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식비 1만원 도전 중입니다. 하루 15000원 식비도 김치만 먹냐, 애들 고깃국은 먹이냐, 등등 듣기에 지루하지 않을 다양한 비아냥을 듣기도 했어요. 조롱을 들으면서 뿌듯했어요. 위축되지 않았어요. 되려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산다는게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쉽지 않은데도 거뜬히 해내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어요.
그러던 중, 간디의 문장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살면 신의 법대로 사는 것인가?"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는 것이다."
- <간디의 편지> 중. 모한다스 K. 간디 지음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간다는건, 이미 갖고 있음에도 '잉여'를 구축하는 행동입니다. 옷이 있지만, 더 예쁜 옷이 갖고 싶어 한 벌 더 산다던가, 아이들 장난감이 발에 채이고 굴러다니지만,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라며 이벤트에 하나 더 얹어주는 일들이지요. 있으면 더 마련하지 않는 일. 그게 간디의 철칙이었습니다.
주부인 제게, 간디의 모자는 '식재료'로 바뀌어 돌아왔습니다. 모자 쓰고 모자 사는 일은 곧 냉장고에 계란이 아직 남았는데 고기를 사는 일, 부추와 쑥갓이 있는데 대파 한 단을 더 사는 일이었던 거지요.
외식을 줄였더니, 하루 식비 15000원으로 충분하더군요. 살찐 냉장고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하루 식비 15000원이지만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는 일'을 자주 했어요. 이런 제가 절약을 한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만 않는다면, 더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냉동실 만두로, 만두국을 끓일 수 있다면, 구지 다른 국거리를 마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란 세 알이 남아 있다면, 두부는 내일 사면 됩니다. 게다가 이미 절약 모임 멤버 여러명은 하루 식비 1만원을 거뜬히 해내고 있어요. 1주일, 3만원으로 식재료를 갖추고 잔돈까지 남기는 멤버도 있습니다.
하루 식비 1만원 도전 중. 15일 동안 식비 133,260원 지출.
저도 하루 식비 1만원 도전 시작했습니다. 용기가 나더군요. 16일째에요. 어제까지 누적 잔액은 17,840원. 그러니까 15일동안 식비로 13만 3260원을 썼습니다.
식비 15000원으로 김치만 먹지 않았듯, 하루 식비 10000원 내에서도 굶지 않고 잘 먹고 있습니다. 하하. ^^
소소한 팁을 알려드릴게요.
1. 한 가지 재료를 소분하여 여러 요리로 응용하기.
- 닭 1마리로 세 가지 요리를. 간장 찜닭, 닭곰탕, 만두국.
간장 찜닭을 하기 전, 늘 닭을 애벌로 삶았습니다. 미리 한 번 고기를 익혀야 육질이 연하고, 찜닭 채소들 식감을 살린 채로 완전히 익은 고기를 먹을 수 있거든요.
그간 삶은 물을 버려왔어요.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닭 가슴살 세 덩이만 남겨 닭곰탕으로 이어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고기는 계획대로 간장 찜닭을 했고요. 닭곰탕의 고기와 야채를 다 먹고 국물과 고기야채 부스러기만 남았을 때는 만두국으로 되살렸어요. (그 동안은 버렸습니다...윽)
- 키조개 한 팩으로 세 가지 요리를. 조개국, 조개 비빔 국수, 조개 라면
비빔 국수가 먹고 싶어 가자미 회나 골뱅이 대신 키조개를 샀습니다. 키조개를 한 번 데치는 중, 조개 육수가 우러났습니다. 버릴 수 없더군요. 바로 파와 편마늘을 썰어 넣어 조개국으로 남겼습니다. 나머지 조개는 계획대로 조개 비빔국수를 했고요. 조개국을 실컷 먹고 1인분만 남았을 때, 물을 더 부어 라면 2인분으로 끓여냈습니다. 얼큰한 해물 라면이 따로 없던걸요.
2. 가성비 좋은 재료 쓰기.
두부, 콩나물, 숙주나물, 미역, 토마토 등등 가성비 좋은 식재료들이 있습니다. 같은 돈으로 양이 더 많아요. 콩나물은 한 번 사서 국에 잘 넣어먹고, 숙주 나물은 간장 양념해서 두부에 올려 먹기도 합니다. 한창 제철이라 1만원 한 박스에 15개씩 들어간 토마토는 생으로 먹기도 하고, 토마토 달걀 스크램블로 만들면 영양 만점에 하기도 쉬운 반찬이지요.
닭도 한 마리 사면, 닭곰탕에 찜닭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렴한 값에 응용 많이 할 수 있는 재료로 구입하면 식탁 풍성해지는건 순식간입니다.
3. 복지 포인트 이용하기.
저는 신랑이 공무원이라 복지몰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복지포인트로 좋은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을 마련했는데, 요즘은 달라요. 꼭 필요한 책을 사기도 하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가공육을 삽니다. 공짜인 듯, 공짜 아닌 식재료지만, 이젠 회사에서 나오는 포인트마저 알뜰하게 쓰려 노력 중이에요.
이번에 양념 닭갈비 세 팩과 훈제 오리를 사 두었습니다. 채소가 많이 남았을 때, 대충 썰어 볶기만 해도 썩 맛있는 신비의 재료들이지요.
통장 잔고 적어도, 두렵지 않은 나날.
자꾸 과거의 저를 들추며 욕을 해대니... 과거의 나야,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도 예전의 모습을 하나, 둘 개선해나가는 즐거움이 큰 지라, 과거의 저를 좀 더 우려먹어 보겠습니다.
예전에도 체크 카드를 계속 써왔습니다. 하지만 일단 선저축을 하고 나면, 남은 돈을 모조리 다 썼어요. 왜냐고요? 있으니까요. ^^ 하하. 돈 있어서 썼어요. 계좌 잔고가 1만원 이하로 떨어져 간당간당할 때까지 말이죠.
이럴 땐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돈에서 쓰는 것인데, 소비 때문에 수중의 돈이 자꾸 줄어들었지요. 그래서 언제나 다음 월급날이 언제 올지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쓰던 버릇 유지하려면, 통장에 돈이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살림과 마음이 쪼그라들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통장 잔고에 개의치 않습니다. 하루 식비 1만원으로도 살아지던걸요. 하루 생활비 15000원으로도 괜찮아요. 돈이나 물건이 없으면 없는대로, 심지어 있어도 없는것처럼 삽니다. 먹고 사는 일에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잘 살아지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줄였어요.
언젠가 멋진롬님(*멋진롬 심플한 살림법의 저자)께서, 월급날 3일 전 쯤, 통장 잔고 0원이 있지만, 괜찮다고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저는 아직 0원이면 가슴이 콩닥콩닥 할 것 같습니다. 내공이 멋진롬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니까요. 하지만 멋진롬님이 어떤 마음이었을진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돈이 없다고, 혹은 적어도 머리를 짜내면 다 되니까요. 머리를 짜내도 안 되면, 조금 참고 월급날까지 기다리면 되니까요.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태도와 능력. 이거야 말로 큰 돈을 버는 재테크 성공 만큼이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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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부모님께서 가끔 쌀을 주시기도 하고, 텃밭에서 온갖 푸성귀를 챙겨주신 덕분이었습니다. 때로는 선량한 이웃들이 감자나 과일, 마늘쫑에 심지어 소면과 행주까지 챙겨줘요. 제 처지에서는 한 달 45만원 식비가 넉넉했어요. 심지어 저는 아이들 유치원, 어린이집 다 보내고, 휴직 중입니다. 낮에 쉴 시간이 남으니, 식재료를 돌볼 수 있는거지요. 사람마다 신고 있는 신발이 다릅니다. 누구나 하루 식비 15000원, 혹은 10000을 천편일률적으로 잡을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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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성귀 잎파리 한 장마저 소중하기에, 서로 넉넉하게 생긴 식재료를 나눕니다. 마늘쫑도, 남은 과일로 만든 수제청도, 아기 먹이라고 주신 맛간장에, 친구가 보내줬다는 커피콩빵도요. 바로 윗층에 사는 멤버 언니와는 수시로 아이들 호떡이며, 부침개며, 앵두까지 함께 먹고 있습니다. 콩 한 쪽도 나눠먹으려면, 콩 한 쪽이 귀하다는걸 알아야 생기는 정이더라구요.
* 블로그에는 매일 글을 씁니다. :-) 놀러오세요.
http://blog.naver.com/dahyun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