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적게 써야겠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걸까? 글쎄, 써도 써도 곳간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부자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돈은 다다익선이겠다.
나는 '돈은 많을 수록 좋은 것'이란 명제와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돈을 적게 쓰기로 결심하고부터 삶이 더욱 쾌적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절약이 좋은 거라니. 오늘 아침만해도 카페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는게 뭐 그리 유쾌한 일이라고, '절약한 후 행복해졌다'라고 말하는 걸까.
왜냐하면 오랜 기간 앓았던 마음의 병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유난히 강한 승부욕 때문에 비롯된 병이다. 어렸을 때도 남보다 더 잘 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고, 선생님이 되어서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새벽까지 수업 연구를 했다. 경쟁심은 공부와 수업을 잘 하게 해주는 촉진제였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 하고 경쟁한 탓에 점점 피폐해졌다. 바로 '삶'의 경쟁이었다.
삶의 만족도는 숫자로 계량할 수 없지만, 부유함과 살림살이는 직관적으로 눈에 띈다. 그러다보니 삶의 경쟁은 자연히 자산과 물건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집, 차, 옷, 가방, 신발, 여행, 외식 등 모든 것의 기준은 '남'이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됐고, 남보기에 부족하지 않기위해 애썼다.
그렇다고 대출을 내서 큰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장기간 할부로 좋은 차를 사지도 않았으며, 신용카드로 호화 여행을 다니지도 않는다. 단지 마음으로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꿈꿔왔다.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맞춰져 있는 탓에, 마음이 자주 조급했고, 내 삶보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더 궁금했다.
삶의 행복이 나 아닌 타인에게 있다는 것. 그것이 내 마음의 병이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원할 뿐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행복을 향한 노력,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긍정할 줄 아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 <굿 라이프> 중. 최인철 지음.
버는 돈 보다 적게 쓰는 나날을 보내는 요즘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이젠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하지 않고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하는 데 드는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한다. 돈을 아껴써야 하니, 과시를 위해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즐거움을 내려놓고 돈만 보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겉으로 그럴싸해보이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우리의 행복에 투자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절약 생활을 하면서 '더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을 줄이게 되었고, 물건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더더욱 두터워졌다.
남에게 신경쓰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니, 드디어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취미도 생겼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다. 관심있는 대상이 있고, 새벽에도 눈이 번쩍 떠져 작업실로 들어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책장을 넘기는 경험. 이거야 말로 행복이었다.
아마 절약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삶의 중심을 '물건'에 두었을지 모른다. 내게 물건이란 자연스럽게 '평가'가 되고, 순위가 매겨지는 대상이었다. 아파트 평수, 자동차 크기, 아이들 옷의 브랜드 등등. 이젠 물건 말고 경험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골몰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노동에서 벗어나는 일.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적게 쓰기로 결심해도, 또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절약을 통해 깨달은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