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불필요한 외식
의외로 외식은 내 삶에 불필요한 부분이었다. 남이 해주는 밥을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다니, 식구들 밥상 책임지는 남편 혹은 아내에게 공공의 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그랬다. 나도 최근에서야 눈치 챘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인 식당에서 밥을 먹는만큼 주변 손님들, 음식점 사장님께 폐를 끼칠까봐 신경쓰인다. 보호자인 우리 부부는 뛰어다니고 싶은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꽤 스트레스를 받는다. 공공예절을 이해하기에 5살, 3살은 아직 멀었다.
게다가 둘째 상전은 엄마가 시킨적도 없는 '자기주도' 식사를 하고 있다. 누가 먹여주는 음식은 절대 안 먹는다. 스스로 먹기를 고집하는데, 당연히 온 사방 국물을 쏟고 옷과 얼굴, 손은 엉망진창이다. 식당에서 아이를 목욕시키는건 썩 유쾌하지 않다. 식당에서 누릴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고, 대신 아이들과 편한 마음으로 집에서 먹기를 선택했다.
두 번째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나의 게으름에 남편은 만 12년째 적응 중. 나에게 부지런한 요리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못' 한다. 서로 불만은 없다. 왜냐면 맞벌이 시절, 남편도 요리를 분담해봤는데 그도 게으르기 때문이다. 본인이 못 하는걸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부지런하지 못 한데도 식재료를 굽고 지져서 밥상에 올리는건 즐겁다. 딱 재밌는만큼만 조리대에 서 있는다. 그래서 한 끼 준비에 30분 이상을 들이지 않는다. 당연히 반찬 가짓수는 매우 적다.
그리고 조리 과정이 간단한 음식만 한다. '생채식'은 그야말로 최고의 조리다. 신선한 야채를 씻어 올리고, 간장에 들기름만 섞어도 훌륭한 소스다. 푸른잎이 풍성하게 식탁을 크게 차지하면, 큰 공 들이지 않았는데도 식탁을 꽉 채울 수 있어 흐뭇하다. '굽기'도 애용하는 조리법이다. 삼겹살 한 줄을 굽거나, 두부, 계란을 부친다.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방법이면서도 천일염으로 간을 하면 맛도 좋다. 국에 가장 큰 정성을 쏟는데, 여러 재료를 쏟아 부은 국이 보글보글 끓는 동안 다른 간단한 반찬을 한다.
건강 걱정을 하진 않는다. 집밥을 대충해도 영양은 충분하다.
집밥이 외식보다 편한 마지막,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 나는 워킹맘이 아니라 주부이기 때문이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 내 힘을 양육과 가사에 집중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낮 시간 동안 집안일과 식재료 준비를 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면 따뜻하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낮 시간 운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주부의 삶을 워킹맘들께서 맞추시려 애쓰시다가는 병나실지 모른다. 쉬엄쉬엄, 상황에 맞게 간소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식비는 변동지출이 아니라 고정지출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조리법을 간단하게 해서 재료 맛을 살리는 소박한 식탁은 경제적이다. 월급 받은지 13일이 지난 지금, 식비 지출로 약 1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이번 달은 유난히 적게 들긴 했지만, 평소에도 하루 15,000원이면 충분했다.
이제 우리집 식비는 한 달 '45만원'. 변동지출이 아니라 고정지출 수준이다. 어떤 달에 식비를 너무 많이 써서 예산이 얼마 남지 않으면 열심히 냉장고 속 재료로 부족한 창의력을 쥐어짜내 요리를 한다. 가능한 45만원 안에 맞춘다. 신기하게 마음 먹으니 그게 된다.
물론 하루 15,000원. 한 달 45만원이 정답은 아니다. 어떤 분들은 30만원, 또 다른 가정은 60만원. 아이가 더 많으면 80만원을 식비로 책정하기도 한다. 중요한건 '얼마를 쓰는지 아는 것'이다. 식비를 변동 없는 예산 대접을 해주면, 안정감을 느낀다. 가장 변동이 심한 식비를 '고정 지출'로 못 박아 버리는 것이다.
한 달에 얼마가 있어야 우리 가족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지를 알기 때문에, 남은 돈을 저축할 수도 있고, 큰 돈 벌지 않아도 넉넉한 살림을 사는 기분이다.
식비를 꽉 잡으니, 번 돈보다 적게 쓰기가 훨씬 수월하다. 여윳돈은 은행으로, 남는 시간은 산책으로 쓴다. 삶의 만족감은 월급 이상의 지출으로 얻게 된 물건에 있지 않고, 규모에 맞는 살림과 취미 생활에 있었다. 뒤늦게 깨달아, 예전보다 더 적은 소비를 하는 요즘이, 내 삶에서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시기다.
적은 돈으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 돈을 벌기 위해 뭔가를 희생하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적은 돈으로 살고 있기에 나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이 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보다 적게, 그러나 보다 더 잘 살아간다. 최소한의 돈과 물건으로 살아감으로써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 중. 미니멀리스트 시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