맙다. 아이와의 시간을 잃지 않게 해주어서,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마련해주어서, 돈 안 쓰는 부모의 쓸모를 깨닫게 해주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고, 기후위기로 망가진 제트기류와 플라스틱 수프가 되어버린 바다의 아픔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어서. 삶의 불안을 절약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절약은 현재 진행형 '해피', 적은 돈으로도 오늘 행복할 수 있다. 나와 남편, 그리고 두 아이 변동생활비(식비, 의류비, 의료비, 교통비, 유류비, 잡화비, 여가비)는 한 달 90만 원.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10억 부자가 되어 통 크게 지갑을 여는 쾌감보다, 오늘 하루 세 끼 따뜻한 밥 먹고, 가족들과 산책 하고, 책 읽을 시간 있는 삶이 더 만족스럽다.


절약으로 삶을 개선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의 곁을 내어드리고 싶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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