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혜 Dec 12. 2019

꿰맨 자리에 가난이 깃든다고?

가난은 신용카드 할부로 산 좋은 옷에 깃든다.

꿰맨 자리에 가난이 깃든다는 표현을 읽었다. 가난한 생활 방식이 끊임없이 가난을 부른다는 의미다.


그래서 절약하는 분들은 종종 '자신의 절약에 가난이 깃들까 봐' 걱정을 한다. 평생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까 봐 움츠러들기도 한다.


결국 체념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아등바등 모아봤자 더 나아질 것도 없으니,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을 실컷 누려보자는 계산이 선다. 신용카드 할부로 거대한 텔레비전과 아이패드를 산다. 돈 쓰면 돈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한 결과, 자식에게 입힌 좋은 옷 속에 가난이 깃들어버린다.


쓰레기가 될 뻔했던 스타킹을 구했다. 덕분에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자주 쓰고 버려지는 물건들을 안타깝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꿰맨 자리에 가난이 깃들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계층 대물림에 대한 속담이라 하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꿰매서 가난해진다'는 이상한 논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 번 산 물건을 수선하며 오래 쓰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중히 대하는 사람들이다. 낭비가 없고 절제력이 강하며 부지런하다. 꿰매기를 즐기는 사람이 가난해진다는건 어불성설이다. 부유한 삶은 바른 태도로 점철된 작은 습관이 만든다.


나는 절약가들이 더더욱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갖춘 사람이 선택한 자발적 결핍 속에서 오는 자원의 고른 분배와,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는 즐거움을 널리널리 자랑하면 좋겠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지길 바란다. 부자가 되길 수치스러워하지 말자. 부자가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소득 이상의 소비로 가정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여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순자산이 풍요로워져서 백발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삶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한 결실이다. 약삭빠르지 않고 미련하게 살아낸 달콤한 열매 맛을 보면 좋겠다.


절약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이야기를 닳도록 자랑하면 좋겠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져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경제적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현대 사회에 들어, 은근히 부지런하고 근면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봤자 '대박'을 맞지 않는 이상, 삶이 더 나아질 수 없다고 한다. 어차피 더 나아지지 않을 인생, 그때 그때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자는 논리다.


누군가의 부품으로써 부지런을 떨다가 소모되는 삶은 비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으로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새벽잠을 줄이는 게 과연 미련한 삶일까? '근면과 성실'은 고전적인 가치라 여겨져, 요즘에는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기본 태도로서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자주 꿰매고, 미련하게 근면 성실하게 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싶다. 부유층의 흉내를 내기보다, 진정한 부유층으로서 간결한 나날을 보내기를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고와 SNS는 꽁꽁 숨기지만, 통계는 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