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좋은 기분이 드는 일상으로 하루를 채운다. 해야 할 일들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가지치기 해버리는 셈이다.
하지만 즐겁고 유쾌하며 만족스러운 일을 단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매우 주관적이고 소소한 조언을 드리자면, 바로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기'다. 나의 경우 물건을 사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소유보다 경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물건에 빼앗겼던 시간을 줄인 후, '재미있는 일'을 고민할 수 있었다.
'소유'란 타인과 비교 가능한 것이다. 가령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명품 가방을 샀다면, 그 가방은 소유물이다. "내 가방이 너꺼보다 좋지?"라는 우월감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요. 최소한의 소비를 결심한 후로 더 좋은 가방이나 최신형 핸드폰, 고급 차, 넓은 신축 아파트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포기하니 편했다.
정신승리를 했다는건 아니다. 남과 비교하는 못난 마음이 작아졌다. 그래서 소유물을 포기 후 마음이 편하다는 의미다. 타인의 시선보다 비로소 나에게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소유의 쾌락을 넘어서는 '경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루 10분 책읽기, 아이에게 동화책 한 권을 읽어주기, 아름다운 풍경으로 걸어들어가기, 친구 만나기, 소담하게 핀 매화 사진 찍기, 매일 한 편 글쓰기, 꽃 기르기, 독서 모임, 절약 모임, 식비 가계부 쓰기. 이 모든 경험은 '재미' 있다.
반면 경험도 과시를 위해 하게 되면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시용 경험은 비교를 유발하므로, '소유'였다. 그러니 남의 눈을 의식한 물건과 경험을 제외한, 온전히 나다운 그런 경험을 찾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경험으로 하루를 채운다. 오롯이 즐기는 일들을 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껴 만족스럽다. 그 중에서 '필사'는 단연 최고의 취미다.
나는 문장 덕후다. 책을 읽으면서 멋진 문장을 모으는게 취미다. 독서 중, 혹은 후에 필사하는 건 어찌보면 '덕질'인거다. 공책에 연필로 천천히 옮기고, 다시 자판을 두드리며 노트북으로 두 번 옮기는걸 좋아한다.
사서 고생한다는 탄식이 들리는 듯 하여 약간의 변명을 좀 더 해볼까한다. 공책 필사의 매력 포인트들 말이다.
공책 필사 매력, 첫 번째. 생각 정리 할 여유가 생긴다. 책 전체의 흐름에 따라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멋진 문장들에 집중하면 진한 여운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문장의 맛을 느린 손 필사 속도에 맞춰 좀 더 음미한다. 그러면 느린 호흡에 맞춰져 생각도 함께 깊어진다.
공책에 옮겨 적은 문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모호했던 지점도 명료해진다. 최인철 교수님의 <굿 라이프>의 문장을 예시로 들어보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의 영역에 살면서 비교하지 않으려고 결심만 한다. 행복한 사람은 애초부터 비교가 일어나지 않는 경험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 <굿 라이프> 중. 최인철 지음.
멋진 문장이지만, 찬찬히 생각할 여유가 없으면 제대로 푹 젖어들기 어렵다. 대충은 알겠는데 그걸 자기 삶에 빗대어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대체 나에게 있어 소유의 영역은 뭔지, 경험의 영역은 뭔지 명료하게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
공책에 필사하면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생각해본다. "그럼 내가 굿 라이프를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걸까?"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신축 아파트 큰 평수에 집착하지 말고, 좋아하는 책, 꽃, 빵, 글, 여행, 남편, 아이들, 친구와 함께 하라는 뜻이군!" 모호했던 문장이 제 삶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공책 필사 매력, 두 번째. 서평의 질이 좋아진다. 책 한 권에서 뽑아낸 문장들의 합은, 그 책에 대한 제 느낌의 총체다. 책을 들춰보며, 책장을 왔다갔다 할 필요 없으니, 책에서 받은 감화가 공책 몇 장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책에서 느낀 바가 한 문장, 혹은 한 문단으로 정리된다. 서평을 쓰고 싶다는 의욕으로 가득하게 된요. 덕분에 서평을 쓰고, 서평으로 남긴 책은 더 길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미디어 독해력이 무척 떨어진다. 노트북으로 옮긴 책들은 책 감동의 총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개인적 능력 한계 때문일 것이다. 노트북 화면으로도, 혹은 핸드폰 화면으로도 글의 내용을 편안히 독해하시는 분들이 부럽다. 굳이 공책 필사를 할 필요가 없으실 테니까 말이다.
필사로 꽉 찬 공책은 버린다. 블로그에 옮겼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로 남기지 않았을 때는 필사 공책을 버리지 않았다. 공책 한 권에 제가 읽었던 책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지칠 때, 혹은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펼치는 '마법노트'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젠 블로그가 제 마법노트나 다름 없다.
소유보다 경험을 채우는 하루. 독서와 필사로 오늘 하루 '굿 라이프'의 조각을 채워보심은 어떠실까. 소중한 여러분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