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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Dec 08. 2019

광고와 SNS는 꽁꽁 숨기지만, 통계는 말한다.

한 달 식비 45만원은 평범한 살림입니다.

자랑처럼 여기는 나의 절약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한 달 식비 45만원.


2. 한 달 생활비(생활잡화+의류+의료+교통+유류+여가) 45만원.


3. 2019년에 가장 많이 팔렸다던 에어 프라이어와 삼신가전(3新가전: 의류건조기+로봇청소기+식기세척기)도 없다. 


후라이팬 두고 왜? 빨래 건조대 두고 굳이? 빗자루야말로 친환경 무선청소기이며, 식기 세척기에 넣어야 할만큼 그릇을 많이 들이기보다, 반찬 담는 그릇을 줄여 설거지 노동력을 줄이려 한다.


4. 10년 째 입는 자켓과 6년 된 코트와 패딩, 10벌 남짓한 바지와 셔츠, 운동화 한 켤레, 레인부츠 대신 등산화.


5. 주말 가족 나들이는 외식과 유료 체험형 시설보다 도시락을 싸들고 나가는 공원과 도서관, 미술관.


이런 절약. 누군가에게는 사치고, 누군가에게는 궁상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궁상'이란 쪽에 의견이 기울기 일쑤였다. 조롱과 염려를 넘나들며, 나의 살림이 지나치게 하류지향 되어 있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궁색한 살림이라 생각할만도 하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른다. 현관 밖만 나서도 쇼핑센터인 한국이다. 최신의 물건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 흔한 에어 프라이어 하나 없으면, 도태되었다는 생각에 위축되어 불행하거나, 쪼그라든 마음을 달래고자 신용카드를 긁게 된다.


텔레비전이나 SNS에는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이 다수 처럼 비춰진다. 그러니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비정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남들처럼 편리미엄(편리+프리미엄)을 누리며, 소중한 나를 아껴주자는 생각에 시간과 노동을 줄여주는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한다. 뿐만 아니라 남들만큼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에 좋은 옷을 사고, 식당 밥을 먹으며 신용카드를 긁고 빚을 낸다. 


버는 돈 보다 많이 쓰기 시작하니, 일상은 돈 생각에 짓눌린다. 노동하고 소비하며, 지난 달 긁은 카드 값을 지불한다.


그런데 점점 '내 삶이 이상한게 아니었어요!'하며 기쁨에 찬 사람들이 생겨났다. 버는 돈에 맞춰 살았는데, 인스타그램에 나타나는 친구의 소비 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연예인들 자녀가 쓰는 장난감을 도무지 살 수가 없었고, 남들처럼 명절에 훌쩍 해외 여행은 커녕, 제주도도 가기 어려웠다고 한다.아이의 대학 학자금이나 100세 시대 노후 준비를 위한 저축을 하고 나면, 도무지 미디어 속 생활 수준을 맞추기는 힘들다.


당연하다. 통계가 말해준다. 2018년 4인 가구, 소득분위별 평균 연소득을 보자. 소득 5분위는 상위 소득 (0~20%), 소득 4분위는 (20~40%)로 생각하면 된다.


대한민국 가장 중간인 소득 3분위(소득수준 상위 40~60%)를 보자. 평균 4562만원을 번다. 세전 금액이다. 세금을 떼고 나면 한 달에 300만원 조금 더 버는 셈이다. '가구' 소득이기 때문에, 한 명이 버는 돈이 아니다. 부부 모두 버는 돈을 다 합쳐, 한 달에 300만원 조금 더 버는 가구가 대한민국의 중간이다.


소득 4분위(소득수준 상위 20~40%)도 마찬가지다. 평균 6928만원을 번다. 마찬가지로 세전 금액이다. 부부 합산 한 달 500만원보다 조금 덜 번다. 맞벌이라면 아내와 남편 각각 250만원 정도 벌어온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소득 1~4분위인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80%다. 하지만 미디어에 비춰지는 소비 수준은 전체 인구의 20%인 소득 5분위의 삶이다.


아이를 낳으면 최소한 중형차 한 대(3천만원), 에어 프라이어에 로봇 청소기, 식기 세척기, 의류 건조기 모두 갖춰야 한다. (다 사면 최저가 기준 약 300만원) 여기에 잦은 외식과 남들하는 사교육까지 다 해버리면, 소득 4분위의 평균 연소득으로도 저축하기 어렵다.


결국 '남들처럼' 산다는 미디어의 삶이 허구였음을 알 수 있다. 상위 20%의 삶 만이 '정상'이고 '평균'은 아니지 않나.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소득 5분위인 지인들의 살림살이도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집밥을 먹고, 웬만해서 옷을 사지 않으며, 차는 딱 1대만 끌고, 적게 써서 남은 돈을 저축한다. 그들은 오히려 검소했으며, 저축과 투자를 통해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과소비를 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경제적 안정감을 통해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그러니 난 대단한 절약가라 할 수 없다. 소득 수준에 맞춰, 남들처럼 산다. 무를 얻으면, 무 청을 말려 시레기를 삶고, 이웃이 준 청국장을 살뜰하게 먹고, 두툼한 돼지 앞다리살을 된장에 풀어 수육을 한다.


번 돈 보다 적게 쓰고, 남는 돈을 차곡차곡 저축하며 살 뿐이다. 광고와 SNS에는 꽁꽁 감춰져 있지만 통계가 말해준다. 다수의 삶은 한 달 식비 45만원이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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