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산다는건.
OECD 성적표로 한국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근로 시간 2위, 남녀 임금격차 1위, 행복지수 꼴찌에서 3위. 계층이동 사다리는 좁고, 정규직 비중도 적으면서, 일주일에 평균 4번 야근하는데다가, 보고서 41번까지 빠꾸 맞고 다시 쓰는 이해할 수 없는 업무 비효율. 이런 상황에서 '노오력'이 부족해서 앓는 소리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꼰대입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뭘 할까요? 도파민이 치솟는 감각적 '쇼핑'입니다. 우리는 보통 쇼핑하며 쉽니다. 자신을 위한 신상 구두로, 그럴 듯한 신형 자동차로, 폼나는 해외 여행으로 말이죠. 쇼핑을 통해 물건이 늘어나고 질좋은 서비스를 얻습니다. 때로는 상점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대접받기도 하지요. 종일 노동으로 지친 우리가 돈을 쓰면서 힐링하는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세상은 신나는 놀이터가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돈을 쓰면 뚫린 계좌 구멍 크기만큼 다시 메워야 합니다. 그놈의 할부만 아니었어도!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거죠. 다시 노동과 소비의 악순환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됩니다.
과잉 노동으로 인한 과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과소비. 너무 많이 일 해서 힘들었다면, 노동을 줄이는게 정석일 겁니다. 물론 고용주가 야근을 없애지 않는 한 소용없다는 거 압니다. 정해진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업도 부지기수구요. 사장님은 반드시 준법해야 하건만, 우리 힘으로 사장님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사장님 나빠요!)
결국 '노오력' 이야기로 돌아와버렸습니다. 저, 꼰대인건가요.
개인주의자, 꼰대의 절약
'노오력'을 입 밖에 꺼내버린, 대한민국 꼰대로써 나름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노동과 소비의 악순환 고속도로를 타지 말고, 노동 자체를 줄일 노오력. 사실, 개인주의자로서 단단히 서고자 함입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 <개인주의자 선언> 중. 문유석 지음
저는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신혼 살림도 800L 대형 냉장고에, 하루 5분 쓰는 화장대를 들였습니다. 육아 용품은 아기 세탁기에 소독기, 면 좋은 브랜드 옷들, 온갖 장난감에 심지어 (어차피 100˚C 끓여야 하는) 분유포트까지 마련했었지요. 돌아보면 구매의 기준은 제가 아니라 남이었습니다.
지금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저를 들여다 봅니다. 필요한 건 사고, 그렇지 않은건 무시합니다. 철저히 기준은 '저와 가족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가'였습니다. 개인주의자로 살면서 얻은건, 적은 한 달 생활비, 그리고 저축이었지요.
적은 유지비로도 충분히 행복할만큼 사는 법을 익힌 덕분에, 한 번 쯤 지랄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공무원인 제가 소심하게 저지른 지랄은, 무급 육아휴직이었습니다. 집단문화에 까칠하게 굴고, 개인주의자로서 설 수 있다면, 절약도 한결 수월합니다. 자동차 2대는 있어야 한다는 조언에, '전 1대로도 괜찮던데요' 하며 쿨하게 답하는 자존감이 있으니까요.
저 말고도 소중한 삶을 지키기 위해, 대범한 지랄을 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이 분들도 역시 프로 불편러들입니다. 불만을 표현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19세기, 미국 월든 호숫가에서 자급자족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체벌하지 않겠다고 버텼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임당한 후, '삶이 아닌건 살지 않겠다'며 아주 적은 돈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미국 버몬트주에서 사탕단풍나무 시럽을 체취하며 자급한 니어링 부부. 남편 스콧 니어링은 자본주의 사회를 맹렬히 비판하다가,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해임당했습니다. 그 후 '적게 벌고 더 크게 존재하겠다'며 마찬가지로 적은 돈으로 살아냈습니다.
21세기, 한국 전라도 장흥 동백숲에서 나무를 깎아 숟가락을 만들고 농사를 짓는 하얼과 페달 부부.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이후, 전기를 많이 쓰는 삶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또 소비 없이 유지될 수 없는 서울살이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욕망의 방향을 바꿨을 뿐이다'며, 소비욕망대신 자존욕망을 채우며 적은 돈으로 살고 있습니다. 3살, 5살 딸 둘도 키우고 있지요.
이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 속에 자기주도적 인생을 살면서 그동안 쌓인 피로와 독소를 덜어내려 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후 이 가정은 살림의 규모와 속도와 방향을 바꿨다. 서울 아파트에서 남양주 시골 마을로 이사를 했다. 두 아이는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자란다. 웹 개발자인 가장은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무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맡아서 한다. 적게 벌고 적게 쓰되 자기주도적 인생을 산다.
-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중. 오연호 지음
이제는 스탠딩의 시대
이제 스탠딩(자립)을 해요. 돈과 노동의 노예가 아닌, 계획 소비와 저축을 통해 여가를 늘려, 삶의 주인이 되자구요. 절약은 바로 내 삶이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위해 오롯이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돈 쓰는건 쉽고 편합니다. 때로는 잘 사는 느낌도 줍니다. 하지만 힐링 소비인 줄 알았는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렇게 썼던 돈이 사실 괜찮지 않았던 겁니다. 헛헛한 마음과 잘 살고 있는건지 온갖 질문이 스스로를 집어삼킵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하루하루 크고, 시간은 어찌저찌 흘러갑니다. 막연했던 질문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쓰던 씀씀이 대로 돈을 쓰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막연한 불안일 뿐입니다. 불안함을 또다시 소비로 메꾸겠지요. 쇼핑을 '힐링'이라 여기면서요.
그러나 월급 이상의 소비는 힐링이 맞는 걸까요? 이젠 쇼핑으로 위로받기보다 스스로 발을 내딛어요. 절약으로 자립해서 당당히 서 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합리화의 과정'이 아닌 '필요'에 의해 해요. 필요에 의한 소비를 할 때, 절약인거니까요.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술. 바로 절약입니다. 적은 돈으로도 잘(well) 살 수 있어요. 이젠 절약으로 스탠딩을 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